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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빈 Jan 13. 2023

소도시에서
브랜드두렉터로 살아남기

시골쥐, 갑자기 책방지기가 되었습니다(1)

키링사업을 집에서 하기에는 규모가 커졌고, 내 방은 너무 작았다. 박스는 쌓여져있고, 작업책상은 포화상태. 작업실을 구해서 키링사업을 계속 하던 중, 다시 한번 일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자기소개서에 쓸 수 없을 정도로 하찮지만, 잘하는 것들을 조합해서 처음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일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자신있게 답하지 못했다. 자는 시간 빼고 계속 만들었다. 주문이 많이 들어오면 행복해야하는데, 감사한마음은 넘쳤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키링디자인을 카피당하는 일도 수시로 생겼으나 보호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도 받았다. 카피가 난무하는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해야하지만,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앞으로 몇년 뒤에 이 사업으로 계속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새로운 상품이 나오지 않으니, 주문량은 떨어지고 새로운일을 찾아야 할때가 온 시점에서 코로나가 터졌다. 금방 지나갈 것 같았지만, 코로나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결국 타지역 이동도 어려워졌다. 도시에 살 때 나는 전시를 보거나, 독립서점에 가거나, 새로운 가게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 이런 것을 즐길 수 없는 소도시에 불만이... 전혀없었다. ktx로 한 시간이면 서울에 갈 수 있고, 문화생활은 당연히 대도시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자영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데, 한명이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가정이 흔들릴꺼라는 아빠의 판단하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타지역 이동을 금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일주일 그리고 열흘, 한달이 지나면서 문화생활을 전혀 할 수 없게 되자 행복했던 소도시의 삶이 불행해졌다. 문화생활이 전혀 안되는 상황이 화가 났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에 '문화생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어느 지역을 여행할 때 독립책방이 있으면 꼭 여행루트에 넣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익산에는 독립책방이 없었다.(2023년 기준 4곳이 있다!) 작업실에 공간이 있으니, 책을 하나 둘 가져오기 시작하면서 소도시에서의 두번째 일이 만들어졌다. 나는 '책방지기'가 되었다.





책방과 관련된 일을 해본 적도 없으면서 덜컥 책방지기가 되었다. 대형서점보다 동네의 책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책방지기의 취향이 담긴 독특한 큐레이션때문이다. 책방지기가 한 권, 한 권 직접 책을 골라오기 때문에 책방마다 느낌이 전혀 다른게 너무 좋았다. 이 책방의 책방지기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책을 골라와야 할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베스트셀러로 서가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소도시는 낯선 타인과 만나기 쉽지 않다. 대도시는 건전한 공간에서 다양한 주제의 모임이 잘 형성되어 있다.(*트레바리, 문토 등) 유영만 선생님의 책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에서 "타인을 지옥으로 생각하는 사르트르와 다르게 들뢰즈는 타자를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나를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이끌고 갈 '가능세계'로 보고 있습니다. (중략) 타자와의 지속적인 마주침이 과거의 세계에 머무르고 있는 나를 새로운 '가능세계'로 탈바꿈시켜주는 동력입니다"라고 쓰셨다. 소도시는 가능세계로 갈 수 있는 동력이 없다. 나는 서가를 통해 동력을 만들고 싶었다. 소도시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을 입고기준으로 삼았다. 책을 통해서 소도시의 사람들이 낯선타인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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