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밀은 내게 친숙하면서도 먼 존재였다. 슈퍼푸드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오트밀 죽을 집에서 만들어 먹진 않았다. 그렇다고 레스토랑에서 따로 오트밀을 팔지 않으니, 카페에서 커피와 곁들여 간간히 오트밀 쿠키를 사 먹은 것이 전부랄까.
미국에서 십 대 시절을 보내는 동안 아침 단골 메뉴는 시리얼이었다. 학교 가기 전 간편하게 우유에 말아 후루룩 먹기에 이보다 안성맞춤인 식사가 없었다. 주로 꿀 발린 치리오스(Cheerios)를 먹거나 코코볼 비슷한 것을 즐겨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무 살이 되어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침에 코코볼 또는 현미 후레이크 등을 찾곤 했다. 누가 집에서 뭘 해 먹느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코코볼이요'라고 대답해 사람들을 당황시키곤 했다. 혹자는 스파게티, 된장국 등 요리를 말하겠지만 당시 나는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에 가까웠다.
올 2월, 재택 모드가 시작되고 세 끼를 어떻게 해 먹을지 스스로 결정하게 되었다. 당장 아침에 무얼 먹을지 고민하다가 단골 메뉴인 시리얼에 변화를 주고 싶어 졌다. 그때 오트밀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유에 섞어 1분만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완성되는 제품이 있었는데 간편함이 시리얼과 닮아있었다.
"이 정도면 나도 만들어 먹을 수 있겠지."
날씨가 아직 추웠고, 차가운 우유에 시리얼을 후루룩 말아먹기보다 뜨뜻한 음식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쿠팡에서 1kg짜리 퀘이커 오트밀 오리지널 맛을 구입했다. 처음엔 오트밀과 우유만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1분 돌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유가 귀리에 베어 들어 고소함을 더하면서, 귀리의 담백함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우유를 머금어 점성이 약간 생긴 촉촉한 오트밀을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으면 그 온기가 전해져 위장도 마음도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맛. 이게 오트밀의 매력이구나.
집단 지성 고마워요.
그 후 겨울이 끝나고 초봄 꽃샘추위를 맞는 동안 아침 내내 오트밀을 먹었다. 우유와 오트밀의 단순 조합을 넘어 여러 재료들을 곁들여 먹어보며 변화를 주었고, 어떤 재료가 가장 궁합이 맞는지 실험했다. 평소에 맛집 먹방 사진만 올라오던 내 인스타그램에 갑자기 집밥 사진이 등장하자 지인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해 나의 오트밀 레시피를 풍성하게 해 주었다.
지인들의 추천을 받아 시도했던 여러 오트밀 레시피들
그렇게 실험 끝 얻은 나의 최애 조합은 두 가지다.
우선 바나나. 잘 익은 바나나 한 개를 칼로 정갈하게 잘라 우유를 부은 오트밀 위에 얹는다. 또는 바나나 슬라이스들을 오트밀과 같이 섞어줘도 좋다. 이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뜨듯하게 데워진 바나나와 오트밀이 조화를 이뤄 따뜻함과 든든함이 배가 된다. 한 그릇 먹고 나면 적당한 포만감이 들며 "잘 먹었습니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위장까지 전해지는 음식의 온기가 오래 남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세상이 더 따뜻하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요거트 또한 오트밀과 잘 어울린다. 갓 데운 오트밀에 요거트를 몇 스푼 올려 섞어먹으면 되직한 식감과 상큼함이 더해져 별미가 된다. 여기에 시나몬 가루와 카카오닙스를 섞어 한 입 뜨면 맛있는 캐러멜 쿠키를 먹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쿠키라기보다는 그 반죽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왠지 크리스마스 전 날 선물을 기다리며 먹는 맛이랄까. 풍성한 맛이 주는 설렘이 있다.
그렇게 오트밀은 나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코로나 블루로 허기진 마음에 온기를 채워주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오트밀에서 시리얼 또는 요거트로 아침에 자주 찾는 메뉴가 바뀌었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다시 오트밀을 찾을 것이다.
여러분도 따뜻함이 그리울 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할 때면 오트밀 한 그릇을 먹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