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파악한다(4) 나는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키링창업
익산은 내가 떠났던 7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새로울 게 없는 똑같은 거리, 몇 년 전에 본 베스트셀러가 아직도 진열되어있는 작은 서점.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소도시 익산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도시에서는 멈추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지 않기 위해서 나도 어디론가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소도시는 사람도 없고, 자극도 없었다. 나는 목표 없이 달렸던 트랙에서 드디어 멈춘 것이다. 이제부터 트랙에서 벗어나 나만의 길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아무것도 안 한 지 한 달째,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산으로 돌아왔으니 대기업도, 이름 있는 직업도 포기했다. 이유도 모르고 그냥 공부했던 토익, 한국사, 컴활 자격증 시험들도 관뒀다. 아주 사실은... 취업을 안 하면 진짜 도태될까 봐 무서워서 익산에서 자기소개서를 넣어보려 했으나, 지원할 수 있는 사기업이 정말 없었다. 그래서 눈 딱 감고, 너무 하찮아서 자기소개서에는 적을 수 없었지만 내가 잘하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소도시는 나에게 집중하기 좋은 곳이다. 자극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불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랭드보통은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의 취업소식에 축하하는 마음뒤에 항상 불안함이 있었다.
하찮지만 자기소개서에서 쓰지 못한 장점
ⓛ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 염탐한다. 관찰하고 분석한다
② 사진을 잘 찍는 다
③ 손으로 만드는 걸 잘한다
④ SNS를 잘 활용한다
⑤ 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툴(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등)을 할 줄 안다.
자기소개서 쓰기에는 하찮지만, 이 장점들로 소도시에서 첫 번째 일을 만들었다. 당시 애플이 에어팟을 출시했는데, 점차 에어팟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남들과 다른 에어팟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에이팟에 스티커도 붙이고, 에어팟 케이스를 소비하는 게 보였다. 남들과 다르고자 하는 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 아닌가. 에어팟케이스나 키링을 사입해서 팔아보려고 동대문에 갔으나, 상품들이 다 비슷했다. 온라인시장에서 비슷한 상품으로 경쟁업체와 이기려면 첫째 가격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나는 승산이 없었다. 사입개수가 많을수록 사입가격이 낮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투자할 자본이 없었다. 두 번째 방법은 나만의 색을 담아, 대체될 수 없는 상품을 파는 것이다. 커스텀키링을 만들어서 팔아보기로 결심했다.
대학교 졸업논문의 주제로 'SNS(소셜미디어)'를 선택한 것만큼 SNS를 분석하고 활용방안을 찾는 것에 흥미가 있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로 정의되지만, SNS별로 사용하는 연령대, 말투, 콘텐츠 형식 전혀 다르다. 내가 지금 판매하고 싶은 상품을 구매해줄 타깃을 민감하고 세밀하게 그려보면 SNS 중 무엇을 활용하고, 사진구도, 말투, 분위기, 소품 등을 정할 수 있다. 모든 것들이 상품에 담기면 타깃의 소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아우라가 만들어진다. 처음 시작했을 때 일주일 동안 15개 팔았다고 좋았다는 기록이 일기장에 남아있는데, 일 년 동안 인스타그램 판매계정은 7천 팔로워가 되었고 최소 15000개 정도 판매했다. 다음에 키링창업기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정리해 봐야겠다.
자기소개서에서 쓸 수 없는 하찮고 애매모호한 것들이 내 일을 만들 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애매모호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다재다능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해 줬다. 용돈정도만 벌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꽤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다시 돌아가면, 취업을 하지 않으면, 남들이 모두 달리고 있는 트랙에서 벗어나면 인생이 망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망하지 않는구나, 내 길을 만들어가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다. 키링은 내가 가진 능력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었던 첫 일이었지만 1년 반정도 운영하고 다른 일을 구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