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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bre Apr 23. 2017

무소속 노동자로 살기

무소속 노동자; 프리랜서 혹은 21세기형 유목민

 어느덧 무소속 노동자로서의 삶도 7개월에 접어들었다. 전형적인 대한민국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최그래 2년차의 모습과 비교하자면 영 좋아보일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반성포인트도 찾아볼겸 요즘 나의 패턴과 내가 느끼는 것을 정리해본다.

1. 하루에 4-6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다. 매일 회사에서 9시간을 넘게 앉아있었지만 점심시간 1시간, 회의시간 1시간, 이래저래 택배받고 손님 맞이하고 아저씨들 쓸데없는 농담 받아주고 하다보면 실제로 내가 일하는 시간은 6시간이 안됐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혼자 집중해서 정직하게 4-6시간을 일하니 일의 능률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 이제는 지인 인프라가 최고의 인프라다. 퇴사 후 여태 했던 일들은 모두 지인 혹은 지인의 지인이 의뢰했던 것들이고 그렇게 입에서 입을 타고 일이 꾸준히 들어오는것 같다. 차카게 살자!
3. 그 위치가 어디든 내가 있는 곳이 일하는 곳이다. 덕분에 퇴사 이후 국내외 여행만 10번을 다녀올 수 있었다. 관광여행이라기보단 노트북을 들고 다녔으니 일하는 장소만 바꼈을 뿐이었다. 21세기형 유목민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4. 내가 얼마나 협상의 호구인지 알 수 있다. 언니오빠들의 조언과 충고를 분명히 귀담아 들었는데 꼭 당하고 나서야 제대로 배운다. 회사에 다닐 때는 협상의 기회조차 없었으니 프리랜서가 되고나서야 스스로 자존감 높이는 주문을 되뇌이며 협상을 준비한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5. 프리랜서의 시작과 끝은 결국 세일즈인것 같다.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았든 내가 일감을 찾아 나섰든 기회가 왔을때 내 스스로를 영업하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위에서 말한 협상의 부분도 결국 이 때에 거의 결정된다. 세일즈는 절대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없으면 안될 능력이 되어버렸다.
6. 즉흥적으로 계획하는 일이 잦아졌다. 수입이 불규칙적이다보니 항상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것의 부작용이 돈이 들어오면 있을때라도 신나게 써야지 하고 망나니처럼 쓰게 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넘치긴 해도 즉흥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요즘은 즉흥적이다 못해 충동적이다. 매일매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7. 여가시간이 많아서 (아직까지는) 좋다. 경력을 더 쌓아서 돈 많이 버는 바쁜 프리랜서가 되는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돈에는 그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회사원 시절만큼 벌진 못하지만 그만큼 생긴 여가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어서 좋다. 내 몸 하나만 책임지면 되는 스물여덟 지금 그 무엇보다 즐겨야하는 부분인 것 같다.

 우리아빠는 나에게 '저축만으로는 평생 월세살이밖에 안되는 세대'라고 종종 얘기한다. 아빠 세대에는 월급만 꼬박꼬박 모아도 차 사고 집 사고 다 할 수 있었는데 나의 세대는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가끔 술을 좀 잡수시고 전화하셨을때는 내가 항상 하고싶은거 다 하고 놀고 싶은거 다 놀고 사는게 철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게 마냥 틀린게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신다. 사실 지금의 나에게 아빠의 이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든든한 응원이 된다. '자유'와 '안정적인 삶'을 맞바꾼 무소속 노동자는 미래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을 뿐더러 엄마아빠가 말은 안해도 우리딸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고 영영 백수되면 어쩌나 걱정 많이 하셨을텐데 내가 일부러 모른체하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한마디 안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를 결심한 이기적인 나에게 아빠가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주셨다면 엄마는 명쾌한 원동력을 주기도 한다. 월세라도 아껴야겠다 싶어 부산으로 다시 돌아갈까 했던 적이 있는데 우리엄마는 '개똥같은 소리하지 말고 월세만큼 더 벌어서 서울에 살 생각을 하라'고 대쪽같이 말씀하셨다.
 프리랜서 7개월차의 현재 상황은 이렇다. 다시 회사에 취직하게 될지 아니면 일감이 똑 떨어져 백수가 될지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엄마아빠의 든든한 응원을 받으며 아주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나의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서야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뒤에 이 글을 읽었을때 아 내가 참 어렸구나 느낄 수 있는 좀 더 큰 어른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전국의 병아리 무소속 노동자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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