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울린다. 알 듯 말 듯 한 숫자들이 벨소리를 따라 춤을 춘다. 번호를 하나하나 더듬고 낚아본다.생각나는 이름이 없다. 단서라곤 아침나절 미리 온 ‘반가운 사람이니 전화하면 받아 달라’는 정체불명의 문자 한 통. 누구인지 맴돌아 봐도 애꿎은 숫자만 귀찮은 듯 자꾸 도망치고 있다.
정체불명 문자의 주인은 오래 전 이웃이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도봉동, 우현엄마 어쩌고 했을 때 이미 나는 이십오 년 전 그 집 현관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한 탐스런 꽃바구니와 식탁 위에 우아하게 펼쳐진 뮤지컬 티켓 두 장 게다가 그것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내 씁쓸한 표정까지 단숨에 떠올랐다.
정희언니라고 불렀던 우현엄마는 결혼 후 도봉동에 첫 살림을 차렸을 때 알게 된 나보다 네 살 많은 이웃이었다. 고향이 같은 경상도라 그녀에게 더 끌리기도 했지만 허스키한 목소리에 정이 뚝뚝 흘러 넘쳐 낯선 타지에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준, 내게는 그저 고마운 사람이었다.
전화기 속 그녀는 폭포수 같았다. 그녀 덕분에 그간 잊고 살았던 이름들이 순간순간 이십 여 년 밖으로 튀어 나오기도 다시 그 안으로 스며들어 추억의 한 칸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날 저녁 정희언니의 목소리가 세월을 몇 계단씩 오르내릴 때마다 덩달아 울고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숟가락 개수까지 헤아릴 정도로 친했던 언니와 연락이 끊긴 것은 십 여 년 전 그녀가 필리핀으로 이민을 가면서부터다. 그전까진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서로 소식을 주고받았건만 이후론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정희언니를 부러워했다. 아니 닮고 싶었다. 갓 결혼한 나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손끝이 야무진 5년차 주부인 그녀의 집은 언제나 반들반들 윤이 넘쳤다. 음식솜씨까지 좋아 그녀가 부르는 날은 수첩과 볼펜이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다닐 정도였다. 지금도 빗소리가 카랑카랑 들리면 정희언니가 만들어 준, 해물을 잔뜩 올린 두툼한 파전과 뜨끈뜨끈한 멸치 국물에 손으로 툭툭 뜯은 굵은 수제비. 그 구수한 한 그릇이 따뜻한 그림처럼 떠오른다.
그녀가 그녀 남편의 폭력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자랑이던 남편이 직장동료와 살림까지 차리며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둘의 관계를 알아챈 언니가 직장동료를 만나 한바탕 소동을 벌였는데 그것을 알게 된 언니 남편이 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믿고 있던 둑의 이곳저곳에서 물이 새고 있다는 보고를 듣는 것처럼 언니 소식은 허망하기만 했다. 당시 나는 5년간 살았던 도봉동을 떠나 용인의 새 아파트로 이사 간 직후였고 한창 그녀에게 배운 대로 집 꾸미는 재미에 빠져 있던 찰나였다. 처음엔 서툰 결혼생활의 지침서 같은 그녀였기에 두 귀를 의심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기분,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이 어깨의 뻐근함과 함께 나를 서서히 짓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그녀 집 현관 입구를 탐스럽게 장식한 화려한 꽃바구니는 어디로 갔을까. 딩동 소리와 함께 등장한 붉고 하얀 꽃바구니. 그 꽃바구니 안으로 촘촘히 퍼진 정희언니의 뿌듯한 미소와 교차된 내 부러운 시선. 그때 이미 환호와 탄성으로 빚어낸 수다도 꽃바구니에 갇혀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언니 남편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고 철학책을 즐겨 읽었으며 생일이나 기념일마다 아내에게 꽃바구니를 선물하는 낭만적인 남자였다. 음악회나 뮤지컬이 있으면 일찌감치 티켓을 예매해 아내에게 선물하는 섬세함까지 갖춘 남자이기도 했다.
그녀 부부는 싸운 적도 없었다. 신혼시절 남편과의 소소한 갈등으로 언니에게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면 오히려 부부싸움을 왜하냐며 타이르기도 했다. 언니를 볼 때마다 별 것 아닌 일로 토라지는 내 모습이 창피해 애꿎은 남편에게 불똥을 튀긴 적도 많았다.
허망한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언니에겐 두 아이가 있는데 첫째는 언니가 결혼한 이듬해에 낳은 아들이고 둘째는 내가 용인으로 이사 가기 일 년 전 그녀부부가 복지기관에서 입양한, 두 돌이 채 안 된 딸아이다. 결혼 초부터 입양할 계획을 세웠다는데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 부부가 딸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존경심이 우러났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차마 그녀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갈 수도, 한동안 얼굴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꼭 공들인 화장 밑에 비단결 같은 섬세한 주름이 여기저기 드러난 민낯을 보듯 앞뒤가 다른 부부 모습이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질 것만 같아 두렵기까지 했다. 언니 남편은 그동안 그녀가 정성껏 가꾼 것들을 겉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벗겨 송두리째 흔들어댔다.
언니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집을 나갔고 몇 해 동안 줄기차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녀 때문에 회사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며 직장을 그만둔 채 아들인 우현이와의 연락도 끊어버렸다. 생계가 걱정된 언니는 두 아이를 친정에 맡긴 채 일을 해야 했고, 강압에 못 이겨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유혹이란 깜박깜박 오는 졸음처럼 한순간에 덮치는 것인지, 십 년간의 행복을 도둑맞은 그녀를 보며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흐느끼는 정희언니 목소리를 들으면서 일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부부의 일에 어수선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언니 남편은 경남 사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서울대를 입학한 수재였고 이른 나이에 대기업 부장까지 맡을 만큼 능력 있는 남자였다. 언젠가부터 그녀 남편은 자기를 옥죄는 집이 싫다며 지금부터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싶어했다고 한다. 본래 모습 위에 세상이 원하는 색깔로 덧칠되어 숨 막히는 시간을 보냈다 보니 오히려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내부의 속삭임이 그 누구의 충고보다 몇 배의 설득력을 지니게 된 것은 아닐까. 비록 불륜을 저지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만들고 지켜왔던 모든 성 안에 자기만 녹아들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녀 집을 동여맬 밧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다투더라도 서로를 세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면 갑작스런 급류에 소용돌이치듯 휘말리진 않았을 것을. 그녀가 자신의 남편이 다시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그녀 남편이 긴 방황을 끝내고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오랜 내부의 속삭임이 끝내 자기 자신을 비틀고 옭아매 버렸는지 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필리핀으로 떠나기 몇 달 전 그녀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혼 후 직장동료와도 헤어지고 우울증과 뒤늦은 후회에 갇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십 년 만에 듣는 언니 목소리는 밝았다. 슬픈 냄새가 구석구석 스며있는 이곳이 싫다며 떠났던 그녀. 어느새 우현이도 서른이 되었고 입양한 딸아이는 스물두 살 풋풋한 여대생이 되어 있었다. 두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견뎌야했다는 그녀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도 나고 비 오는 날 부침개를 구우며 함께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다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정희언니 집 현관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붉고 하얀 꽃바구니. 이제는 그녀 남편도 자기가 만든 그 성 안에 완전히 용해되어 언니와 두 아이를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겠지. 생전 안타까운 마음이 바구니 속 붉고 하얀 꽃들 사이로 하나씩 소담스레 꽂혀 그녀 집을 튼튼히 에워싸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