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움, 역사, 단풍
2015년 11월 2일
옥상에서 바라보는 베를린의 풍경은 정말 이뻤다. 마드리드 이후로 이렇게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은 처음이었다. 런던의 야경 못지않게 반짝반짝 빛나는 야경이었다.
분명히 입에서 입김이 나오는 걸로 봐서 추운 건데 별로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오늘 하루 좋은 만남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베를린의 야경도 정말 이쁘다ㅜㅜ 베를린에게 받은 첫인상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79'
다시 만난 독일어는 정말 반가웠다.
날씨는 추워졌지만 베를린에서 만난 호스트 부부, 올리버와 이네스의 마음은 따뜻했다. 내가 베를린에 도착한 날 올리버는 나를 위해서 공항까지 마중 나와서 그의 집까지 차에 태워주었다. 그는 나에게 방 하나를 통째로 마련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아침에 먹을 수 있는 빵과 시리얼을 제공해주고 특별히 카푸치노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내가 음식을 넣을 수 있도록 냉장고 칸 하나를 비워주고 세탁기도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그의 집은 나에게 너무 과분했다. 카우치서핑은 숙박시설이 아니었지만 올리버는 나의 편의를 위해서 기꺼이 그의 집의 일부분을 준 것이다. 나는 그의 친절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Danke Schön"이라고 능숙하게 말하자 올리버는 웃으면서 "Bitte Schön"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국회의사당 투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올리버와 인사를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오늘 하루 종일 감자칩 하나밖에 못 먹었었기 때문에 나는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그러던 중 내 눈에 커리부르스트를 파는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바로 음식점에 들어가 커리부르스트를 샀고 마트에서는 콜라를 구입했다. 콜라에는 독일에서만 볼 수 있는 재활용 마크가 부착되어 있었다. 커리부르스트와 콜라의 재활용 마크,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더 반가웠다.
내가 독일에 처음 발을 내디딘 도시는 쾰른이었다. 유럽 북부에서 먹을 것 때문에 고생하고 온 나에게 쾰른의 길거리 음식들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로 붐비는 음식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음식이 바로 부르스트였다. 난생처음 맛본 부르스트의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재활용 마크는 내가 쾰른 역 마트에서 콜라를 구입하다가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독일은 Pfand라는 재활용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마트에서 구입한 캔이나 페트는 마트 혹은 재활용 기계에서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의 마트는 아침마다 집에서 가지고 온 페트와 캔을 재활용하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나도 쾰른부터 뮌헨에 있는 동안 재활용 제도를 이용해 적지 않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또 다른 반가움을 느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 승차권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해 옆에 있던 외국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친절하게 베를린의 지하철 제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 서로의 출신에 대해서 물어보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그는 서울에 여행 온 적이 있었고 그의 가족들도 서울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와 베를린과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은 항상 설렘과 새로움이었지만 내가 느낀 베를린의 첫 만남은 반가움이었다. 내가 마치 전에 베를린에 왔었던 것처럼 베를린은 낯설지 않았다. 밤의 바람이 내 얼굴을 날카롭게 스치고 손발이 점점 빨개졌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베를린이 선물해준 반가움 때문일까, 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국회의사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베를린은 어느 유럽의 도시보다 화려하게 빛났다.
2015년 11월 3일
입구 쪽에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었다. 박물관이 작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인원이 들어가지 못해 밖에서 몇 분간 기다렸다.
박물관은 유대인 대학살의 역사와 편지들 유대인 가족들의 기록, 수용소에서 학살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침묵했다.
유대인의 관련된 곳에만 오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80'
인류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 나치 독일 출범 이후 세계는 앞을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접어들게 됐다. 국가사회주의 또는 나치즘이라 불리는 극단적 민족주의는 인류의 역사에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범하고 만다. 유럽 전체가 가해자였고 피해자였다. 아직도 동유럽 쪽에는 나치 수용소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쓸쓸히 죽어갔다.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후에도 후유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이미 유럽 땅을 경멸하여 떠났고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베를린에는 유대인들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비가 있다. 높이가 다른 조형물들이 공원을 덮고 있는 모습은 거대한 묘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박물관 안에 들어가게 되면 나치 독일 출범 이후의 역사와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박물관 안에서 느껴지는 무거움은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수용소에서 쓴 편지들을 읽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박물관 안의 내용들은 모두 독일의 부끄러운 과거들이었다. 그들은 잘못을 숨기지 않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국가들은 서로 대치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다시 유럽 연합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했다. 유럽 연합의 출범에는 경제, 사회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지만 그 속에는 과거에 대한 뉘우침이 담겨 있다. 유럽의 정신은 여기에 존재한다. 유럽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들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하나가 되었다. 유럽 연합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독일의 반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독일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용서이다.
현재 유럽은 난민 문제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문제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여전히 난민을 받아들이자는 정책을 펴고 있다. 과거의 민족우월주의가 낳은 참상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부채 문제와 영국의 브렉시트도 모두 같은 연장선 위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인도주의적 접근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자본주의 논리와 자국민의 보호가 옳은 것인가...
유럽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2015년 11월 4일
이렇게 실망하고 있었는데 구름 속에서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앞에 보이는 잔디밭에 빛이 들어오고 나뭇잎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자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다. 궁전 앞에는 작은 호수가 있는데 호수에 빛이 비치고 노랗게 빨갛게 물든 나무들과 갈대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햇빛을 받아서일까 풍경이 이뻐서일까 갑자기 힘이 솟아났다.
이쁘다 이쁘다를 연발하면서 호수의 풍경을 보면서 다시 이동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81'
가을이 오는 소리는 눈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가을이 오면 나무들은 색동옷으로 갈아 입고 땅은 값진 소산물들을 피어냅니다.
단풍의 화려함은 자연이 그려낸 최고의 작품이자 가을이 자연에게 준 선물입니다.
햇살이 비추면 나무들의 고운 빛깔이 살아나고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는 빛으로 물듭니다.
가을의 상수시 공원은 고운 자태를 뽐내는 자연의 향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