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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나의 형편을 증명하지 않겠다

by 애매한 인간 채도운

나는 더 이상 나의 형편을 증명하지 않겠다


최근 이토록 나를 동요하게 만드는 말이 있었나 싶다. "이 책을 읽고 책방지기님이 생각났어요." 과연 어떤 책일까 기대감을 안고 본 책은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였다. 여러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집이었는데, 그녀는 특히 '좋은 이웃'이라는 단편을 꼬집어 말했다. 제목만 보면 '좋은 이웃으로서 나를 떠올렸나 보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장애 때문에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의 독서 지도사로 오래 일해 왔다. 아이의 가정형편을 짐작해 과외비도 올리지 않고, '보람' 하나만으로 장거리를 오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 엄마가 이사를 간다고 말하며, 새로운 집에서도 계속 아이의 수업을 맡아 달라고 말한다. 이사 가는 집은 전세나 월세가 아니라 매매한 자가였고, 아이네는 집을 사서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작 주인공은 당장 살 집이 막연하고 불안정한 상황인데, 이웃은 안정적인 '내 집'을 마련해 이사 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주인공은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나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어떤 부분에서 제가 떠올랐어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힘들다고 말하면서, 대궐 같은 주택에 살고 있으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굳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단골손님으로 우리 집이 어디인지,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남편이 누구며 대략적인 재정 상황이 어떠한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주택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어쩐지 부당하게 다가왔다. 나는 항변하듯 말했다.

"정말 힘드니까 힘들다고 했죠. 서점 운영하면서 월세 못 내서 대출받은 게 3천만 원이고, 코로나 시기에는 1천만 원 추가된 거 아시잖아요. 지금도 봐요. 우리가 앉아서 이야기하는 긴 시간 동안 서점에 온 사람이라곤 우리가 전부예요."

"그래도 집이 있잖아……"

"아니, 그 집마저도 사실 제 것이 아니라 은행 거죠. 남편이랑 저랑 이른 나이에 취직해서 죽을 각오로 모아서 주택을 지었어요. 개인 신용대출이고 주택담보대출이고, 양가 부모님 노후자금 모두 다 끌어다."

"그래도 자본주의 시대에 신용이 있다는 게 어디야. 대출금이 나온다는 건 잘산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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