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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Jan 08. 2020

서른살을 하기로 했다

안녕, 나의 삼십대

겨울바람에 떠밀려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다.

여자 나이 서른이다.

딱히 별일은 없다.

...?


 이십대 초반엔 서른이 되기 직전 크리스마스는 핀란드 로바니에미 산타마을에서 보내고 싶다고 생각 했다. 산타와 루돌프가 꿈과 현실을 오가는 그곳에서 스물아홉의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 영원히 동심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꿈은 스물아홉의 크리스마스를 전혀 엉뚱한 샌프란시스코에 흘려버려서 불가능해졌다. 사실 그 전에 산타를 믿지 않는 점이 문제이긴 했다. 그런 현실감 없는 생각을 했던 것을 보니 갓 성인이 된 나는 여자 나이 서른이면 무슨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남들처럼.

스물아홉 크리스마스에는 예약했던 로바니에미 오로라 대신 샌프란시스코 야자수를 보게되었다. 

 서른 살이 연말시상식이나 제야의 종, 또는 새해 다짐만큼이나 의례적인 자연현상임을 알아차린 것은 서른이 가까워졌을 때다. 나이가 들며 생긴 변화라면 아직 고등학생인 주민등록증 사진이 조금 민망해서 주로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다니는 것, 장사 안되는 맛없는 식당에 또다시 맛없는 메뉴가 추가되듯 꼰대들의 잔소리 메뉴가 하나씩 추가되는 정도다. 백수에 비혼, 재산 없고, 기술 없는 문과 출신 여자가 삼십대에 입성했으니 올해 명절에 나는 스팸세트 다음으로 잘 팔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느 날 집안에 살던 바퀴벌레와 새삼스럽게 마주하는 순간, 출근길 횡단보도에 서서 핸드폰을 켜다 내려다본 하수구 속에서 발견한 쥐새끼 정도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피할 수 없겠지만 마주치는 순간의 소름만 잠시 참으면 그 더러운 것들이 나를 공격하지는 못한다. 나는 웹툰 볼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그 말 많은 서른이 되어보니 체감하는 변화가 없다.

스물아홉에 혼자 회전목마를 타면서 좋다고 실실거리는 것을 보니 동심도 조금 남은 것 같다

 인터넷에 ‘30’이라는 숫자를 검색했더니 버스노선도가 나온다. 30이라는 숫자는 나이를 셈할 때 보다 다른 곳에서 쓸모가 있다. 사실 내 나이가 몇 살인지가 남들에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나이를 들먹이는 일은 그저 떨어지는 자존감을 남의 세월로 채워보려는 놈들의 얕은 수작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삼십대도 작년처럼, 이십대 초반처럼 귀엽고 발랄하게 살기로 했다. 뭘 해야 한 번에 번듯하고 우울한 서른이 되는지 잘 모르겠으니 그냥 지금처럼 살아야겠다. 아직 안 해 본 일을 하며 또 소용없는 새해 버킷리스트를 만들며 마흔이 되고 환갑이 되고 수명이 다하면 죽고 그래야겠다. 다행히 부모님이 아직 빚은 물려주지 않았고, 결혼이나 육아엔 뜻이 없고 개나 햄스터도 없어서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인생이라 긴장감 없는 삼심대로 자랐으니.

호그와트 입학 전에는 늙을 수 없다

 꿈이 생겼다. 이십대가 아니면 여자가 아닌 나라에서 삼십대, 사십대에도 혼자 즐겁게 사는 여자가 되고 싶다. 비혼으로 나이 드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내 돈 나 혼자 쓰며 그냥 그럭저럭 사는 미래가 꿈이다. 나이 든 여자의 평범한 개인 서사를 상실한 국가에서 종종 들리는 일 하고 대출 갚고, 여행하며 산다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는 드라마에 나오는 청춘들의 로맨스보다 나를 설레게 만든다. 혹시 이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면 비행기표를 사고 호텔을 예약해서 야자수와 바다가 보이는 호텔 더블침대에 혼자 누워 다시 단단해지겠다. 세상이 지운 나이 든 여자의 행복이 궁금한 어린 여자들에게 나의 일상이 특별한 행복도 아니지만 불행도 아님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다른 집요정들에게 손가락질 받지만 자유로운 도비가 되겠다.


 인생에서 가장 짧은 머리 길이를 스물아홉에서야 해봤다. 짧게 친 머리를 거울에 대보고 나서야 어깨를 두드리는 머리카락 길이를 가진 내 모습이 어떤지 알았다. 잘 어울린다는 말을 남에게서, 나에게서 계속 들었다. 머리를 잘라보기 전에는 내가 단발이 어울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서른이라는 나이도 그럴 것 같다. 어색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게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른을 하기로 했다. 나는 서른에도 여전히 나로 살 것이다.

서로의 남자를 씹으며 브런치를 즐기던 섹스앤더시티에 나오던 사라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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