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익히 알고있는, 우리만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오랜만에 해외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인도 델리와 다람살라를 거쳐 최종 목적지는 인도 라다크.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바로 그 곳이다.
농부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소유하고 정착하는 자, 성실한 자와 덕이 있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그런 사람을 난 사랑하고 존경하고 부러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미덕을 흉내 내려다가 내 반생을 잃어버렸다. 나는 내가 아닌 것이 되려고 했던 것이다. 작가이기를 원하면서도 또한 시민이기를 원했다. 예술가이고, 몽상가이기를 원하면서도 또한 미덕을 겸비하고 고향을 향유하고자 했다. 사람은 그 둘 다 될 수도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을, 나는 농부가 아니라 유목민이며 가진 것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는 자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헤르만 헤세, <농가>
당일 출장으로 몸도, 마음도 지친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짜이로 소문난 카페를 찾았다. 근처에 도착하자, 문밖으로 노오란 불빛과 짜이 향신료 냄새가 새어 나왔다. 역시, 제대로 잘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노오란 불빛으로 가득 찬 외딴섬에 도착한 기분이다.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따뜻한 모닥불이 피워져 있는 온기가 있는 작은 섬.
아무렇지 않게 꽂혀있는 책마저, 사장님의 취향이 깃든 책이다. 물건 하나하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사장님과 나누기 시작한 여행 이야기는 두 시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당산동 짜이집에 도착했다. 시간은 철저하게 상대성 이론으로 흘러간다. 암, 마음의 결이 맞는 사람과 대화만큼 시간의 속도가 빠른 적도 드물지.
“라다크에 가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세요.”
사장님이 건네주신 책은 바로 <카페, 라다크>. 춘자와 제제님이 라다크에서 카페를 차린 한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카페 라다크의 첫 페이지를 넘기자, 헤르만헤세 <농가>의 한 구절에 계속 시선이 머물렀다.
나 또한 농부가 아닌 유목민으로 살기로 결심했던 시절이 있다. 그 시절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여행도 결국 이런저런 사정으로 셔터를 내리고 다시 한국 사회로 돌아왔다.
떠나지도, 그렇다고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마음이 묻는 질문의 대답을 생각한다. 가끔은 세상에서 가장 심심하다고 생각한 사람 중 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여행을 마친 뒤로 줄곧, 농부와 유목민 경계 어딘가에 계속 떠돌고 있다.
떠돈다는 건, 반대로 결국 머물 곳을 찾는 일이 아닐까. 일종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 말이다.
짙은 초록 숲 가운데 숨겨진 작은 오두막이 있다. 어쩌면 구글 지도에도 잡히지 않는 장소일지 모른다. 그림책 속 주인공은 숲속에 숨겨진 빨간 오두막을 정기적으로 찾는다. 익숙하듯, 계곡에서 다이빙하고, 열매를 따 먹고, 밤하늘의 별을 보다 잠이 든다. 화려하진 않지만 풍요로운 자신만의 휴가를 끝내고, 주인공은 다시 오두막을 떠난다. 점점 짙어지는 지금 이 계절의 초록을 닮은 그림책, 바로 <나의 오두막> 이다.
나에게도 <나의 오두막> 같은 장소는 어디일까? 그 장소는 어쩌면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아닐까.
집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갓구운 소금빵과 어느덧 물방울이 맺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장님은 과하게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심하시지도 않다. 딱 적당한 친절함이 있는 카페는 작업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글을 쓰고, 초여름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였다고 다독이며 집으로 향하겠지.
우리는 사실, 우리의 숲속 오아시스가 어디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어쩌면 그 사실을 굳이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이곳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의 여행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