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만약 당신의 삶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꼭 해야 할 다섯 가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제 손으로 직접 사표를 내고 싶어요. 죽는 마당에(?) 사표가 뭐 대수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자유의지로 사표를 써보는 느낌을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거든요. 아직 사표를 못 쓰고 있으니 죽기 전에 제 손으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보는 경험은 꼭 해보고 싶군요.
그렇게 받은 퇴직금으로 아들 이준이와 아내를 데리고 런던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결혼하기 전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그린파크는 꼭 다시 가보고 싶거든요. 12년 전, 아내는 그린파크에 타임캡슐을 묻어놨었더랬죠. ‘그린파크, 6번째 가로등, 그 앞의 벤치’라는 힌트만 남긴 채 말입니다. 몇 달 후, 그린파크를 샅샅이 뒤져 편지를 찾아낸 연애 후일담을 이준이에게 꼭 들려주고 싶네요.
여행이 끝나면 제주도로 이사를 할 생각입니다. 일종의 회귀 본능 같은 걸까요. 제가 제주도를 내려갈 때마다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있는데요. 다름 아닌 아버지 농장 공터에 놓인 작은 테이블입니다. 아주 볕이 잘 드는 데다가 앞에는 귤나무가 한가득 있어서 사색하기 딱 좋은 장소거든요. 의자에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을 아주 오래도록 느껴보고 싶네요.
아버지의 농장에서 자화상 사진도 찍고 싶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지만 생각해보면 저 스스로가 제 모습을 담는 데에는 인색했던 것 같거든요.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제 모습을 혼자서 직접 담아 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최후의(?)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하겠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먼 훗날 죽음을 직면하는 순간 어떤 음악이 함께하면 좋을까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죽음’을 떠나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좋은 음악들만 모아 꼭 정예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겠노라 생각까지는 했던 것 같은데 여태 만들지 못했네요. 선생님의 음악을 정리하면서 앞선 제 인생을 같이 정리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겠군요.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