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to Jun 27. 2024

하루아침에 급성 하지마비 강아지, 시월이 이야기

반려견 발치 수술, 마취 깨고 급성하지마비가 왔지만 다시 걷는 이야기

강아지는 가슴으로 낳는 가족이라고들 하죠. 예전엔 사실 그렇게 와닿지 않았어요. 강아지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피로 이어진 가족이랑 얼마나 같을까 솔직히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첫째 시월이는 개농장 구조견 출신으로 추정 6살에 입양했어요. 출산 경험도 있었고 열악한 곳에서 구조되어 몸도 마르고 털 모량도 엄청 적어서 건강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4년 넘게 아파서 동물병원 가본 적이 한두 번? 정도로 참 고마운 강아지였어요. 이제 10살 추정으로 노견에 들어서면서 올해 가장 비싼 건강검진도 해줬죠. 대부분 정상이고 관절이나 이빨도 걱정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고 몇 개월 안지나 앞니가 흔들리기 시작해서 처음으로 발치 수술과 함께 스케일링도 진행했습니다. 시월이를 처음으로 동물병원에 맡기고 혼자 나오는 거였어서, 병원을 극도로 싫어하는 애를 거기 맡기고 나온다는 게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어요. 시월이 맡기고 둘째 사랑이랑 산책하다 같은 유치원 다니는 강아지 친구를 만났는 데, 시월이는 어디 있냐 물어본 질문에 대답을 하다 눈물이 마구 쏟아져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허둥지둥 도망쳤을 정도로 눈물 수도꼭지가 완전히 고장 났죠.


그런데 그때도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첫 번째 수술은 잘 끝나서 애를 데리고 나오는 데 안심이 되고 ‘아 내가 너무 걱정했구나’하고..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번째 수술을 또 해야 했거든요. 스케일링을 하면 이빨을 더 꼼꼼히 살펴보게 되는 데 어금니에도 치주염이 하나 있어서 옆에 어금니 뿌리까지 녹이고 있다고요. 그래서 두 번째 발치와 치주염 치료로 마취하게 되었어요..

두 번째 수술은 맡기면서 울지도 않았어요. 이것만 하면 시월이 이빨은 이제 완벽해! 이제부터 관리 잘하면 시월이 죽는 날까지 이빨 때문에 마취할 일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시월이를 잘 부탁드린다 맡기고.. 사랑이랑 남편이랑 다른 지역 사는 친언니네 놀러 가기도 했어요.


근데 그날 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지인의 강아지가 암에 걸려서 치료비가 1000만 원이더라 그래서 엄청 열심히 돈 벌면서 치료한다고 하더라.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1000만 원을 쓸 수 있을까? 우리 강아지들에게 짠순이인 내가 천만 원이나 쓸 수 있을까? 못쓸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 애들은 그렇게 아플 일도 없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했고요. 건강검진 때도 추정 나이 대비 너무 건강하다고 추정 8살 정도로 봐도 된다 하셨으니까요. 그렇게 사랑이랑 잘 놀고 시월이를 데리러 갔어요. 병원에서 시월이 수술이 잘 끝났고 마취 깨고 있으니까 1시간 뒤에 오시면 된다 전화를 받고 병원에 시간 맞춰 갔어요. 그리고 조금 대기하다 부르셔서 갔는 데 수술한 수의사가 수술은 깨끗하게 잘되었다고 수술하며 찍은 이빨 사진도 보여주시고.. 뿌듯한 표정으로요. 시월이 데리고 나오겠다고 들어가셔서 아 잘됐구나, 다 잘 끝났구나 안심하고 기다렸어요.


근데 한 10분 정도 지나 다급하게 부르시더니..

시월이가 하지마비라고 하시는 거예요..? 정신없이 이야기가 오고 가고 저는 화를 내거나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 정신 차리고 내 반려견을 지키는 보호자가 되기 위해 이성을 지켰습니다.


수의사와 대화가 끝나고 시월이를 만났는 데.. 뒷다리를 질질 끌며 저에게 오는 거예요.. 온 마음이 무너지고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어제까지도 애견운동장 놀러 가서 펄쩍펄쩍 뛰며 저에게 달려오던 시월이가 뒷다리에 고통도 못 느끼는 디페인 상태의 하지마비라니요.


개팔자가 상팔자라던데, 우리 시월이는 왜 팔자가 이럴까 억울한 심경으로 3일을 매일 울었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수많은 선택들이 저에게 결정을 재촉했어요. 급성 하지마비 골든타임이 24시간이다. 24시간 내에 수술해야 한다, 침치료도 골든 타임 있다, 치료비 천만 원? 아니 2천만 원이 될 수도 있다, 등등 쏟아지는 정보들 모두 공부하고 가장 최고의 결정을 해야 했어요. 우유부단하고 남 조언에 팔랑이는 저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정보와 함께 그게 2000만 원이 될 수 도 있다는 걸 듣고 결정을 단번에 못하겠더라고요. 출근한 남편한테 전화를 했는 데 남편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주저 없이.


천만 원이든 2천만 원이든 해줘야 한다고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우리가 이럴 때 쓰려고 돈 버는 거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오함마로 맞은 거 같았어요. 그리고 당장 시월이를 데리고 수술할 수 있는 데로 가려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남편도 바로 반차를 내고 병원으로 왔고요.


결론을 말하자면, 결국 수술은 하지 않았어요. 여러 동물병원에 전화해 상담하고 여러 강아지 친구들에게 직접 격은 경험담을 듣고 결국 최대한 수술은 하는 게 아니다 하여 내과적인 치료 방법으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마취 깨자마자 하지마비가 와서 상태가 너무 안 좋은 시월이를 바로 다음날 또다시 마취시키고 수술대에 오르게 할 수도 없었어요. 그러다.. 시월이가 그대로 깨지 못할까 두려웠고요. 너무너무 다행히도 내과적인 치료방법이 잘 들어서 지금 시월이는 조금씩 걸어주고 있어요. 휘청이고 넘어지지만 하지마비되고 3주 정도 지난 지금 이 정도 상태면 경과가 정말 좋은 거라고 해요.


저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이고 매주 2번 병원 가서 시월이 등에 침도 맞히고 뜨끈한 수건으로 찜질도 해주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매일 1시간 이상 산책했던 시월이가 방에만 갇혀 지내야 하니 나가고 싶다 낑낑거리면 밤새 시월이 방에 이불 깔고 함께 있어줍니다. 저희 가족은 지옥 같은 시간을 지나 지금은 일상을 많이 회복했어요.


다람쥐 쳇바퀴 같던 매일 똑같은 반복적인 이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더라고요. 어떤 특별히 기쁜 일은 기쁜 일인 거고, 행복은 일상에 있더라고요.


이번 일로 제 마음을 잘 모르던 저는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가슴으로 낳은 우리 시월이, 사랑이가 행복하게 살다 강아지별 갈 때까지, 저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 이상의 행복을 함께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라고요. 그게 바로 가족을 사랑하는 강아지 엄마의 마음이고 그게 제 행복이라고요. 그리고 진짜로 가족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알려준 남편에게 깊이 감사합니다. 만약 남편이 우리 천만 원까지는 못써라고 말했다면 저는 아마 평생토록 진짜 중요한 걸 알지 못하고 가족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아직은 먼 이야기 지만 강아지별에서 시월이, 사랑이가 우리 엄마아빠는 최선을 다해 주었어. 난 참 행복한 강아지였지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지루하지 않은 행복한 일상을 보내며 저희를 기다려 주면 좋겠습니다.



-

좀 다른 이야기를 추가하자면.

살면서 계획하지 않은, 상상도 못 할 괴로운 상황들이 닥칠 때가 있어요. 얼마나 지옥일지 아무도 모르죠. 직접 경험했더라도 같은 지옥은 아니에요. 사람마다 느끼는 차이가 있으니 당사자가 아니라면 함부로 말할 수 없겠죠.

근데 저는 이거 하나만 남기고 싶네요. 어떤 지옥이든 간에 이성적, 현실적으로 일상을 회복하는 데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야 해요. 제가 말하는 일상의 회복은 하지마비 시월이가 다시 걷고 뛰게 되는 게 아니에요. 반복되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예요. 일상의 행복을 찾아서 유지해야 합니다. 무너지지 않고 반드시 일상을 찾아 행복해지세요. 아픈 강아지, 고양이의 가족 모두들,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믹스견 두 마리가 나에게 주는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