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전 9시 20분에 눈을 떠 보았다
2주 전, 지방에 사는 처제가 오랜만에 집에 놀러 왔다. 우리 첫째 생일도 있고, 가족식사도 하고, 겸사겸사.
우리 아이들은 이모가 오기 며칠 전부터 꼭 이모랑 같이 잠을 자겠다고 별렀다.
처제는 우리 첫째 등교, 둘째 등원 다 맡아주겠노라 약속하며 아이들을 옆에 끼고 잠들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 이모 덕에 오랜만에 아이들의 수면 방해 없이 꿀잠을 잤다.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 나는, 와이프도 연차를 썼겠다- 처제도 있겠다- 여유 있게 아침 좀 보내보자는 생각으로 모두 잠든 사이 집을 나섰다.
아마 7시도 되기 전에 출발했던 것 같다.
7시 39분에 "회사 도착!"이라고 카톡을 보낸 기록이 있었다.
첫째 생일 다음날은 유독 날씨가 좋았다.
아내는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일어났다.
'왜 이렇게 바깥이 밝지?'
아무튼 남편인 나는 당연히 없었고, 온 집안이 조용했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9시 20분이었다.
그리고 e알리미에는 "8시 25분 등교 완료"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휴가라 모든 알람을 꺼두었는데 이렇게 늦게까지 잘 줄은 몰랐다.
요즘 출장도 많고 피로가 많이 쌓이긴 했다.
아내는 '동생이 아침부터 수고했네' 생각하고 아이들 방으로 갔다.
그런데 처제도, 둘째도 아주 잘 자고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생 1학년 첫째는 침대에 없었다.
(아내) "재주 (학교) 보냈어?"
(처제) "아니?"
(아내) "얘 어디 갔어?"
(처제) "몰라?"
(아내) "...?"
일단 e알리미도 오고 등교는 잘했다니 한 숨 돌렸지만, 어떻게 나갔는지 알 턱이 없었다.
(다행히 집에서 학교까지 등교길은 횡단보도가 하나 있긴 하지만 매우 안전하다)
그렇게 거실을 나와 두리번거리는데 피아노 위에 이런 쪽지가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뒤적여보니 아침에 찍은 사진도 한 장 있었더랬다.
엄마가 깰까 봐 엄마 휴대폰을 들고 거실로 나와 셀카 한 장 찍어두고,
바나나 하나 까먹고 심지어 음식물쓰레기봉투까지 넣어두고.
이렇게 아무도 보지 못한 그 날 아침을 이렇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우리 아들이 얼마나 컸나 실험해 볼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 확인했다.
아침에 내가 닦달하며 챙길 때엔 티비 쳐다보면서 엉덩이 꿈쩍도 안 할 때도 많건만...
이런 걸 세렌디피티라 불러야 할까?
첫째가 우리에게 생일 선물을 준 것만 같았다.
'엄마아빠 낳아줘서 고마워요'보다 훨씬 뭉클한...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자라 있고, 자라고 있다.
여유 있게 기다리지 못하고 쉽게 믿지 못하는 내가, 아직 한참 모자란 부모가 아닌지 되돌아보는 날이었다.
아들... 언제 이렇게 컸니...
아내는 여전히 이날 사진만 보면 눈물 찔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