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정신없이 밤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는데, 커튼을 활짝 열어 젖히니 황량한 대지가 햇빛으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풍경이 그제서야 두눈 가득 들어온다. 바다가 끝난 것이다. 아, 함피에 도착했구나.
도착하자마자 한 눈에 이 도시에 반해버렸다. 걸어서 마을을 하루에 열 번은 돌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데 조금만 나가면 웅장한 돌바위산으로 둘러싸인 곳. 그 돌들로 정성스럽게 지어진 사원들이 드넒은 평원 군데군데 박혀서 오묘하게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함피에서 나는 길거리 아무데나 늘어져 가끔 눈만 끔뻑끔뻑하는 강아지 무리에 섞여 있어도 될만큼 한가로웠다. 유일하게 부지런할 때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었다. 거대한 돌무더기가 쌓인 평원 위로 온 세상이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웅장한 광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가득 차서, 다른 무엇을 더 하겠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다.
이 동네는 작은 강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징검다리가 없어서 반대 쪽으로 건너가려면 매번 삯을 내고 보트를 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주로 '강 건너'에 머물러 있었다. 사원과 돌 산들은 강 건너기 전 마을에 주로 모여있었기 때문에 강을 건너야만 제대로 볼 수 있었던 탓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해가 너무 뜨거워지는 한낮에는 더위를 핑계로 까페에 털썩 주저 앉아 신성한 사원과 거대한 돌무더기가 빚어내는 풍경을 앞에 두고 오래 빈둥거렸다. 위로 늘어지는 나무 그늘과 아래로 흐르는 강을 액자삼아 풍경이 와이드뷰로 시원하게 펼쳐졌다.
이곳에서 나는 참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에 부지런했다.
일주일을 더 있어도 똑같이 보냈을 테지만 마지막은 늘 아쉬운 법. 이 멋진 바위 중에 하나를 골라 하늘을 배경으로 락 클라이밍도 하고, 이미 두 번 갔던 사원을 가서 서너번째 보는 '신성한 코끼리'의 코를 쓰다듬고, 여태 가지고 다니지도 않던 카메라를 꺼내 다 똑같아 보이는 사원의 돌 벽을 스무 장도 넘게 찍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매번 갔던 식당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이스라엘 요리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건너편 풍경을 바라본다. 매일 죽치고 앉아 보던 풍경이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누군가 내 고개를 앞으로 밀어 저 액자의 그림 속으로 푹 담가놓은 것 같았다.
마지막 날이라는 감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날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마냥 분위기에 빠져들어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내가 이 거대한 그림의 구석구석까지도 빼곡하게 채워넣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저 골목 오른쪽 제일 끝에는 염소를 키우는 신경질적인 할머니의 낡은 집이 있고, 그 위쪽으로 새벽 일출을 보러 가던 어스름에 개들의 습격을 당해 줄행랑을 쳤던 광장이 있고, 일출이 아름답던 마탕가힐 정상까지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길과, 그 길에 친구가 휴대폰을 빠트렸던 무섭도록 깊고 까만 골짜기까지 코 앞에 있었다. 왼쪽으로는 강을 건너는 보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롭상 일행을 따라서 묵었던 허름한 숙소까지 가는 길이 보인다. 캐리어 끌고 짐을 이고지고 따라갈 때는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길이 저렇게 가까웠나 싶다.
내가 직접 발 디디고 걸어왔던 곳을 이렇게 멀리에서 떨어져 볼 때, 비로소 그 곳을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을 떠났다가 일상으로 돌아왔다. 똑같은 곳을 다시 걷는 하루 속에 끝난 관계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렇게 부지런히 탐험하던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수없이 길을 잃으며 마음 속 작은 골목 하나하나를 직접 다 걸어본 덕이겠지.
잘 알지 못하고 사랑에 빠져서 여전히 잘 알지 못하는 사이 끝나버렸다. 끝날 때까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떠날 수 있었나 싶다. 뒤늦게 찾아온 그것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쓰다듬어 본다.
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우리는 왜 알고 싶어질까?
이해할 수 없을 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또 알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질 것이다. 모순 속에서 우선은 내 몸을 던지고 우겨넣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