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직업, 카페 사장의 사연
소주도 못 마시는 게, 맹물을 마실 때마다 '캬'소리를 내는 저 사람. 설거지 좀 하라고 말하면 딱 그릇만 씻을 뿐, 거름망을 치운다거나 싱크대 주변도 돌아보지 않는 저 사람. 청소를 하라고 하면 바닥을 쓸고 닦는 것 외에는 청소의 범위를 확장시키지 못하는 저 인간. 여유가 생기면 그 틈을 넷플릭스로만 채우는 저 인간. 손님이 있으면 조용히 그 분위기를 맞춰줘야 하는데, 아작아작 소리를 내며 과자를 씹어먹는 저 남동생이라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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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과 함께 생활한 지 5개월이 지났다. N잡러 생활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서 입맛까지 잃어버리는 나에 비해 동생은 참 먹성이 좋았다. 아무 음식이나 골고루 잘 먹는 복스러운 먹성이, 내가 예민해지자 가장 꼴 보기 싫은 추접스러운 장면으로 바뀌었다. '일도 안 하면서 배가 고플까' 칼국수를 후루룩 들이키는 동생을 보다,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야 만다.
오후 네다섯 시쯤, 긴 햇볕이 창을 넘어 들어온다. 피부를 따끔 따끔 찔러대는 걸 보니 정말 가을의 햇살이구나 싶다. 촤르륵 레일 소리와 함께 커튼이 쳐진다. 내 마음 한 구석에 숨어있던 못된 마음 때문일까, 손가락 끝에 실린 힘에 못 이겨 커튼이 찌직 소리를 내며 찢어진다. 엄마야! 나의 비명소리를 듣고 남동생이 한달음에 달려온다. "무슨 일이야?" 주변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공간인 데다 지금쯤 귀뚜라미가 출몰할 시기라, 남동생이 빗자루를 휘두를 준비를 한다. "이번엔 벌레가 아니라 커튼. 커튼을 찢어먹었네" 가을바람에 휘부끼는 찢어진 커튼이 어쩐지 을씨년스럽다. 이번 기회에 커튼을 바꿔보자고 이야기를 나눈다. 벌써 5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준 커튼, 삭을 때도 됐다. 그렇게 남동생은 미션 하나를 부여받았다. 창의 치수를 재고 커튼 주문하기!
줄자를 이리 펼쳤다 저리 펼쳤다 하더니 뚝딱 주문을 끝마친 남동생은 18만 원 남짓한 영수증을 내민다. 통장도 타이밍이구나 싶다. 190,200원의 통장 잔액에서 19만 원을 동생에게 이체해 준다. "수고비 포함!" 남동생에게 통장 잔고를 들키지 않아서, 수고비까지 얹어 누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세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늘 대망의 커튼이 도착했다.
유리창을 반만 덮은 커튼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창의 길이보다 훨씬 짧은 새하얀 커튼이 내 시야를 하얗게 만든다. 내 생각에 암막을 쳐둔다. 아. 남동생은 알까? 그게 내 통장의 마지막 잔고로 산 커튼이었다는 것을. 한참이나 말없는 나를 두고 남동생이 카톡을 보내온다.
기가 막혀. 저 이모티콘 하나만 해결될 줄 아는 건가. 그런데 나도 모르게 푸시식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택배상자를 뜯어서, 레일에 커튼 갈고리를 하나씩 달면서 '설마' '아닐 거야'라고 읊조렸을 동생이 떠오른다. 커튼을 다 달고나자 펼쳐지는 장면에 '하!' 밭은 숨을 내쉬었을 동생이 떠올려진다. 누나에게 뭐라고 변명하지 안절부절못했을 동생이 그려진다. 유구무언이라고 구구절절한 변명대신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이모티콘 하나만 툭 보낼 수밖에 없었을 동생의 떨리는 손가락이 상상된다. 웃기는 남동생이다. 정말.
"됐다ㅋㅋ 엄빠 아빠한테 너 놀려먹을 일 하나 생겼네ㅋㅋ"
물론, 나도 그 앞에서는 철딱서니 없는 누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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