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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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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스 서 Jul 17. 2023

잘 가요, 고이.

무너져있는 당신의 어깨에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들으러 가기 며칠 전부터 그랬다. 연주를 들으며 울 것 같았다. 시리도록 아픈 작품의 아름다움을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 연주자는 16개의 노래로 이어진 연가곡을 연극처럼 연출하며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고뇌는 한 곡마다 차곡차곡 쌓였다. 가능하면 울지 않으리라 조용히 다짐했다. 연주회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사실 생각보다 꽤 성가신 일이기 때문이다. 한두 방울 눈가에 잠잠히 맺히는 정도라면, 한 두 줄기 조용히 흐르는 정도라면 괜찮다. 그러나 하염없이 흐르면 그때는 속절없다. 티슈를 꺼내거나 눈물을 닦는 움직임은 주변의 감상에 방해가 될 것이다.      


감상 중간에 울컥하는 턱들을 잘 넘겼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곡에 이르렀다. 작품 속 시인은 관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그곳에 그의 사랑과 고통을 담아 바다에 가라앉힐 것이기에. 그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관이었다. 한 사람의 마음이지만 거인 열두 명이 옮겨야 할 만큼 거대하다. 무거운 슬픔을 받아내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시인의 고통의 무게가 전해지며 무너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시인이 끝내 표현하지 못하고 삼킨 심정이 애절하고도 긴 피아노 후주에 실렸다.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고통과 고난을 동력으로 음악을 탄생시킨다. 애달픈 사랑부터 시대의 비극까지 종류는 다양하지만 남들보다 민감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음악가들은 그것을 작품으로, 또는 연주로 표현하며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한다. 감상자들은 음악에 연결되면서 그 감정들을 함께 느끼게 된다. 어떤 이들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클래식 음악은 나를 긴장시킨다. 여러 형태의 응축된 감정이 전달되면서 부대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작품에 담긴 감정들은 대개 날 것이 아닌 승화된 형태로 쓰이기 때문에 감상하며 고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달받는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힘겨운 감정들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시인의 사랑>을 감상하기 전에 조금 주춤했던 이유다. 평온한 일상을 굳이 요동치게 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견고한 일상이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른 새벽에 지인이 공유한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처음에는 기사 제목을 잘못 읽은 거라 생각했다. 150여 명이 길에서 갑자기 죽었다. 비현실적 충격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단단한 땅 위에서 휘청거렸다. 한순간에 전해진 슬픔의 무게에 압도됐다.     


그날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모든 대화가 소음 같았다. 사건에 대해서 가볍게 떠드는 것도 참기 힘들었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적 대화만 하는 것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슬픔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에게 섣불리 나누어 줄 수도 없었다. 공감받지 못한 슬픔이 얼마나 쉽게 타인에 대한 분노로 전이되는지 아는 까닭이다. 조심스러웠다. 서로를 향한 비난은 비극의 무게를 더할 뿐이다. 


혼자 짊어질 수 없는 슬픔의 무게를 나는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고 박완서 작가는 하루아침에 20대의 젊은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애끓는 슬픔 속에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하루하루 이어갔다. 그 시기에 88 서울 올림픽이 열렸다. 어디를 가도 축제의 들뜬 분위기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그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더욱 가눌 수가 없었노라고 훗날 고백했다. 이상한 소외감 속에서 나는 그녀의 고백이 떠올랐다.        



그날 오후에 한 연주회에 참석했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가 주제인 서울국제음악제의 폐막 연주회였다. 연주 전, 음악감독이 전날 밤 발생한 참사를 언급하며 묵념할 것을 제안했다. 홀로 감당하기 힘겨운 슬픔이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청중 속에서 비로소 놓일 자리를 찾은 듯했다. 과거의 비극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작품을 들으며 반복되는 비극을 반추했다. 혼자 감당할 수 없기에 함께 나누어야 하는 슬픔이 있다. 개인적 상실도 그러할 진대, 대규모적 희생은 더욱 그러하다.     


국가에서는 비극 발생 후 일주일간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했다. 많은 연주회를 포함해서 국가 기관 주체의 행사들이 즉시 취소됐다. 음악은 사회의 유용성의 측면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는 영역 중 하나다. 그러나 해외단체 내한공연을 비롯한 그 외 공연은 진행됐기에, 그 주에 두 개의 연주회에 더 참석했다. 빈 필하모닉은 본 연주에 앞서 함께 묵념한 후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드높고도 부드럽게 흐르는 선율에 뭉쳐있던 무거운 마음이 흔들렸다. 옆자리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애도 기간 끝 무렵에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연주를 마친 후에 비발디의 <사계> ‘겨울 2악장’을 추모의 의미로 연주했다. 온화한 선율이 조심스럽게 마음을 어루만졌으며, 현을 튕기는 피치카토들이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든 것이 지상의 무게를 벗어난 듯 가뿐했다. 지극히 행복한 음악을 타고 눈물로도 쏟아지지 않는 슬픔이 마음에서 넘실거렸다. 위로를 받으며 그제야 내 마음도 다쳤다는 것을 알았다. 떠난 이들과 남겨진 이들에게 닿을 수 없는 위로라 할지라도 간절해졌다. 음악 안에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는 연대가 마음을 연결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안전망이 되어준다고 느꼈다. 마음을 나누며 그동안 짓누르던 슬픔의 무게가 여전히 버겁지만 그래도 버틸만해졌다.      


숨 쉴 틈조차 없이 사람들에게 겹겹이 쌓여있다 정신을 잃었던 한 참사 생존자의 마지막 기억은 당시 위에서 보고 있던 어떤 이들이 죽어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웃으며 찍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때의 기괴한 상황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끝까지 손잡고 있던 친구는 죽었다. 상실감에 더해 그녀는 사람에 대한 환멸에 시달리고 있었다.      





애도에 정해진 기간이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떤 비극 앞에서는 감히 건넬 수 있는 말조차 없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슬픈 음악뿐만이 아니라 즐거운 음악 속에서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관을 함께 짊어진다. 달랠 수 없는 마음을 달래기 바라며, 무너졌던 인간성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인간다움이라는 눈물겹고도 눈부신 단어 앞에서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덜어내기를 바라며.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섣부른 약속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파도가 일렁일 때 깊이 가라앉은 슬픔의 관을 때때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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