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하
후후, 지난날이 미워서가 아니야
후유, 오늘이 만족해서도 아니야
하, 내일이 궁금해서야
기억과 망각보다는 상상에 투자하겠네
인연을 어찌 잊을까마는
세상이 블랙버드*처럼 지나갈까 봐 끔찍하고
사람이 안드로이드와 결혼할까 봐 끔찍하고
복제인간들 세상이 올까 봐 끔찍하고
내가 나를 몰라볼까 봐 끔찍하고
지구가 우주를 떠날까 봐, 끔찍하다
매 순간 가능성이 있다 나는, 사라져도
상상이란 얼마나 끔찍한 희망인가를…. 봐라
기억과 망각에 구속된 자유를 펼쳐놓고
나는 상상에 붉은 희망을 걸었네
삼백예순다섯 개 달린 빛과 그림자와 사귀면서
산마루에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맞이하며
희망을 짓고서, 얼굴이 볼그레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검은 새
-시집 『달거리』 문학의전당(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