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프로젝트의 시작, 아이데이션
나에게는 믿음이 하나 있다. 생각만 잘할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생각'만' 이라고 쉽게 이야기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때로 누군가의 생각은 몇 세기를 걸쳐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고전이 되고, 인류사의 획을 그을 발견이 되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너무 거창하게 여기지는 말자.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작은 아이디어도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생각들이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한 두 개쯤은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어떤 것을 만들어낼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할 수 있다. 무한히 열려있는 가능성이 아마 사이드 프로젝트의 가장 큰 매력일 거다. 해야만 하는 일들은 잠시라도 제쳐두고 잊고 있던 상상과 가능성의 세계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왜 그런 건 없을까, 저건 어떻게 해결 방법이 없나 하는 고민들을 몇 시간씩 하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속시원히 아무것도 답을 찾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아쉽지만 여기까지'로 마무리할 때가 많지만. 이거 될 것 같은데... 하는 순간들이 오면 그야말로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방금 떠올린 아이디어인데 머릿속에서는 개발은 진즉에 끝났고 벌써 회사 차려서 투자를 받아야 하나 하는 김칫국까지 시원하게 들이켠다.
김칫국 마시기 전에 아이템 선정을 위한 아이데이션의 이상적인 과정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보자. 아이디어 회의를 열고 머리를 맞대어 의견을 낸 후 그중 가장 유망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선택한다. 아이템을 구체화해 보면서 개발 난이도와 성장 가능성까지 가늠해 본다. 그리고 미래가 보인다 싶으면 최종 아이템으로 선정한다. 여기까지가 이상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첫 번째 단계인 '괜찮은 의견 내기'부터 쉽지 않다. 없던 아이템이 머리를 맞대어 아무리 쥐어 짜본들 나타나줄까. 창의력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추론해 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데이션은 좀 더 발견에 가까운 활동이다.
창의성을 발휘해 좋은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아이템 스파이더 센서'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면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보아야 하고, 세상 모든 것이 아이디어로 보여야 한다. 수집한 아이디어는 나만의 아이디어 창고에 쌓아두자. 허무맹랑한 것이라도 좋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개발이 너무 어려워 보이거나, 문제는 분명한데 마땅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어렵게만 생각하던 문제가 다른 방향으로 풀리거나 생각지 못한 발견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고 폐기하지는 말자.
고민 없이 저지르기는 내게는 없는 재능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그 일이 어때서 좋고 또 어떤 점은 안 좋은지 한참을 들여다본다. 두부 한 모 사는 것부터 대학 전공을 정하기까지 뭐 하나 속 시원히 정하는 일이 없었고, 그러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안 좋게 말하면 우유부단하지만, 혹시 좋게 보아준다면 신중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내가 용케도 결혼하기로 결심을 했다. 어떻게 하면 결혼을 잘할지 고민부터 시작이다. 결혼은 현실이라던데. 집은 어떻게 하고,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부부가 되면 사랑이 아니라 전우애로 산다고 하던 회사 선배 이야기가 맞는 걸까. 그러다 과연 나와 결혼할 사람은 이런 것들을 고민해 보았을지, 또 고민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결혼할 사람의 마음을 서로 알아볼 수 있도록 결혼 전에 서로 이야기해 보면 좋은 질문들을 모아 두 번째 앱을 만들었다. 정말로 결혼을 앞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문제를 푼 후에 결과를 한눈에 파악하고 서로 답변을 맞춰 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 결혼 관련 책도 여럿 찾아보고, 주변 친구들의 경험담도 들어가며 여로모로 조사를 많이 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더 잘 보이는 것들도 있다. 이렇게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아이디어, 내가 겪고 있는 문제야 말로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해결 방법도 잘 알고 있는 문제다.
'이런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 생각을 '씨앗'이라고 부른다. 씨앗은 보통 불편하거나 아쉬울 때 발견한다. 그리고 불편을 해소하거나 아쉬운 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면 씨앗이 싹을 틔웠다고 할 수 있겠다. 싹을 틔워 성공할 기대로 자신감이 충만해졌다면. 비슷한 씨앗으로 시작한 다른 사람의 싹들을 살펴볼 때다. 누구나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기에 분명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비슷한 사례가 있을 거다. 하지만 먼저 시도한 서비스를 발견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결혼고사'라는 오프라인 문제지는 이미 SNS에서 유명했다. '결혼고사' 결혼에 관한 질문들을 모아놓은 문제지이고 재미위주의 문항이 많아서 좀 더 가볍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을 고민하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문제가 가볍다고 느꼈다.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좋겠고 서로의 가치관을 알 수 있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질문이 많았으면 했다. 따로 채점 같이 결과를 알 수 있는 과정도 없어서 한눈에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다 풀고 난 후 조금 싱겁다는 느낌도 들었다.
'결혼하는 마음'의 씨앗은 결혼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서로 결혼에 대한 가치관 차이에 대해서 문제를 풀어본다는 방식으로 싹을 틔워보기로 했다. '결혼고사'에서도 문제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본다는 방식으로 이 고민을 해결해보려 했지만 '재미위주', '결과를 알기 어려움'과 같은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나는 '결혼고사'에서 아쉬운 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기능들로 통해서 '결혼하는 마음'을 설계했다. 결혼 고사가 어느 정도 인기를 끈 아이템이기에 배울 수 있는 점도 있었고, 후기도 많이 있었기에 더 보완해야 할 점도 찾기도 어렵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결혼하는 마음'은 '결혼 고사'의 단점을 보완해서 좀 더 진지하게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되는 서비스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