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직업, 엄마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과정을 거치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 여러 면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은 당연지사고, 내게 숨겨져 있던 여러 육체적 변화 또한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엄청난 변화가 내게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놀랍다.
임신 중기나 말로 접어들 때쯤, 체내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며 멜라닌 색소가 과도하게 분비된다. 이 때문에 겨드랑이가 때 묻은 것처럼 까맣게 변하는데, 특히 젖꼭지의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평상시 관찰한 적도 없었던 젖꼭지가 대놓고 엄청나게 변모하고 있었다. 젖꼭지가 크고 뭉툭해지기 시작하고, 유륜이 까매지며, 유륜의 범위가 점차 넓어진다. 하루이틀 지나면 유륜은 우둘투둘해지고, 또 하루이틀이 지나면 젖꼭지에 하얀 점이 콕콕 찍혀있기 시작한다. '이건 또 도대체 무슨 변화야?'
내 몸에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변화들은 이유도 모른 채 당하게 된다. 허둥지둥 당황하다 '네이버지식in'이라던가, '맘스홀릭' 같은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며 답을 찾아낸다. 주변에 물어볼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한 곳에서 드러나는 변화들은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젖꼭지에 있는 하얀 점들은 모유가 나오려는 신호입니다. 모유가 굳어져 하얗게 보이는 것이니 억지로 빼려 하지 마세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나는 기어코 울고야 만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까? 어디까지 변하는 걸까?
그렇게 육체와 정신의 혼돈기를 겪고 나니, 이제는 '출산'이라는 과정이 남아있었다. 아이는 뱃속에서 이미 4kg를 넘어서고 머리 둘레도 심상찮아서, 산부인과 선생님은 유도분만을 권하신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아이들은 평균 2~3kg의 체중을 싣고 밖으로 나온다는 것을. 산모는 아기를 10개월, 즉 40주를 품고 있어야 하지만 아기의 크기에 따라 미리 빼낼 수도 있는 기술력이 세상에 갖춰져 있음을.
유도분만 주사를 맞아도 좀처럼 양수가 터지지 않자, 간호사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내 두 다리를 잡아 벌리신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갑자기 본인의 손바닥을 맞대어 잡는다. 일명 똥침자세를 하듯 손 날을 뾰족하게 세우더니 그대로 내 밑으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퍽! 소리가 나게 쳐올린다. 퍽, 퍽. 그렇게 열 번 정도 반복하고 나서야 간호사 선생님은 허리를 든다. "이제야 양수가 터졌네요. 곧 분만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르르 학생들과 실습생, 간호사들과 의사 선생님이 들어온다.
그때 나는 이 세상을 두고 따져 물었던 것 같다. 아이 낳는 일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로서 포장되어 있는 것 같지 않냐고, 아이 낳는 순간이 행복하지 않고 되려 치욕스럽기까지 하다고. 다리 밑으로 아이의 얼굴이 나오는 것을 보고도 나는 '한 마리의 짐승과 진배없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이런 내게는 모성이 없는 거냐고. 인간이라고 특별한 건 하나 없다고, 나도 포유류과에 속하는 동물일 뿐이라고. 왜 인간을 특별하다고 말했냐고. 전혀 다른 게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었냐고. 아무리 교양 있고 우아하게 포장해도 나는 동물일 뿐이라고.
그렇게 아기는 내 두 손에 안기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등과 같은 시간의 개념은 우리 인간 사회에서 만들어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는 이 사회적 약속을 배우지 못했다. 3시간마다 자고 일어나 호두 만한 위로 모유를 먹었고, 다시 잠들었다가 3시간 뒤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이내 또 잠들었다. 아이에게는 이 삶이 전부였으며, 눈앞에 있는 '부모'라고 불리는 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겼다.
그리고 오늘날, 아이는 5살이 되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나는 온통 무지하기만 했지만, 모든 무수한 변화에 번번이 좌절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나는 내게 주어진 변화들을 감내했다. 이해하자 받아들여졌고, 받아들이자 이내 자연스러워졌다. 모유수유 이후 축 처진 가슴도 이젠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었다. 임신과정에서 30kg가 불어 자연스럽게 늘어난 뱃가죽 또한 내 신체의 일부였다. 내 일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 또한 당연한 나의 일과다. 이제 나는 한 아이의 '엄마'라고 불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미 점지되어 있던 나의 하나의 직업이었다. 나는 '나'이기도 하고, 또한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