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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영 Mar 24. 2016

두오모 Duomo Basilica di Santa Ma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이탈리아 Italy 피렌체 Firenze

두오모 Duomo 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


여기는 피렌체. 그렇다면 두오모. 내가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것 뿐이었다. 유레일을 타고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이동하던 중 반나절도 되지 않는 아주 잠깐 동안, 잠깐이 어디야, 나는 피렌체 중앙역에 내려 몇 시간 피렌체 시가지를 걸어볼 수 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 줄거리가 소상히 떠오르진 않지만 책을 읽는 내내 꼭 한 번 두오모 종탑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책 또는 영화를 본 람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아주 막연한 바람이었는데 이렇게 왔네.  피렌체 시가지에서 조금 헤맸다. 두오모를 코 앞에 두고도 헤맸다. 두오모 Duomo. 영어로는 돔 dome. 반구형의 둥근 지붕 또는 둥근 천장. 같은 뜻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두오모는 성당 특히 주교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가리킨다. 주교좌성당 또는 대성당이라고 한다. 피렌체, 밀라노와 같이 큰 도시의 중심에는 모두 두오모가 있다. 과거 유럽의 도시들은 건설할 때 두오모를 중심으로 도시 구조를 배치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 꽃의 성모 교회. 우리가 대개 두오모라고 칭하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주되게 표현하는 두오모는 464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두오모의 붉은 돔 '큐폴라 cupola, coupole'이다.

일주일이 넘게 유럽의 돌바닥을 걸었던 터라 464개의 계단이 버거웠다. 몇 번이나 멈춰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마주 내려오는 사람들에겐 꼬박 인사를 한다. "hi." 나 역시 "hi." 대꾸는 하지만 정녕 안녕하진 않았어. 좁으면서도 회오리 계단 구조로 뱅뱅 돌아 올라 가야하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이 꼬이거나, 눈 앞 계단에 손을 짚게 되더라. 혼자서도 이따금씩 민망한 기분이 들어 헛웃음을 슬쩍슬쩍.   


숨이 가빠 더욱 벅찬 기분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다고 호들갑 떠는 연인들보다 말없이 그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연인들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목구멍 뒤로 찝찔한 피맛이 느껴지고, 심장박동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뛰었다. 손에 힘을 주고 가슴팍을 꾹 누르고 있어야 할 만큼. 두오모 큐폴라에서 나는 그랬다.

눈이 시릴 만큼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오늘만 그런 걸까 이곳이 원래 그런 곳일까. 바람을 핑계 삼아 눈물 흘리기 참 좋은 곳이다. 두 발아래 펼쳐진 낯선 고도의 풍경 앞에서 무언가 사연 있는 여자처럼.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곳에서 서로 한 눈에 반하고 마는 연인을 만나게 된다거나 오래전에 헤어진 옛 연인을 운명처럼 만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음을 그리고 다음 여정을 위해서는 서둘러 내려가는 것이 좋을 거라는 걸 명백하게 확인하게 되는 아주 현실적인 시간이었달까. Just 10 minutes.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니. 저 아래 땅에서도 어렴풋 느낄 수 있었지만 큐폴라 위에서 이 도시 피렌체의 색은 더욱 명확해진다. 토스카나의 잘 익은 빛깔은 붉은 흙과 주홍색 기와로 치환된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중부의 아펜니노 산맥과 티레니아 해 사이에 위치한 지방이다. 피렌체는 토스카나의 주도.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곳이라 손꼽히는 곳. 피렌체의 집들은 대부분 토스카나 지방의 흙으로 구운 벽돌과 기와로 지었단다. 모든 것을 무르익게 만드는 토스카나의 태양 덕에 흙의 빛깔이 대체적으로 저렇게 밝고 붉은빛을 띤다고. 그 엄청난 땅의 기운을 머리에 이고 있으니 영화로울 수밖에 없었던 걸까?

 


누군가에게 두오모는 예술적 영감의 대상

누군가에게 두오모는 매일 지나치는 길목

누군가에게 두오모는 일용할 양식의 원천

  

크런키 콘에 속았다. 이탈리아에서 이토록 맛없는 젤라또라니. 아니, 젤라또 자체는 괜찮았는데 저 크런키 콘이 ㅡㅡ 눅눅했다고. 어이없을 만큼. 기차 시간에 쫓겨 뛰어가면서도 기여코 사 먹었던 젤라또였는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몰라. 그날의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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