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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영 Aug 01. 2022

대체 '세계관'이 뭐야?

조선의 지도를 보고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보는 '세계관'이라는 말

요즘 심심찮게 '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접하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 게임같이 허구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K-pop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 그리고 '부캐'로 수렴되는 예능 프로그램 속 출연진들의 캐릭터를 이야기할 때에도 이 세계관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뭘까, 그 세계관이라는 거?


세계관 世界觀
철학) 자연적 세계 및 인간 세계를 이루는 인생의 의의나 가치에 관한 통일적인 견해. 민족성ㆍ전통ㆍ교육ㆍ운명 따위를 기반으로 하며, 낙천주의ㆍ염세주의ㆍ숙명론ㆍ종교적 세계관ㆍ도덕적 세계관ㆍ과학적 세계관 따위의 여러 견해가 있다.


뜻풀이도 어렵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마주한 몇 점의 고지도를 보고 어렴풋 '세계관이란 이런 걸까?' 생각하게 됐다.




이봐봐, <혼일강리역대국지도> 말이야, 1402년에 만든 세계지도인데 조선 건국이 1392년이니까 조선 건국 완전 초기에 만든 거지. 더 명확하게는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3대 왕 태종 이방원 재위 때. 이거 왜 만들었을까?


<혼일강리역대국지도>는 당시 중국에서 들여 온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을 추가한 에디션이다. 대항에 시대가 시작되면서 신대륙이 발견됐고, 그것이 15세기 후반이니까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은 있지만 아메리카 대륙이 없는 건 '오, 나름 정확성이 있네' 싶은 대목. 그런데 중국 크게 그린 거야 뭐 그렇다 쳐, 우리나라를 저렇게나 크게 그리다니! 그렇습니다. 이 세계지도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새로이 개창됐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동시에 그 위상을 드러내려고 만들었다고 보는 게 리즈너블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연결하여 보물 제1602호로 지정된 <조선팔도고금총람도>를 보면, 요건 지도 위에 전국 각 지역의 중요 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함께 표기한 인문지리지도인데, 또 재미있는 게 보이지 않나요? 지도 한가운데 동그랗게 표시된 지역이 있습니다. 어디? 한양! 실제 위치보다 훨씬 더 나라 한가운데에, 또 실제 축척보다 훨씬 크게 강조되어 있다는 거. 조선 왕조가 유교 전통과 풍수지리를 기반으로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옮기지 않았겠어요? 그때 풍수지리 측면에서 수도는 나라의 중앙에 위치하여 사방에서 거리가 일정한 것이 좋을 뿐만 아니라 배와 수레가 잘 통할 수 있는 지역이 지리적·경제적으로도 이로움이 많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여러 후보지 중에 한양이 떠올랐으니 그걸 강조하고 싶지 않았겠냐 이 말씀. 그러니까 지리적 정확성보다 해당 지역의 의미와 상징성에 중점을 두고 제작했다고 볼 수 있.


여기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화룡점정. 돌에 새긴 조선의 천문도. 최초에 제작한 건 1395년인데 마모가 심해 숙종 때인 1687년에 다시 만듦. 이 지도는 숙종 석각본과 내용과 구성이 동일한 목판본. '문송'한 나로서는 뭘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지만 (이과 출신들은 이거 보면 뭐가 달리 보일까) 조선에서 이거 왜 만들었는지는 또 궁금. 조선과 같은 전통 사회에서 천문 변화는 자연현상을 넘어 하늘에서 보내는 메시지라 여겼죠. 무릇 한 나라의 왕이라면 천문 변화를 제대로 살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려야 했다 이 말이야. (아 왜 미실이 일식 때문에 큰코다쳤잖아요) 때문에 천문도 제작은 정사를 돌보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었. 특히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조정이 고려 때 사라졌던 천문도의 영인본을 확보하게 되면서 그를 바탕으로 오차를 보완하여 만든 것. 고려의 것을 이어받아 조선의 하늘을 살피고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은 조선 왕조의 개창이 하늘의 뜻이라는 걸 공고히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조선의 세계관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면서도 '내가 제일 잘나가'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던  아니냐 이거지. 그런데 조선 후기가 되면 실학 사상이 흥하고, 서양 지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변화가 생겨. <곤여전도> 1860년에 벨기에 선교사가 그린  조선에서 옮겨 그린 것인데 보면 신대륙도 있고, 남반구도 보이고 그렇단 이야기. 그러니까 이제는 탐험과 측량을 바탕으로  과학적 지식을 탑재하고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는 .



요즘 미디어에서 말하는 세계관의 정의는 잘 모르겠지만 조선의 지도를 통해 세계관의 확장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서, 이야기가 길어졌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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