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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주아빠 Apr 14. 2024

스타트업과 육아의 런웨이

금융 대신 어떤 자본을 투입할까


스타트업에 합류한지 이제 만 2년이 가까워 온다. 주말에는 종종 그동안의 일들을 돌이켜볼 때가 있다. 당연히 아쉬움이 남는 지점들이 참 많다. 무엇보다 당시 당면한 문제에만 너무 몰두하느라 좀 더 넓은 시야를 고려하지 못했을 때가 가장 아쉽다. 혹시 런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글을 시작해본다.



스타트업의 특수성: 런웨이


‘런웨이’는 투자받은 금액이나 곳간에 쌓인 돈이 바닥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 만약 1억원의 투자금이 있고 매달 1천만원씩 적자가 난다면, 런웨이는 10개월인 셈이다. 반대로 매출이 늘어 흑자로 돌아서면 런웨이는 무한대로 뻗어나간다.


런웨이가 길수록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펼칠 여력이 생긴다. OpenAI는 7년 이상을 몰두해서 통해 ChatGPT를 세상에 내놓았고, 아마존은 도서부터 컴퓨팅(클라우드)까지 무엇이든 배송(delivery)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냈다. 반대로, 당연히 런웨이가 짧으면 당장의 성과에 몰두할 수 밖에 없다. 



신뢰자본으로 투자하기


그런데 사업이 아닌 일반 직장인들은 개인에게 남아있는 돈을 따져가며 마감일자를 고려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일을 끝낼 때까지 ‘버텨야만’ 하는 기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어떤 이들은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장기적 안목을 갖고 업무에 임하곤 한다. 이는 마치 런웨이가 짧은 스타트업과 긴 스타트업의 차이와도 비슷해 보인다.


이 차이를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신뢰’가 아닐까 싶다. 동료나 상사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획득한 사람은 긴 런웨이를 보장받아 더 긴 호흡으로 일할 수 있는 반면, 신뢰가 쌓지 못한 사람은 눈앞의 성과를 쫓느라 장기적 성장의 기회를 보장받기 어려울 수 있다.


신뢰를 전달하는 입장도 있다. 함께하는 동료의 역량이 뛰어나더라도 믿고 맡기지 않는다면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쉽게 빠져들 수 있고, 팀 전체가 단기 성과에 매몰될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에는 더 지혜롭게 위임하고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나에게로 향하는 자기 신뢰


그런데 신뢰는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도 신뢰의 크기는 오르고 내린다. 


내가 나를 믿는 만큼, 즉 '자기 신뢰'가 클수록 런웨이는 비례해서 늘어날 수 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작은 실패에 덜 흔들리고 자기 길을 가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만의 장기적인 추세선을 그리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반면 자신을 의심하면 런웨이는 자연스레 줄어들 수 있다. 이미 잘 해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더라도, 사소한 반대 의견에 위축될 수 있다. 독창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도 익명의 대중을 걱정하며 방향키를 급히 틀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


이 고민을 육아로 확장하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긴 런웨이'를 마련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넉넉한 재력으로 물질적 뒷받침을 해주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많은 부모에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재력으로 이어질 가능성 높은 요소들을 촘촘하게 갖추어줄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초등 의대반이 개설되는 배경이다. 이 방법은 꽤 말이 되고 실제로 리스크도 적다고 볼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역할을 잘할 자신은 솔직히 없다.


그래서 신뢰자본을 잘 활용할 수는 없을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두 가지로 요약하게 되었다.


하나는 긴 호흡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초반의 성과로 조바심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슬럼프도 같이 감내해줄 수 있는 품도 필요하겠다. 


또 하나는 스스로 신뢰자본을 쌓는 기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 도움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방해없이 몰입할 수 있게 어느 정도 긴 시간을 적극적으로 관망할 수 있는 용기가 꽤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믿고 의심하고 다시 믿어보는 기회를 빼앗지 않는 것이다.



적극적인 관망이 뭘까?


최근 술자리에서 가까운 친구로부터 재밌는 일화를 들었다. 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내면서 경험한 일이었다. 많은 미술학원은 아이가 집에 들고가는 버전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진행하고, 부모님 고객의 만족도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이가 다니는 동네 미술학원은 부모님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냥 아이가 원하는 걸 원하는대로 표현하도록 내버려두고, 그걸 집에 가져가도록 했다. 이 아이는 평소에 ‘집(house)’을 너무 좋아했던지라, 두어달 동안 매번 똑같은 집을 계속 만들었다. 학원을 다녀오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 입장에서는 잘 납득이 안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하나의 집을 만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외관도 훨씬 크고 내부도 제법 복잡한 집을 들고 왔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에게 신나게 자기만의 상상을 이야기했는데, 그제서야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은 긴 호흡


솔직하게 말하면, 글을 쓰다보니 너무 이상적인 방법론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나도 정작 스스로 실천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서 겪어본 생각들이 육아에도 적용할 법하지 않을까? 각자의 관점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긴 호흡으로 내다봐야 한다는 건 명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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