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라는 직함이 쥐어진 이후로 나에게 남동생은 늘 철없는 존재다. 가족 내 존재하는 온갖 불화를 몰라 천덕스러운, 심지어 그래도 되는 안일한 사람. 저래가지고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까 우려스럽도록 순진하고 무른, 남동생이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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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군 생활을 해온 아빠의 인생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스며든 것 때문일까, 우리 남매는 군인다운(?) 면모가 있다. 집에서 늘 빨래 업무를 담당하던 아빠는 우리에게 빨래 군기 잡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빠의 '다나까 말투(다, 나, 까로 모든 말이 끝나는 군대어투)'는 우리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투박한 말씨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늘 오해의 대상이 되어오곤 했는데, 나는 특히 '장군의 딸'이라는 별명을 얻곤 했다. 남동생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아서, 아빠의 뒤를 이어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10년을 꽉 채운 지난달, 남동생은 제대를 통보한다.
"누나, 누나 일터에서 일을 좀 배울 수 있을까?"
처음 제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세상이 각박한 걸 모르는 철부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제대 후 무슨 일을 할 거냐는 물음에 "카페나 빵집?"이라고 대답하는 남동생을 보고 기가 찼다. 당장 바로 앞에 '나'라는 선례가 있는데! 당장 이 아이를 붙잡고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나의 강렬한 거부반응 밑에 깔려있는 두려움을 먼저 본다. 고작 4년 차에 일을 그만둔 나에 비해, 무려 10년을 꽉 채워 일한 '경력상 선배'인 동생에게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심지어 내가 운영하는 서점&카페는 정말 한적하기 그지없어서 일손도 필요 없는걸. 되려 '누나'로서의 체면이 깎일까 봐, '누나'로서 근엄하게 쌓아온 지위가 무너질까 봐 그게 무섭다.
하지만, 생각해본다. 남동생은 '군인'이라는 단 하나의 직업을 관둔 것일 뿐이다. 그에게는 아직 수많은 역할과 직업이 남아있다. 부모님의 아들로서, 누나의 동생으로서, 친구로서 등등의 역할. 그리고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직업. 그가 안고 있는 역할과 직업이 그를 31년간 키워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의 새로운 선택이 만들어낼 수많은 가능성을 나는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나는 부모님이 그랬듯, 이렇게 대답할 뿐이다.
"언제부터 출근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