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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May 26. 2024

남편이 사춘기 아이와 싸우지 않는 이유

처음, 아니 자주 엄마를 지적하다.

비가 보슬슬 내리는 주말, 거실의 소파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았다. 남편이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느라 소란스러웠다. 나는 책을 읽기 위해 아이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시 뒤, 아이가 방으로 들어왔고, 남편도 뒤따라왔다.


“여러분, 저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딸의 말)”

“왜 제가 방으로 들어오니까 졸졸 따라옵니까?”

“저는 엄마가 내 방을 어지럽힐까 봐 걱정되어서 들어왔어요.”

“전 좋아하는 거 맞아요.”

남편의 플러팅에 사춘기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남편의 재치에 웃다. 셋이 호텔같이 깨끗한 아이방(정리를 잘함)에 감탄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아이에게 물었다.

“린아, 아빠 뒤 머리 좀 봐봐. 길어? 짧아?”

“음. 아빠 목이 짧아서 잘 모르겠는데”

남편은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머리 잘라야 할 것 같아? 어때?”

“음. 좀 꼬불거리는 게 자르는 게 낫겠어.”     



둘의 대화를 보고 놀랐다. 아이는 머리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목 짧은 이야기는 왜 하는 건지? 남편은 왜 아이의 말에 화를 내지 않는건지? 나였다면, 목이 짧아서라는 말에 흥분하고, 기분이 나빠져 다음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여보, 딸이 목 짧다는데 기분 안 나빠?”

“내가 한 질문에 전혀 상관없는 말이니까 신경 안 쓰는데…. 내 질문에 답을 듣는 게 중요해.”



이것이 사춘기 딸을 대하는 나와 남편의 차이였다. 요즘 딸과의 대화에서 마음을 자주 다쳤다. 내 흰머리가 많다는 둥, 목주름이 늘었다는 둥, 피부과에 가보라는 둥 대화를 잇기 어려울 만큼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자주 했다. 날마다 아이의 악플에 시달렸다. 얼굴 맞대고 그러니, 진정한 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예쁜 말을 하면 안 될까? 왜 많은 단어 중, 그런 단어들을 선택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오늘 남편과의 대화를 보니 나의 반응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빠에게 말할 때, 나를 대하는 방식(화법)으로 말했는데, 아빠는 아이를 혼을 내지도 않고, 목 짧다는 말에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파르르르 흥분해서 재밌어. 타격감이 있어서 놀리기 좋아. 그런데 아빠는 반응이 없어서 재미없어.” 아이의 속마음을 야기했다.


나와 다르게 사춘기 아이의 말에 감정이 치솟지 않는 남편이 대단해 보였다. 성인군자 같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아이의 날카로운 말이 내겐 스트레스였다. 좋은 말로, 다정한 사이로 지내고 싶은데, 매번 실패했다. 남북통일을 꿈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 걸까?


남편과 아이의 대화를 통해, 앞날을 나의 태도를 재설정본다. 아이의 말에 격양되지 말자. 감정의 버튼을 끄자. 로봇이 되자.





감성적인 나, 잘할 수 있을까?





잔소리 노노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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