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파악한다(3) 시골쥐의 도시생활 안녕.
출근을 하면 박사님께서 드립커피를 내려주셨다. 그때 처음 드립커피를 먹어봤다. 박사님과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자주 나눴는데 알쓸신잡을 눈앞에서 보는 느낌. 유쾌한 박사님덕분에 빠르게 적응했다. 내가 맡은 일은 자료조사와 보고서 편집이었다. 자료를 찾고, 어디에 넣으면 좋을지 고민하고, 보고서를 편집했다. 편집한 보고서가 발간되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웠다. 편집에 욕심이 생겨서 편집디자인 학원도 다니면서 일러스트, 포토샵, 인디자인의 툴도 배웠다.
단기로 틈틈히 일을 하다가, 사무계약직의 공고가 났고 면접을 봤다. 사무계약직은 주로 연구원의 한 부서의 행정업무, 보고서관리, 행사준비를 담당했다. 단기때는 박사님 한 명과 일했다면, 사무계약직은 전혀 다른 전공의 박사님 세 명과 함께 일했다. 청년정책, 도시건축, 도시정체성등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낯선 분야를 접할 수 있다는 게 몹시 흥미로웠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키워드는 책, 독립서점, 문화기획, 도시재생인데 모두 연구원에서 접했다. 사업제안기획서를 적을 때도, 연구원에서 접한 보고서들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체내에 쌓였는지 수월했다. 그리고 당시 편집디자인 학원을 수료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디자인일을 해보고 싶은 걸 박사님들께서 공감해주시고 일을 만들어주셨다. 문서로만 작성하면 되는 뉴스브리프를 디자인툴로 편집해보고, 현수막, 홍보물, 프레젠테이션 다양하게 제작해봤다. 디자인전공도 아니고, 경력도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주신 분들에게 지금도 감사드린다.
일을 하면 할수록 정체성을 가진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커졌다. 정체성이 확실한 박사님들이 너무 멋졌다.다. '사무원'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직업으로 나를 설명하고 싶었다. 계약이 종료되었고, 취업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로 꿰어낼 줄 몰랐다. 꿰어지지 않은 구슬들은 조금만 건드려도 흐트러졌다. 자기소개서를 쓸수록 그냥 이것저것 할줄 아는 애매모한 사람일 뿐, 전문적이지 않다는 콤플렉스도 생겼다. 나를 하나로 꿰어내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서 나를 돌아봐야 했지만 조급했다. 대도시는 멈출 틈이 없다. 자취방의 월세날은 다가오고, 숨쉴때마다 통장이 비워져갔다. 친구들은 말하면 모두가 아는 큰 기업에 취직하기 시작했다. 멈추고 싶지만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에 사이에서 나는 중심을 못잡고 어디론가 계속 쓸려가고 있었다.
가족은 참 신기하다. "여보세요"만 했을 뿐인데 감기에 걸렸는지, 자다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안다. 내 상황을 한번도 이야기 한 적도 없는데 아빠가 "익산으로 내려올래?"라고 먼저 물었다. "아빠 근데, 익산에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없을것같아"라고 하자 "아빠가 돈 열심히 벌어서 너 밥은 멕일 수 있다"고 했다. 취업준비하면서 돈아끼겠다고 편의점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던 나는 정체성이고 취업이고 나발이고 일단 따뜻한 집밥이 먹고싶어서 익산으로 갈 짐을 싸고 기차를 탔다. 기차는 높고 빛나는 건물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쳐 논밭과 낮은 주택과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내려줬다. 익산에서 뭐먹고 살지 막막했지만, 일단 따뜻하고 고슬고슬한 밥을 한술 크게 떠서 와앙하고 꼭꼭 씹어 삼켰다. 목이 막힐 즈음에는 냉이가 잔뜩 들어가서 향좋고 구수한 된장국을 후룩 넘겼다. 밥을 다 먹고 엄마가 예쁘게 깎아준 과일을 아삭아삭 받아먹고 따뜻하게 뎁혀진 이불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