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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실물보관소 May 30. 2023

딸에게

그렇게 혼내는 게 부모가 할 일인 줄로만 알았어

딸은 혼자가 익숙해지고 있다.

어색하게 코드가 맞지 않는 친구를 만드는 것보다, 혼자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금요일마다 아이들을 태우러 학교(기숙사 중학교)에 간다.

딸아이가 먼저 와서 2열에 앉아 있는데, 늦게 온 친구가

“야, 너 뒤로 가서 앉아. 내가 여기 앉을래.”

“어 그래, 내가 뒤로 갈게...ㅎㅎ”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자리를 내어준다. 혹은 처음부터 3열에 앉는다.    

 

부모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보다, 정제된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 들의 대화 속에서도 부모는 많은 것을 읽어내고, 느낀다.      


집에 와서, 첫째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나는 정~~말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원래 우리들 말투가 그래. 아빠.”     

‘너도 아빠가 없을 때는 말투가 그런가 보지? ㅎ 아마도 ㅎㅎㅎ’     


.....


한 스님이 말씀하셨다.

부모가 아이의 기회를 빼앗아버리면 안 된다고.

세상에 태어나서 아이가 겪어내야 할 과정이 있는데, 부모가 아이의 어려움을 모두 다 풀어내주려고 하면, 아이는 부모가 없어지고 나서야 그 과정을 다시 겪게 된다고.     




딸아, 스스로 단단해지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친구에게는 배려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습관이 되어버리니까 말이야.    

늘 말했지만, 혼자라도 괜찮아.

 

아빠에게 너무나 후회되는 일이 있는데,  

그건 너희를 키울 때, 아빠가 너무 어렸다는 사실이야.

너희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했어.

너희에게 너무 많은 두려움을 가르쳤어.     


이거는 안 된다. 저것도 안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 마라. 그러면 안 돼.

배려할 줄 알고, 남을 생각할 줄 알아야지...

조금만 버릇없는 행동 해도 혼쭐을 내주었어.


아빠는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혼내는 게 부모가 할 일인 줄로만 알았어.

그때는 나도 ‘어리고’, ‘세상이 힘든’ 아빠였어.

물론,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도 어리고 철없는 아빠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빠는 ‘세상에는 많은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너희에게 주입하고 만 거야.

너희는 아빠의 말을 듣고, ‘세상에는 해서는 안 될 것이 참 많구나.’라고 느꼈을 거야. 지금은 기억이 안 나겠지만...     


“난 이것도 못 해. 저것도 못 해. ~하는 건 무서워. 싫어”라는 너희들의 말을 자주 듣게 되면서, 아빠는 아빠가 뭔가 잘 못 했다는 것을 깨달았어.     

 

너도 알겠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 아빠는 너희 둘을 혼내 일을 그만두었어.


그렇게, 아빠가 ‘두려움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고, 너희들의 친구가 되기로의 결심한 후, 네 동생은 많이 변했어.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고.     


자존감 제로였던 네 동생은 조금씩 자신감이 붙어가는 게 보인다!

표정도 밝아지고, 목소리도 명랑해지고 있어.     

엊그제,

“아빠는 나를 너무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빠는 아마 그러지 못할걸~”이라는 동생의 말을 들었을 때, 아빠는 속으로 감동했어. 동생에게 고마웠고, 대견스러웠어.

정말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렸어.      


하지만, 너는 동생처럼 빠른 변화는 없는 것 같아.     

시기를 놓친 것일까?        

시간을 되돌이킬 수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텐데.

사랑과 축복의 말을 더 더 많이 해줄 텐데...


읽기 싫으면 안 읽어도 되지만, 아빠 어렸을 때 얘기를 해줄게.     


80년대 국민학교, 중학교에는 동급생 사이에도 서열이 있었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키 작은 어린이가 남자로 성장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위압감을 아빠도 엄청 느끼고 있었어.     


무서운 건, 무서워하는 감정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었어.

그것마저 들켜버리면, 그날로 모든 게 끝이야.

어떤 친구들은 키 작은 아이를 툭툭 건드리고, 놀려먹는 재밋거리를 즐겼는데.    

    

당시에는 ‘아이들은 다 싸우면서 커가는 거다.’라는 분위기였고,

한 반에 60명씩 10개가 넘는 반 학생들 사이에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선생님이 다 알 수도, 통제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키가 작았던 아빠는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정말 학교 가기가 싫었어.

어른이 돼서, ‘싸이월드’라는 온라인 동창 모임 커뮤니티가 유행을 했고,

그 커뮤니티로, 국민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는데, 우리 반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무서워 보이던 아이는 그때 그 키에 멈춰 서 있었고, 표정이 넘나 귀여웠다!     


성장하는 시기는 모두 다 다르다는 얘기야

어려도 되고 늦어도 괜찮아.

하지만 그런 자기를 자기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기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몰라


아빠 생각에.

앞으로 사회는 더 정교해지고, 더 높은 의식 수준을 요구할 것 같아.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과 행동이, '범법(법을 어김)'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다.


지금은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흑인과 노예가 해방되었 듯,

동물을 잡아먹지 못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고.

플라스틱이 일상생활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고.

약자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면, 지탄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처벌을 받게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몰라.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는 것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니까, 아마도 감정을 읽는 것이 '사회적 능력'으로 인정받게 될지도 모르겠어.     

재미없는 얘기만 잔뜩 해버렸네.     


아빠는 네가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

과거는 배가 지나온 자취같은거래


그러니,

"또 나때문이구나."

"나는 멍청해서 그래"

이런 말은 의식적으로 조금씩 줄여나가줬으면 좋겠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빠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거든.

미안하고, 사랑한다.


다음에 웃으면서, 그런때도 있었지! 하자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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