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9일 금요일. 아무튼 버터 전복은 맛있다.
오늘 아침은 버터 전복과 맑은 바지락 탕, 치즈 토마토로 간단하게 준비했다.
새벽에 간 식자재 마트에 활 전복이 없어 냉동 전복을 사 왔는데
칫솔로 전복을 씻다가 문득 ‘놓아버림’에 생각이 미쳤다.
활 전복을 씻을 땐 잘 닦이지 않던 흡착판이 마치 칫솔모가 전복 빨판 위에서 미끄럼틀 타듯 쓱 닦였기 때문이다.
“살아서 악착같이 붙잡고 있던 것들이 죽어서 힘이 빠지니 쉽게 내려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말로 얼마나 많은 세상의 욕망에 흡착판을 붙이고 악착같이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는가?
막상 붙잡고 있는 것들이 시꺼멓게 오염된 세월의 때뿐일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흡착판에 힘을 주고 버둥대며 살아간다.
그저 힘을 빼고
‘놓아버리면’
한순간에 싹 사라질 일인데.....
삶의 깨어있음이란 어쩌면 이렇듯 ‘멈춤’과 ‘놓아버림’의 경계 그 어디쯤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은 물론 일을 도모할 대도 모두 악착같은 생각과 힘을 발휘하면 경직되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스탭이 꼬인다.
왠지 지금도 그렇다. 간단한 일기를 몇 자 적는 이 순간에도 습관적인 삶의 태도가 악착같이 흡착판의 파워를 올리는 것이다. 팔뚝의 긴장감과 몸 가득 올라오는 근육과 핏줄의 팽팽하고 뻣뻣한 긴장감.....
일기로 노벨 문학상을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악착 같이 핏대를 세우나?
습관적인 삶의 긴장감을 놓아버리지 못하는가?
오로지 자신과 대면하는 일기를 쓰는 시간조차도 이렇듯 악착같다면, 다른 삶의 시간들은 어떠할까? 심지어 잠을 자는 시간조차도 완전히 긴장감을 풀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본다.
무엇이 날 이토록 재촉하고 있는가?
내 몸이 너무 긴장되어 불뚝 불뚝 튀어나올 것 같다던 마사지 숍 원장님의 말이 생각났다. 집중적인 집필 기간엔 마사지라도 받지 않으면 온 몸의 긴장을 견디지 못해 등판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된다.
몸의 경직은 마음의 경직과 같다.
단 하나의 돌에 흡착판을 붙이고 더 많은 다시마를 먹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전복의 단단한 생명력이 정력에 좋다지만 글을 쓰는 작가의 단단한 경직은 <지킬과 하이드>에서 하이드의 광기처럼 졸렬한 그 무엇이 된다.
놓아야 한다.
좀 더 느슨하고 부드럽게, 자유롭고 간들간들하게
바닷물에 펄럭이는 미끈미끈한 해초들처럼 몸에 힘을 빼고 유연하게 흐느적흐느적 삶의 결을 타야 한다.
내일은 드디어 초고 탈고!
20장으로 기획되었던 것이 30장으로 늘어 미친 듯이 노트북에 흡착판을 붙이고 몰아붙인다.
어쩌면 지금 쯤 나는 돌이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책 "코로나 스쿨혁명"을 기다리는 망부석일까?
아무튼 버터 전복은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