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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작가 Dec 24. 2023

특기가 뛰면서 김밥 먹기 입니다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쓰디썼던 참치김밥, 나의 스무 살

여전히 어설픈, 30s


나는 가끔 비슷한 꿈을 꾼다.



배경은 대학교다. 첫 장면은 이렇다. 투박한 은박지에 쌓인 참치김밥이 내 손에 들려있다. 입 안으로 들어간 참치김밥은 딱딱한 당근, 부드러운 참치마요, 시금치와 계란까지 조화롭다. 피크닉을 간 것도 아니고 김밥천국은 더욱 아니다. 길바닥이다. 나는 길 위에서 빠르게 걷거나 뛰면서 김밥을 우걱우걱 먹는다. 표정이 묘하다. 이게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잘 모르겠다.




바빠서 뭐 하나 챙겨 먹기 어려울 때, 그래도 나를 위해 500원 더 비싼 참치김밥을 선택했다. 바빠도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주문이 힘을 발휘한 것. 김밥만 먹으면 목이 막힐 수 있는데, 다른 김밥과 달리 참치김밥은 수분이 많아서 김밥만 먹어도 목이 매이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라 선택했다. 나는 참치김밥을 뛰어가면서 먹는 대회가 있다면 자신 있다. 나에게 참치김밥이란 메달이고 훈장이다.




수능을 망쳐버렸지만, 그래도 대학교에 정이 붙었다. 동기들도 선배들도 다 수능을 망한 건지, 똑똑하고 야무졌다. 그들은 나에게 좋은 자극제였고,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자극제이고 싶었다. 홍보를 잘하려면 경험이 많아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무엇이든 더 해보고 싶었다. 학회, 동아리, 공모전, 봉사활동, 과외에 장학금까지 놓칠 수 없었다. 그러려면 남들보다 1%라도 더 했어야 했는데, 나의 해결책은 밥 먹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나는 학회장이 되기도 했고, 동아리 활동을 잘했다고 총장님께 공로패도 받았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으로 인턴십을 따내기도 하고, 봉사활동을 잘했다고 해외연수를 갈 수 있었다. 4년 내내 과외를 해서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졸업식 때는 성적우수자라고 표창장도 받았다. 영광의 순간을 만들어 준 연료는 은박지 속 참치김밥이었다.




나는 요즘도 참치김밥을 종종 먹는다. 횡단보도를 건너 조금 먼 김밥집으로 간다. 그 김밥집 사장님은 무뚝뚝하다. 인사도 건성이고, 손님이 단무지를 더 달라고 할 때면 턱으로 ‘반찬은 셀프’라고 쓰여 있는 안내문을 가리킨다. 무뚝뚝하지만 정 넘치는 사장님이라는 건 나는 잘 안다. 참치를 많이 넣어주시니까. 나는 주인장의 인심이 참치의 양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정이 넘치면 김밥은 터지기도.




터져버린 김밥을 보면서 생각한다. 정이 넘쳐서 터져버린 김밥은 먹기가 불편하다. 열정이 넘쳐서 태우기만 했던 스무 살의 시간들은 추억이라고 말하기엔 씁쓸하다고.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참치김밥을 걸어가면서 먹지 않고, 앉아서 장국이랑 천천히 먹는다는 점이다. 10년 전보다는 형편이 많이 나아진 것 같고, 위장이 예전만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스무 살 참치김밥은 뒤로하고 나아가자.




자기 연민과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후후 불어서 떠나보내자. 서른 살의 메달과 훈장도 뛰어가면서 참치김밥 먹기가 아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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