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기억하고 싶은 이유
(브런치 무비패스 #1) I am Heath Ledger (2017 / 10 / 11 )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어렸다. 다크 나이트라는 영화도, 히스 레저라는 배우도 잘 몰랐다. 얼굴에 흰 칠을 하고 빨갛게 입술을 바른 '무서운 조커'가 죽었다. 캐릭터에 대한 지나친 몰입이 결국 재능 있는 배우를 우울증으로 몰았으며 극복하지 못해 끝내 자살했다. 그 정도로만 알았다. 어렴풋이, 루머에 일조하진 않았으나 그저 방관하는 구경꾼으로 히스 레저를 기억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누군가는 언론이 제일 처음 보도했던 소설을 아직까지도 사실처럼 믿고 있을 수도 있다. 그의 죽음은 약물 복용의 오용 때문이라는 전문 기관의 발표가 있었고, 후에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제법 큰 일들이 있었지만 이후를 기억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연한 사고보다는 비극적 결말을 더 좋아하기 마련인 인간의 못된 성미 때문일 수도 있다. 천재라면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삶을 사는 것보다, 자고로 드라마틱한 서사에 휘말려 비극적 엔딩을 맞는 게 더 어울린다는 통념적인 클리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삶을 살다가 우연한 사고로 생을 마감한 천재이다. 그래서 '아이 엠 히스 레저 (I am Heath Ledger)'가 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히스 레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조커 캐릭터에 몰입한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늘 그랬듯이, 연기를 시작하기 전 가졌던 몰입감 그 정도였다고. 그의 고향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을 지닌 채 세상을 향해 자신을 표현해내기 바빴다고. 누가 뭐라든 그는 항상 진실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선한 웃음을 지었다고 말이다.
영화는 개인의 경험과 결합되어 수많은 답을 만들어 낸다. 이 영화를 본 누군가는 그에 대한 기억을 연장시킬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새로 기억할 수도 있으며, 또 그의 연기를 좋아하게 될 수도, 아니면 그의 뒤를 따라 연기자가 될 수도 있다. 이야기 한 자락이 수백, 수천 갈래의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게 바로 영화가 지닌 힘이다.
그 힘은 나에게까지 와 닿았다. 이렇게 말하면 약간 민망하지만 일단 운을 띄웠으니 다 해야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히스 레저와 내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카메라로 세상 보는 걸 좋아하고, 내가 애정 있게 바라보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걱정이 많지만 항상 잘 해내고 싶어서 아등바등하는 사람이니까.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난 히스 레저만큼 훌륭한 외모가 아니며 카메라 앞에서보다는 카메라 뒤에서 이것저것 표현하는 걸 좋아하고, 나이는 비슷하지만 그에 비해 아직 쪼끔 가벼운 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거? 그래도 그 열정만큼은 조금이나마 비슷할 것 같다고 감히 얘기해 본다. 열네 살 때부터 허접할지언정 1n 년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썼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6mm 카메라와 DSLR을 이고 밤잠과 건강을 쪼개가면서 영상 제작 동아리와 지역 방송국 시민기자단을 전전했다. 공연 제작 프로덕션에 들어가서 DSLR과 영상 콘티를 들고 회의실과 현장을 뛰어다니며 4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부지런히 세상을 담았다. 정말이지 열심히 하는 부분에 있어선 누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갈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뭐든 잘 하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 이미 남들이 만들어 놓은걸 얼추 따라 만들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보기 좋을 정도로, 근데 다시 보고 싶진 않은. 나만의 뭔가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뭘 추구하는지 내 기준이 없었다. 남들이 자신의 호불호를 확고하게 표현할 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나 쳐줄 뿐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아이덴티티가 없었다. 글 쓰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라고 말하면 혹시 젠체하는 건 아닐지, 나도 모르게 있어 보이려고 허세 부리는 건 아닌지 하는 일종의 자기 검열도 생겨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기에 사로잡혀 즐기기보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글을 쓰면서, 주인공이 카메라를 켜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다. 그러면 맨 처음에 카메라를 켰다. 조금 허전한가? 그러면 카메라 전원을 눌러 켰다고 바꾼다. 다시 들여다보자 중언부언이다. 누른다는 행동을 빼자. 단순하게- 카메라 전원을 켰다. 아냐, 켰다는 단어 자체에도 전원이 포함되어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애초에 썼던 카메라를 켰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무슨!
짧은 시간 동안 그린 궤적이었지만 눈부신 궤적이었다.
'I am Heath Ledger'.
'자기 확신'. 히스 레저라는 이름 속에는 그의 삶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그의 아이덴티티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수많은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히스 레저를 견고하게 떠받드는 건 거리낌 없는 표현, 자신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자기 확신이었다.
'그를 떠올리면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요.'
사실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들어갔을 때, 빙빙 돌아가는 배경 속 히스 레저를 바라보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호텔에서 혼잣말을 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더니 다시 호텔방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특히 제일. 그만큼 영화 내내 그는 정말로 카메라를 통해 기록하고자 하는 열정과 뭐든 표현해내고 싶은 욕심으로 그득해 보였다. 스스로 피사체가 되거나 타인을 피사체로 삼아 표현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애정 있게 바라보는 대상 -친구, 가족, 자연은 물론이고 히스 레저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을 가감 없이 기록하고 탐구했다. 개중엔 계획적으로 촬영한 뮤직 비디오나, 사진 위에 물감과 스크래치로 덧그려 완성한 작품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매 순간마다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털어놓거나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고 웃통을 벗고 자유롭게 기타를 치는 장면처럼.
히스 레저는 내가 생각했던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약했다. 완벽한 연기를 해내고자 이면에 많은 걱정을 달고 살았다. '있잖아. 끝까지 해낼 자신이 없어.'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마다 매번 고민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갈수록 궁금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어떻게 완벽한 연기를 해했나요. 카메라 앞에 서거나 카메라로 세상을 담으며 당신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나요. 당신에게 이 수많은 일상의 기록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가슴속에 숨어있는 뭘 자극하고 건드려서 그렇게 잠도 못 잘 만큼 끊임없이 행동하게 만들었나요.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꼭 표현에 목적이 있어야 하나? 열정에 종류가 있어야 하나? 기록에 이유가 있어야 하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든 행동에 목적과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그걸 분류하고 싶어 한다. 표현하는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고 온전히 그저 내 궁금증이 행동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는 건데, 그건 주로 이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좀 더 그럴듯한, 명분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왜냐면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주체가 내가 아닌 게 너무 당연해서. 수능, 스펙, 취업, 결혼. 살아가며 단 한 번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타이밍이 없을뿐더러 그렇기 때문에 모두 그런 사람을 보면 대부분 염세적인 태도로 돌아선다. 유난이네.
그는 내 정답은 내가 찾아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기록하고 그 수많은 부유물 중 자신만의 또렷한 히스 레저를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기록은 탐구와도 같기 때문이다. 기록하려면 주변을 인지하고 내가 처해있는 상황, 그 성질, 나에게 끼치는 영향 등을 파악해야 한다. 그게 나로 하여금 어떤 감정을 들게 만드는지, 어떠한 행동 동기로 작용하는지, 어떻게 대응하게끔 만드는지 나만의 방식을 형성해 나간다. 이렇게 일련의 과정을 반복해서 학습하다 보면 주변은 물론이고 나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될뿐더러 뚜렷한 자기 의견과 주관을 갖게 된다. 누굴 따라 하고 모방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나만의 감정, 표정, 대응방식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 유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게 정말 유난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나는 더 당당해지기로 결정했다. 결심보다는 결정에 가깝다. 결심은 마음은 변하면 끝이지만 결정은 행동이나 태도를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차곡차곡 쌓아서 표현의 발판으로 삼고, 내 감정을 면밀히 살펴 나를 더욱 신뢰할 것이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저 거대한 판에 끼워 맞춰진 하나의 톱니바퀴로 마모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환하게 웃는 얼굴과 또렷한 눈빛으로 내 주관을 표현할 수 있도록. 더욱 대차게 밀어붙이려고 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을 때 다시 '아이 엠 히스 레저 (I am Heath Ledger)'를 볼 것이다. 내가 그의 뜨거운 열정과 멋진 자기 확신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는지 가늠하고자.
Hello, again. Heath Led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