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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줄 Mar 27. 2016

2-2. 별의 신호를 확인하다

문영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제나 선진이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곤 했다. 지금도 벌써 한 시간째 같은 그림에 매달리고 있다. 그것은 아이의 솜씨에 불과한 낙서 같은 그림이었지만 어떤 명화 이상으로 나를 즐겁게 했다. 사실 내 눈길은 그림보다는 아이에게 가 닿았다. 오늘밤 정말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잘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시부모님이 해외여행을 떠난 탓에 며칠간 내가 선진이를 돌보게 된 것이다. 오늘 나는 아이의 옆에서 모처럼 행복한 잠을 잘 수 있다. 

 하염없이 선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중 주머니에서 불쑥 진동이 느껴졌다. 발신자를 보니 미란이였다. 나는 속삭이듯이 그것을 받았다. 그녀와 간단히 안부를 주고받았다.

 "근데 오늘 너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건 분위긴데, 아니야?"

 미란이는 대답하기까지 잠시 뜸을 들였다.

 "언니, 사실 나 오늘 좀 놀라운 얘기를 전해야겠어."

 "놀라운 얘기?"

 "응.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 언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통화를 잠시 중단했다. 아이에게 곧 와서 그린 것을 봐 주겠다고 말하려다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냥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남편은 거실에서 계속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침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언니, 혹시 잃어버린 동생 있어?"

 "뭐?"

 "동생이 있냐구? 오래전에 잃어버린."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듣고 있어? 괜찮아? 어, 그럼 정말 사실인 거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무서웠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얘기들이. 오늘밤 내가 알게 될 사실들이. 나는 물속에 들어가려는 사람처럼 깊은 심호흡을 했다.

 "무슨 일인지 말해 줄래?"

 그때부터 시작된 미란이의 이야기에 그만 눈앞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내 주위의 사물들이 갑자기 액체처럼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 깊이도 거리도 가늠할 수 없는 순백의 공간들이 펼쳐졌다. 그것은 차라리 무(無)에 가까웠다. 그곳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동굴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볼륨이 낮고 에코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모양이 잡혀 갔다. 그것은 어린 사내아이의 웃음소리였다. 나는 방금 백 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이 빠른 속도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정말로 그 너머에서 갑자기 사내아이 하나가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생이었다. 오래 전 내 동생의 모습이었다. 이어서 잔디밭이 깔린 어느 집 마당이 나타났다. 동생은 글러브를 옆구리에 낀 채 까르르 웃으며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거긴 바로 우리가 살던 집이었다.

 잠시 후 배경도 동생의 외모도 바뀌었다. 이번엔 실내였다. 조금 더 자란 모습의 동생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서 선물을 뜯고 있었다. 레고 상자를 품에 안은 동생이 휙 고개를 돌렸다. 순간 동생과 눈이 마주친 나는 너무 놀라 뒤로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오랜 세월 내가 외면하고 살아온 눈빛이었다.

 다음엔 훨씬 옛날의 장면이 나타났는데 그 장면은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 채널처럼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기억이 희미하다. 아마 우리가 처음 미국에 도착한 직후 같았다.

 미란이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동생이 지금 한국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서울. 우리가 같은 도시에 산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전해 달랬어. 아마 조만간 나한테 다시 연락할 거야. 그러니까 마음 좀 진정하고 내일이나 언제 언니가 나한테 전화해 줘. 언니? 괜찮아?"

 나는 쥐어짜듯이 소리를 꺼내어 나단이가 한국말을 하더냐고 물었다. 미란이는 가끔 발음이 조금 어색한 것 빼곤 여기 사람과 똑같이 하더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퍼뜩 거실에서 들려오는 뉴스 앵커의 음성에 의식이 미쳤다. 그나마 남편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큰 감정의 홍수를 막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때 예고도 없이 덜컥 문이 열리는 통에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그곳에 서 있는 건 남편이 아니라 선진이였다. 선진이는 "엄마"라는 한마디를 내뱉곤 색연필과 종이를 들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곤 다시 아까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거울에 반사된 아이의 모습을 바라봤다. 별안간 내 아이의 모습 위로 딱 저만하던 시절의 동생의 모습이 포개졌다.

 동생은 아주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특히 눈이 정말 예뻤다. 그러나 너무 예뻐서 그 눈은 슬퍼 보였다.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동생의 눈 속엔 정말로 얇은 렌즈 같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동생은 아주 어릴 적부터 특별하리만치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아이였다.

 기억의 낡은 페이지 하나가 떠올랐다. 잔잔한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 음반을 틀어놓고 방 청소를 하고 있었고 동생은 내 방 침대 구석에 앉아 줄스 번의 소설 '해저 2만 리'를 읽고 있었다. 그때 아마 나는 열여섯, 동생의 나이는 열 살이었다. 책상 위를 훔치던 중에 B면 첫 번째 트랙인 God only knows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 너무 좋지 않아?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하지만 동생의 표정은 몹시 굳어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동생이 천천히 "슬퍼"라고 입을 여는 것이었다.

 "몰라. 그냥 노래가 슬프다구."

 동생 말대로 그것은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그렇다곤 해도 God only knows를 들으며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확실히 보통의 열 살짜리의 감각이 아니었다.

 그래, 그런 동생이라면 하나도 잊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별과 별이 만난다는 이야기도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미란이의 말에 따르면 동생이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하지 않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진이가 색연필을 손에 쥔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깨지 않도록 살그머니 안고서 방을 옮겼다. 조용히 옆에 누워서 아이가 꿈나라에 당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때 밖에서 와장창, 하고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방문이 쾅 닫히는 소리. 선진이가 잠결에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아이의 배에 올린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잠시 후 거실에 나와 보니 예상대로 식탁에 있던 식기들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별 것 아니었다. 그런 일들에까지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대충 치우고 들어와 불을 끄고 누웠다. 그러자 다시금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밤새 이어질 것 같은 죄책감이, 슬픔과 그리움이 엄습해 왔다. 내가 미뤄두고 회피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동생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암담했다. 만나지 않을 생각은 아니다. 동생이 원치 않는다면 모를까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한다. 하지만 무슨 낯으로 봐야 할지, 대체 어떤 말로 용서를 구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내가 떠나온 후 그 여린 아이가 얼마나 아파했을지 생각하면 내게 용서받을 자격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미국에 건너갔을 때 동생과 달리 나는 이미 꽤 자란 나이였다. 과정이나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양부모는 감사하게도 동생과 나를 함께 입양해 주었다. 어쩌면 그때 동생을 향한 내 필사적인 집착 때문에 누군가 중간에서 도움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갓난아기였던 동생을 마치 어미처럼 지키려 했던 것 같다. 우리가 고아원에 맡겨졌을 때 누군가 동생을 내 곁에서 잠시라도 떨어뜨리려 하면 악을 쓰고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 난폭한 집착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같이 입양이 결정되기까지 우리는 얼마간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 잠시 떨어져 있는 사이에도 돌아가는 상황도 내 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동생을 데려오라고 소란을 피우곤 했다.

 아무튼 나는 입양되기엔 아주 늦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생과 함께 살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었다. 나의 새로운 부모가 되어 준 사람들은 왜 나를 입양했는지 의아스러울 만큼 금세 싸늘하게 돌변했다. 교양처럼 베풀던 최소한의 인정조차 순식간에 유효기간이 끝나 버렸다. 막상 집 안에 들이고 보니 나에 대해선 잘못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런저런 일들에 시달리느라 나이보다도 더 조숙하게 자라 있었던 동양 소녀에겐 도저히 애정이 가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나는 입양할 생각이 아니었지만 뭔가 특별한 이유나 거래 같은 게 있었는지도. 그렇다고 내게 주지 않는 애정이 고스란히 동생의 몫으로 간 것도 아니었다. 동생에게도 내 성에 찰 만큼의 애정을 쏟아 주지는 않았다.

 내가 그 집의 온전한 구성원이 될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그 집에서 나는 마치 임대료를 장기 체납한 임차인 같은 존재였다. 오직 동생이 곁에 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얻었다.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커질수록 점점 더 감당하기가 벅찼다. 어느 순간 나는 내가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도 너무 오래 버틴 것이라고. 차라리 내가 사라져서 오붓한 세 가족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집안에 자꾸 불화가 생기는 건 동생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동생까지 미운털이 박히게 할 순 없었다. 아니, 동생 때문이라는 것은 핑계고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나의 판단과 결심이 지지를 얻으면 얻었지 누구의 비난도 사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단 한 명, 동생을 제외하자면. 결국 나는 동생과 양부모 앞으로 편지를 하나씩 남겨 두고 1월의 어느 늦은 밤 몰래 집을 떠났다.

 허리에 닿는 선득한 느낌이 기억의 회전을 정지시켰다. 선진이의 발이었다. 아이가 걷어찬 이불을 가지런히 덮어준 후 기도하듯이 두 손을 맞잡았다. 너무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기도를 오늘밤 다시 꺼내 들었다. 부디 그 분들이 내 동생을 잘 키워 주었기를. 그 애가 누나 없이도 잘 자라 주었기를. 그래서 이제는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기를.

 그런데 어떻게 동생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일까. 설마 내 자취를 좇아서 여기까지? 또는 나처럼 친엄마를 찾기 위해서? 아니, 동생이 우리말을 이곳 사람처럼 한다는 건 나와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전에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그 이유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니, 지금 상태론 아무것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가시덤불 같은 생각들을 뚫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의지하듯이 선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잠시 후 또 다른 기억의 레코드가 재생됐다.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가파른 언덕들을 차로 지날 때 동생은 내 손에 슬그머니 자신의 손을 밀어 넣었다. 그러다 언덕 중간에 차가 멈춰 서기라도 하면 겁이 나는지 악착같이 내 손을 붙잡았다. 얼마나 세게 잡았던지 아직까지도 그때의 자국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땀에 흠뻑 젖어 있던 그 손의 느낌이 세밀하게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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