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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May 05. 2024

처음, 힙한 선생님을 만나다.

나의 인생에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듯, 아이의 선생님 중에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다.


아이 학교의 선생님과 상담을 할 때면, 전화상담보다는 대면상담을 선호한다. 제2의 엄마인, 담임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다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6학년이 된 아이는 담임 선생님이 좋다고 했다. 아이브를 좋아했던 아이와 BTS를 좋아하는 선생님. 둘은 덕질을 주제로 이야기를 했고, 엄마와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지만 선생님과는 대화가 잘 통한다고 했다. 어떤 날을 졸업한 제자들이 선생님을 찾아와서 중학교 생활 이야기를 6학년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단다. 단정을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며, 아이는 교복 생활을 동경하기도 했다.

반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선생님의 나이였다. 아무리 물어보아도 선생님은 100살이라는 답변만 했다. 아이들은 탐정이 되어 선생님의 나이를 맞추기 위해 애썼다. 선생님이 흘리는 말들을 근거로 추측했다. 일 년 내내 추리를 이어갔다. (끝까지, 알려주시지 않았고, 다음 해 중학생이 되어 찾아가 물었더니 알려주었단다.)

12월에는 학교에서 주식을 배우는 수업이 있었다. 멜론차트 100의 곡 중, 하나의 곡을 정해서 그동안 모은 코인(학교에서 부여된 직업으로 받은 월급)을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친구는 아이브의 한 곡만 투자했고, 다른 친구는 아이브의 모든 곡을 투자했단다. 모든 곡에 투자한 아이가 큰 이익을 보았고, 자기는 크리스마스 전이라서, 머라이어 캐리 노래(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에 투자했다고 했다. 며칠 후, 노래 주식투자가 궁금해서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캐럴에서 빼서 다른 노래에 투자했는데, 캐럴이 급부상하더라.”

"왜 뺐어?"

"몰랐지."


주식과 노래를 결합한 형식이 재미도 있고, 실전처럼 딱 맞아 떨어졌다. 다양한 수업 이야기를 들으며, 덩달아 나도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교육에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9월, 2학기 상담이 시작되었다. 시간에 구애받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 시간에 상담을 예약했다. 잠깐 대기를 하며, 복도를 서성이는데, 교실의 문에 붙여진 글귀가 눈에 띄었다. ‘문 닫는 스즈메, 좋아.’ 영화 <스즈메의 문단>을 응용한 말이었다. 아이들이 문을 잘 닫지 않아서 붙여 놓았다고 했다.


상담 시간이 되어 선생님을 만났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신다는 이야기를 통해 나와 비슷한 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장 궁금한 건, 아이의 학교생활이었다. “린이가 학교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나요?” 묻자

선생님은 A4 한 장을 건넸다. 그 안에는 친구들이 적은 아이의 장, 단점이 적혀 있었다. 선생님 혼자 아이를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 친구가 생각하는 모습이 객관적이고 입체적이었다. 종이 위의 글씨를 읽으며 학교생활을 추측할 수 있었다. 장점은 착하다, 즐거워 보인다, 말을 재미있게 한다, 글씨를 잘 쓴다, 재미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한다, 남을 잘 배려해주고, 착하게 대해준다, 웃기다, 성격이 쿨해요, 친절하다, 연극에서 유일하게 표정 연기까지 했다. 등등이 적혀 있었다. 아이의 단점은 수학, 과학을 포기했다, 말을 잘 들어주면 좋겠다, 여러 사람하고 놀기. 였다. 선생님 한 사람이 아이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게 아이들의 생각은 다채롭고, 솔직했다.


아이들 의견에 덧붙여서 선생님이 본 아이의 모습도 이야기해 주었다. 린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수학도 쉽게 풀어내며, 말도 재치 있게 해서, 아이 덕분에 선생님이 자주 웃는다고 했다. 말을 할 땐 제스처를 많이 쓰고, 바닥 청소 담당도 말끔히 한단다. 연기 수업에서는 작은 배력이었지만 다른 반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어볼 만큼 맛있게 연기 했다고도 했다. 내가 집에서 본 아이는 방 청소를 잘 안 하고, 숙제도 꾸역꾸역하고 수학이 너무 싫다고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알던 모습과 다른 이야기에 놀랐다. 집은 휴식의 공간이고, 학교는 사회생활의 공간이고, 두 공가에서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이야기와 선생님의 이야기가 더해지니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상담이 되었다.


일 년에 2번 주어지는 상담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는 아이가 여러 사람과 함께 할 때, 어떤 사람이 되는지 궁금해서다. 학업성적보다 교우관계나 선생님에 대한 태도, 수업 태도가 궁금했다. 집 안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 알고 싶었다. 상담을 통해 아이의 다각적인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상담을 위해 많이 준비한 걸 느낄 수 있었다. 개별적으로 준비한 아이들의 장, 단점 쓰기도 좋은 기획이었다.



그날의 상담을 토대로 아이가 연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진로를 설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만약 상담을 가지 않았다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순간을 놓쳤을 수도 있다. 학부모 상담. 별것 아니라 여기면 별것 아닌 것이 되고, 삶에서 중요한 순간이라 여기면 중요한 것이 된다. 나는 학부모 상담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임한다. 아이의 중요한 시기에 오랜 시간 함께하는 선생님의 말에는 보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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