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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웅 Mar 13. 2019

내가 본 캐나다 - 밴쿠버(Ⅱ)

스키

2018년 5월 21일


스키 장비를 대여하고 난 후


스키 - 블랙콤 산 (Blackcomb Mountain)


나는 스키 타기가 아니라 무사히 하산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하산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이었다. 너무 높아서 속도 내는 것이 무서웠다. 수십 번씩 넘어지고 스키판이 빠지면 다시 끼우고, 사람들에게 미안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그냥 멈춰 서거나 넘어졌다. 스키를 즐기는 것보다 안전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타다 보니 다시 Jersey Cream이라는 곳으로 돌아왔다.


햇빛이 따사롭게 느껴지는 봄의 끝자락에 스키를 탈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밴쿠버 근교의 휘슬러에는 5월 중순까지 제한적으로 봄 스키를 탈 수 있다. 그리고 이 날이 바로 봄 스키 개장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스키장은 문을 닫고 산의 등산로를 따라 산악자전거와 하이킹 등의 액티비티로 완전히 전환된다. 나는 휘슬러에서 스키를 타는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겐 스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었다.


휘슬러에는 스키 리조트가 있는 휘슬러 산과 블랙콤 산이 있다. 그 당시 휘슬러 산은 봄 스키 개장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블랙콤 산 뿐이었다. 나는 스키를 타기 위해 스키장비도 빌리고 리조트권도 구입했다. 스키를 타기 위해 스키장비 대여숍에 들렀을 때에도, 산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리프트권을 구입했을 때에도, 직원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스키를 타본 적이 있냐고... 나는 그해 겨울 평창에서 처음 스키의 걸음마를 뗐다. 나는 평창에서 한번 스키를 타봤기 때문에 타봤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질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스키를 타본 적이 있냐는 질문 속에는 초보자가 타기에는 위험하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휘슬러 안내 센터
산을 올라가기 위한 리프트를 타기 위한 줄


스키 부츠와 스키 판을 장착하는 순간 내 발은 내가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스키 폴을 간신히 부여잡고 뒤뚱뒤뚱 걸으며 산의 중간지점까지 올라가는 리프트에 올랐다. 분명 따뜻한 바람이 느껴졌었는데 산의 중턱까지 올라오니 아직도 녹지 않는 눈산을 보게 되었다. 이곳에서도 나는 스키에 적응하지 못해서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나는 힘들게 발걸음을 떼면서 다리에 힘을 싣고 스키 폴을 당겨보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기술은 스키의 기본 중에 기본인 프로그 화렌과 프로그 보겐뿐이었다. 나는 여기서 깨달아야 했다. 내 스키 실력이 한참을 모자라다는 걸 말이다.


블랙콤 산을 올라가는 리프트
캐나다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스키를 잘 탄다
많은 인파가 모여있는 산의 중턱 지점


나는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이 곳에 올라온 사람들의 스키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조차 스키판이 자신의 발인 양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나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최대한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다음 리프트를 탔다. 하지만 이 리프트가 산 정상까지 향하는 리프트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리프트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산에 구름이 자욱해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리프트에서 내리고 나서야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블랙콤의 가장 높은 구간인 7th Heaven이었다.


내가 평창에서 경험했던 스키장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곳에는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었다. 코스에 대한 안내만 있을 뿐 내 눈에서 보이는 구름들과 낭떠러지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바꿔놓았다. 더 이상 스키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이 곳에서 살아서 돌아가자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나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표지판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나는 최대한 속도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경사와 직각이 되도록 회전을 했지만 슬로프의 경사도는 생각 이상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미끄러지는 것보다 넘어지는 것을 선택했다. 넘어지고 나서도 문제였다. 스키 부츠와 바인딩의 결합은 해제되기 일쑤였고 넘어짐과 동시에 뒤에서 내려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기 위해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리프트
눈 앞에 구름이 보이는 지점까지 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산을 내려왔다


나의 무릎과 허벅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근육에 통증이 왔고 왼쪽 가슴도 잘못 넘어지면서 크게 부딪혔다. 하지만 다치더라도 목숨을 건지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미끄러질 것 같으면 넘어지고, 다시 미끄러질 것 같으면 넘어졌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넘어지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다시 내가 처음 리프트를 타고 올라왔던 구간에 올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고 난 후 나는 인생의 뼈저린 교훈을 얻게 됐다. 스키를 한번 타본 것은 안 타본 것만 못하다.


휘슬러로 내려가는 리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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