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밤 Dec 19. 2018

글, 왜 쓰는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운이 좋지 않게도 교통사고가 나서, 버스가 전복되거나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모두가 부서지고 핸드폰과 노트북도 마찬가지로 불길에 휩싸여 형체 없이 녹아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내가 열심히 쓰고 만들었던 온갖 글과 사진들은 그저 공중분해되고 말 일이겠지. 뭐 하나 서면이나 실물로 남긴 게 없으니 내 뒤의 사람들은 그저 내 다이어리에 쓰인 잡다하고 엉망진창인 순간의 파편만 읽어 내려가며 얘 삶은 이랬구나, 되는대로 추측할 거고. 

 사람이란 참으로 기록의 욕구가 강하댔다. 내가 딱 그 짝이다. 저런 고민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 씩은 판을 키워 생각해 봤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내가 사라져도 내가 만든 기록물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까? 쓰고 기록하고 이젠 후대에 남길 생각까지 한다. 그냥 좀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쁜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아주 못 쓰고 찍는 것도 아니며, 누구보다도 착하게 살아왔는데 어째서 모든 게 공중분해돼야 하지? 후대에 물려줄 기록마저도 조건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중요도가 다르게 매겨지나? 기억될 팔자, 기억되지 않을 팔자 따로 있나? 내가 힘내서 꾸역꾸역 서면으로 뭘 만들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겠구나. 아니, 기억하더라도 제멋대로 기억하겠구나. 그래서 억울하다. 정말이지 타인의 제멋대로가 싫다. 다들 각자 자기 에너지 닿는 대로 생각하고 만다. 하나의 의도로 글을 써도 수십 갈래로 읽는다. 물론 나도 누군가에겐 자신의 기록을 바라보는 수십 갈래 편견들 중 하나겠지만, 원래 그렇지 않은가. 내가 하면 로맨스잖아. 


 첫번째. 어떤 식으로 기록해야 하나? 솔직히 책이 제일이다. 단순히 존재하느냐 마느냐, 유무의 문제로 따지자면 누가 읽든 말든 내 돈 들여서 책 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열 권만 찍어내도 다섯 권은 아무에게나 강제로 떠넘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개중 어느 한 권이라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세상 한구석을 떠돌겠지, 이런 생각은 죽기 전에 아주 큰 위안이 될 거다. 또 다른 방법은 이거다. 서면으로 남기진 않되,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읽히는 거. 첫 서두와 마지막 온점까지 갖춘, 완성된 이야기를. 내가 잘 쓰면 많이 읽을 거고, 읽고 나면 각자 어떤 생각을 할 거다. 그 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 그게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선하고 올바른 메시지를 담긴 이야기일 거니까 출력 값도 그거랑 비슷하겠지. 다른 생각이 들면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멀쩡히 심심하게 살던 사람이 우연히 여행 에세이를 읽곤 훌쩍 유럽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그렇게 파도 물결처럼 출렁일 순 없어도 적어도 호수 표면에 이는 잔잔한 일렁임 정도는 되면 좋겠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선한 뜻을 낼 수 있도록 말이다. 


 두번째. 그럼 뭘 다룰까. 주제에 관해 고민해보자면 고민할 것도 없이 자기 확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날 믿고 내 재능을 알아가는 거에서부터 행동력이 생긴다. 무기력한 이유는 자기 확신이 없어서 그렇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하나도 없다. 보통 부모나 교사가 학생들을 이미 잠재력을 지닌 대상으로 보고, 그걸 잘 펼칠 수 있도록 내면의 힘과 지식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냥 딱 봐도 우리나라 교육과는 굉장히 멀다. 있던 잠재력도 사장시키는 게 현실이니까. 나도 지금에서야 나에 대해 손톱만큼 알게 됐다. 결론은 그냥 나 생겨먹은 대로 살면 된다, 이건데. 알을 깨야 세상을 만든다는 그런, 희망차지만 죽도록 힘들어서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쳐온 사람으로서 그게 얼마나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운지 안다. 토할 정도로 힘들 때, 누군가 얕게라도 도와줬더라면 혹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일러줬더라면 싶었던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전문적이진 않더라도 콸콸 흘러가는 강물에 놓인 발바닥만 한 디딤돌 정도라도 되면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무튼 좀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이런 맥락에서 글, 정말 왜 쓰는가. 

 

 가끔 나를 잃어버린다. 마음과 몸이 항상 꼭 달라붙어 있을 수는 없어서, 가끔 두 개가 따로 놀 때가 있다. 마음이 앞서면 몸이 뒤처지고 몸이 앞서면 마음이 뒤처진다. 물론 신기할 정도로 착 맞아서 그럴 수 없이 기분이 상쾌해질 때도 있는데 인간은 타고나길 절반쯤 우울한 성향을 지니고 태어났으므로 안타깝게도 그런 날은 많지 않다. 들떴다가 차분했다가. 수조 탱크 안에 물과 기름 함께 따라 부어 놓은 것처럼 완벽하게 따로 논다. 내일은 기분이 좋으려나 생각해도 눈 떠 보면 희한하게 기분이 참 구릴 때가 있고, 하루 종일 별로인 기분으로 지내다가 다음날 눈 떴을 때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마음과 몸이 제각각이라서 그렇다. 기분은 매일같이 둘 사이에서 눈치를 본다.

  뭔가 깊게 생각해야 할 때.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이 던져졌을 때. 아직까지 답을 내리지 못했던 문제가 몸집을 불려서 다시 문제로 다가왔을 때. 혹은 너무 지쳐서 좀 쉬고 싶을 때. 밑바닥에서 헤엄치는 것도 힘들 때. 그렇게 가끔 나를 잃어버린다. 어디 흘린 게 아닌데 정신 차리고 보면 없어져 있다. 주변을 둘레둘레 살펴보면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 같았으면 죽어라 잡아당겼거나 정말 속상하다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일이다. 요즘엔 것도 다 됐다 싶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가만히 놔둔다. 포기한 건 아니다. 받아들이고 있다. 나한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매일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일단 두 보 후퇴와 조금의 힐링이 필요한 전사에 속하진 않더라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바닥을 고르게 다지고 넘어갈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런 생각이다. 다만 왜 또 잃어버렸나. 어디서 멈췄는가. 어떤 게 어려울까. 원인을 찾아 차근차근 살펴본다. 그걸 글로 쓴다. 여기서 이유를 찾는다. 


 글을 쓰다 보면 털어내기, 놔버리기, 내려놓기, 기타 등등이 가능해진다. 꽉 움켜쥔 아귀힘만이 힘이 아니라, 놓쳐버리는 힘 또한 힘이다. 그럴만한 힘이 생겼다는 게 참 좋다. 항상 제로에 가까운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아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거니와, 사람이면 달성하기 힘든 큰 욕심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솔직히 매사에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는 의문을 가져봤자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이미 일어난걸 어쩌겠어. 좋지 못한 기분은 결과일 뿐이다. 털어내고 나면 그만일. 그게 내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원인이 되도록 놔두고 싶진 않다. 제가 뭔데 감히. 뭐 그런 생각.

 

 좋든 나쁘든, 무슨 모양을 하고 있든 간에, 정말 우리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자. 

 그냥 살자. 나도 글을 쓰면서 가능해진 이런 얘기를 좀 남들한테 해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