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아내야
안녕, 남편. 나는 너의 아내야.
결혼 생활에 대한 글을 쓰기 전, 너에게 먼저 편지를 써.
앞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건 모두 널 사랑한다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서.
우리, 오늘로 만난 지 1643일이 되었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너와 있는 시간은 바람, 햇살, 노을처럼 너무 자연스러웠어.
가족보다 편하고 친구보다 즐거운 시간들이었지. 너와 함께라면 앞으로의 시간들도 나는 너무 기대가 돼.
사실, 너는 그리 좋은 남자도 아니야. 그건 너도 알고 있지? (모를 거야)
첫째로 너는 표현이 정말 어리숙해.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도 해야 할 시기를 언제나 놓치곤 하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아마 내가 지금까지 흘린 눈물의 반 정도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어쩜 그렇게 내 표정도 말투도 살피지 않는 건지 내가 한껏 참았던 말을 쏟아부어야, 그제야 너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수습을 하기 시작해. 이상하게 나는 그 모습을 보면 밉기는 해도 더 괴롭히고 싶지는 않아져.
그건 아마 나도 알기 때문일 거야. 사실은 네가 얼마나 제때 나를 위해주는지, 얼마나 적절하게 나를 도와주는지, 얼마나 크게 날 사랑해주는지. 나는 다 알고 있어. 그냥 가끔 심술부리고 싶은 거겠지.
어느 여자들이나 다 그렇듯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너에게 얼마나 우선순위인 건지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 해. 네가 그걸 조금 이해해주었으면 해.
둘째로 너는 나 외에는 다 착하고 나한테만 나빠. 너는 우리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선하고 착하다 소리를 자주 듣지. 다들 왜 그렇게 너보고 착하다 선하다 하는지 그 말을 계속 듣다 보면 나는 내가 나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어. 그래서 또 심술이 난 나는 주변에 계속 니 흉을 보지. 하지만 사실이잖아, 너는 나한테만 짜증내고 욱해. 기억을 못 해서 한번 더 묻거나 하면, 말 한 자 한 자에 힘을 주어서 말하면서 짜증을 담아 나에게 보내잖아. 그 짜증을 받은 나는 부글부글 속이 뜨거워져. 여하튼 짜증의 시작은 네 말투로부터 올 때가 많아.(난 그렇게 생각하지)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왜 자꾸만 주변에 니 흉을 보게 되는 건지. 왜 인지 너한테는 화를 못 내고 참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푸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나는 그냥 자랑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 너처럼 착하고 선한 사람이 나에게만은 정말 특별하다고, 나에게는 이만큼이나 편하게 스스로를 내보인다고. 어쩌면 나는 그냥 네가 짜증을 나한테만 내는 거에 안심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 남들과 다르게 나를 내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또 네가 아무리 나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도 나는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라고 무의식으로 알아주는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다만, 우리가 싸우는 게 사랑하니까라고 생각해. 사랑하지 않는 다면 싸울 일은 또 뭐가 있겠어?
세 번째로 너는 먹는 걸 너무너무 좋아해. 이제 그만 이별할 때도 되지 않았어? 니 배에 있는 그거 말이야. 우리 아직 서른하나에 왜 벌써 배 볼록 나온 아저씨가 된 건지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알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네가 키도 크고 잘생기고 돈도 많았으면 아마 나를 안 만났겠지 하고. 실제로 내가 이렇게 질문했을 때 너는 안 만났을 거라고 대답했잖아.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서 별로 서운하진 않았지만.. 근데 나는 너를 만났을 거야. 내가 예쁘고 키 크고 몸매가 좋고 돈이 많았어도 나는 너를 만났을 거야. 만나야 했을 거야. 너만 한 남자는 어디에도 없을 거거든. 아마 예쁘고 잘생긴 것도 어쩌면 별로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몰라. 너처럼 배가 볼록 나온 남자를 만나보지도 못할 거잖아. 뭐 잘생긴 남자가 나처럼 주근깨 가득한 여자를 만날 일도 당연히 없을 거고.
결혼은 그런 것 같아. 배가 볼록 나와도 좋은 사람과 하는 거지. 내 인생의 반쪽을 결정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난 네가 먹는 걸 너무 좋아하는 게 한편으로 참 좋아. 사실 그게 제일 귀여워. 먹는 거에 언제나 진심인 거?
더 쓰자면 한참 더 쓸 수 있는 데 말이야, 네가 썩 좋은 남자도 아닌 이유를.
그런데 계속 쓴다면 아무래도 남들은 이제 그만 작작해라고 말할게 분명해서.
여하튼, 앞으로 내가 이어갈 글들은 말이야. 너와 함께 해서 참 다행이라는 그런 이야기야.
결혼한다면 나처럼,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그게 결혼이라고.
아니, 하지만 반대의 이야기가 있어. 그래서 미리 밑밥 좀 깔아주는 거야.
결혼에서 이혼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결혼해도 다시 이혼만 하면 남남이 되는 그런 거라고.
그게 결혼이라고.
이런 솔직한 이야기를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대로 줄줄이 풀어놓아 볼 예정이야.
글이나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기록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 거야.
다만, 지금 당장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
너의 아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