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영어를 잘 하고 싶어요.
Harry는 영어를 늘 잘 하고 싶어했다. 5살 마지막 어린이집에서 행복한 새해를 기원하며 초롱불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소원을 쓰라는데 아이는 <영어를 잘 하고 싶어요>라고 써서 가져왔다. 나와 남편은 둘 다 ??? 라고 생각. 도대체 왜? 그래서 어린이집에 가서 다른 아이들의 작품도 보았는데, 다른 친구들의 소원은 '멋진 형이 되고 싶어요' '밥을 많이 먹고 키가 크고 싶어요' 대부분 이런 5살 다운 이야기들이었다. 대체 우리 아이는 왜 이런 소원을 적어왔을까?
우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일반 유치원을 보내는 대신 6살에는 영어유치원 애프터를 보내주었다. 영어유치원 애프터 클래스는 영어유치원 프로그램처럼 아이에게 노래나 춤, 요리 등을 '영어로' 가르쳐주고, 또 동시에 알파뱃, 파닉스 등의 수업도 진행하는 그런 일종의 유아 영어 학습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영어유치원처럼 긴 시간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보다 '학습적'으로 진행되고 아이의 영어 노출 시간은 당연히 그만큼 짧다. 그래도 아이는 거기서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친하게 지내던 싱가포리언 가족이 있었다. 아이가 21개월 즈음 처음 용산에서 만났다. 그 때엔 둘 다 말을 잘 하지 못했고, 그래서 더 잘 놀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 소통하며 놀아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 Harry는 그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5살이 되어서는 그 친구랑 놀기 싫다, 말이 안 통해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6살이 되어 영어유치원 오후반을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서로 단순한 소통이 다시 되기 시작했다. 아이는 영어만화, 영어 학습 앱 등을 열정적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세 후반이 되니 짧은 문장을 읽는 데에 막힘이 없는 수준이 되었다. 나는 '아 이 정도면 넘 잘한다' 싶었으나, SNS나 까페 등에는 잘 하는 아이에 대한 간증 글이 계속 올라왔다. 또 다시 불안이 샘솟는 순간. 내 앞에 있는 아이는 영어유치원을 가지 않아서 이 정도에 그치는 걸까?
아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자주 놀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영어로만 이야기하고 노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고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일이 잦았다. "너는 어느 유치원 다녀?" 라고 했을 때 영어로 대답하는 아이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장 큰 이벤트는 싱가포리언 친구와 놀다 다툼이 있었고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엉엉 울었다. 누군가와 놀다가 그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리고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더라. 보통은 서로의 마음을 들어보고 중재해주는 편인데 이건 상대방 아이에게 나도 입에 익지 않은 영어로 어떤 일인지 물어야 했던 것. 그리고 아들에게 왜 속상했냐, 그래도 이렇게 울면 안 되지, 니 마음을 잘 이야기 해야지. 라고 하는데 아들이 엉엉 울며 대답했다.
"그 말을 대체 어떻게 영어로 말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