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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에 관한 다소 직관적 단상

혹은 '나'라는 현존에 관한 상념

by 김현명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종교를 가지지 않으면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일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종교와 믿음은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마치 같은 언어라도 문법과 문체가 다르듯이 .. 우리가 말하는 '합리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만약 합리성이 가장 균형 잡힌 통념들의 집합이라면, 이제 그 기준점은 우리 안이 아닌 AI로부터 얻을 수 있다. 균형 잡힌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의 총체가 더 이상 내 안의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시스템과 기술 체계에 의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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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알고 이해하는 수준의 체계로부터 합리성을 보장받는다.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 관계의 관찰 과정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나'의 현존을 떠받치고 있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단순히 외부에서 주어진 정보 해독 시스템만은 아니다. 적어도 시간 속에 살아가는 나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지닌 생물학적 존재이며, 현존과 인식이 상호작용하며 선택하는 실체이다. 바로 이것들이 '나'를 결정하고 변화시키며, 이해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의미'로서의 실체를 만들어준다.


이런 것들은 단순한 인과적 합리성이 아니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어떤 방향에 대한 의지나 믿음, 신뢰의 영역에 속한다. 종교란 어떤 초월적 환상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해나 신뢰라는 의식의 방향성에 관한 조건들을 좀 더 실체적으로 전제하게 해주는 것이다. 흥미롭지만 종교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도킨스 같은 사조와, 반면 비물질적 전제들이 물질세계나 대상들의 전제 조건일 수 있다는 다소 절제된 태도도, 사실상 모두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하나의 믿음의 체계인 셈이다. 다시 질문해 보자.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더 합리적이 되는 것일까? 약간 거부하고 싶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믿음 위에 서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간다. 다만 그 믿음의 이름과 모양이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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