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필라테스 1일차
“규칙적인”
“꾸준한”
“건강한”
초등학교 6년 개근을 제외하면 절대 나를 수식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없으니만 못하게 방치되어 있던 이 브런치처럼 나의 몸도 몹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필 또 프리랜서같은 직업을 가져서는 더더욱 규칙적인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쓸데없이 집중력은 좋아서 앉은 자리에서 4-5시간을 버티니 허리는 아작난지 오래다. 작년엔 걷지도 못할 정도의 허리디스크로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래도 주사 몇번 맞고 쉬니까 조금씩 나아지길래 젊은거 하나 믿고 시간 지나면 낫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젊음에서 슬슬 멀어지고 있음을 디스크재발로 깨달았다. 나는 당장 뭐라도 해야했다.
필라테스는 너무 비쌌다. 아무래도 허리통증때문에 하는거면 수업을 1:1로 받아야할텐데 1회에 10만원이 기본인거 같았다. 일주일에 적어도 2회는 할텐데 그럼 한달에 80만원이고.. 이렇게 계산을 시작하니 아예 등록을 할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이러다간 또 허리 부여잡고 과거의 나를 원망하게 될것 같아 상담이라도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집 근처 필라테스 학원에 상담예약을 했다. 왠지 쫄아서 쭈뼛쭈뼛 들어서는데 성형티가 좀 나는 센 인상의 상담사분이 내 이름을 물었고 나는 오늘 상담만 받고 갈 수는 없겠구나 직감했다. 그렇게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래도 센언니가 할인 많이 해줬다.
오늘은 첫 날이었다. 내 담당 선생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인바디부터 쟀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근육돼지임을 다시 확인했다. 나는 몸에 수분량, 근육량, 지방량 모두 표준 이상이다. 지방량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아무튼 근육은 더 만들 필요가 없고 물도 굳이 챙겨먹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그냥 돼지보다 근육돼지가 낫지않나 싶지만 돼지는 돼지.. 기왕 비싼 필라테스 하는거 나도 식단조절을 같이 시작할 생각이었고 선생님도 착한 단어들로 나를 포장해주시며 다이어트를 유도하셨다. 어찌됐건 가장 큰 목적은 허리디스크 재발을 막는 것이니 선생님과는 디스크 위주로 상담을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가벼운듯 가볍지 않은 스트레칭으로 먼저 몸을 풀었다.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어디 근육 어디 근육을 다 신경쓰며 하다보니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10분만에 땀이 줄줄 흘렀다. 안그래도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사방이 다 거울인 방에 있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땀 범벅에 시뻘게진 얼굴로 다리를 부들부들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존못이.. 게다가 온 몸의 근육에 신경을 다 쓰면서 배에는 계속 힘을 주고 있어야하니 자꾸 방구가 나올 것 같았다. 필라테스에서 하는 호흡법도 따로 있었는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했던 숨쉬기를 배워서 하려니 내 호흡기관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 갈비뼈를 내 마음대로 조였다 폈다 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온 몸이 막 태어난 기린마냥 주체가 안되고 그게 거울로 그대로 보이니 또 너무 웃겼다. 하다가 계속 웃음이 터지고 선생님도 나보고 왜 웃냐고 하면서 자기도 웃고 수백만개의 내 땀샘들은 계속 울었다.
그새 재미는 붙었다. 허리디스크는 이미 뒷전이고 <신기한 스쿨버스> 타고 내 몸에 들어온 기분이다. 이게 바로 코어라는 거예요~ 근육들이 떨리고 있죠? 못쓰는건줄 알았는데 10만원을 주니 작동을 하는군요~ 내일은 또 이 몸에 어떤 근육이 숨어있었는지 알아볼게요~ 이런 느낌이랄까.. 내 몸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선생님이 내게 기대하신 보람은 이런게 아닐테지만 아무튼 재밌으면 됐다. 내일은 잘 안 지워지는 립틴트라도 바르고 수업에 가야겠다. 내 몸뚱아리야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