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고주스 Sep 06. 2023

[사과향 구름, 구름향 사과 : #3. 산책길]

사과 이야기

그 아이는 자주 산책을 나가곤 했다. 짧게는 2~3시간, 비가 와도 기분에 따라 산책을 갔다. 삼일을 꼬박 오지 않은 적도 있었고 그날도 산책을 간 줄 알았다. 그리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와 산책을 하는 방법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함께 하기도 상태에 따라 각자 하거나 중간에서 만나기도 했다. 따로  같이 되는 시간들은 나를 편하게 만들어 준다. 산책은 목적을 위해 걷는 것과 다르게 나도 몰랐던 자아들이 주변 풍경과 함께 불쑥 나타난다.  경험은 마치, 같이 걸을  종종 서로가 낯선 사람과 걷는 거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우리는 우리 나무를 보러 갔다. 자주 산책을 나가던 그 아이는 어느 날 엄청난 나무를 발견했다며 누워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처음 마주했던 엄청나다는 나무는 경이로웠다. 구름 사이로 뻗은 햇빛은 그 나무 주변만을 감싸고 있었고 그 나무만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바람이 불면 그 나무가 지휘하여 주변 식물들이 소리 내며 춤추는 거처럼 보였다. 마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속삭이듯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많은 작가들이 배경을 자연으로 채우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날 산책이 끝난 뒤 나무에 대해 찾아보니 콘 나무의 변종인 팝콘 나무로 멸종위기 희귀 식물이라고 한다. 팝콘 나무는 작은 태양열에도 자극을 받아 팝콘이 되어 사방으로 튄다고 한다. 팝콘은 자연스럽게 녹아 땅을 더 비옥하게 해주는 영양분이 되기도 하고 열매처럼 먹어도 된다고 한다. 팝콘은 뿌리부터 나무 봉오리 꽃 전부를 나누지 않고 전체를 팝콘이라고 부른다고 적혀 있었다. 팝콘은 마치 구름 같은 식감에 고소한 향으로 맛은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팝콘 나무아래에서 가끔 입을 벌리고 바보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팝콘이 입안에 들어오면 행운이라며 소원을 빌거나 입에 먼저 팝콘이 들어온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 아이와 있으면 유치해진다. 그런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팝콘은 동일한 온도에서 각자 다른 뜨거움을 느낀 지점에서 피어나, 서로 다른 생김새로. 같이 태어났지만 달라. 하지만 모든 것이 팝콘이야. 못다 핀 봉오리들도 누구의 재촉도 개입도 요구도 없이 잠시 뒤 각자 함께 피고 져. 각자의 시기가 있는 거야. 더 머무르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더 따뜻함을 느껴도 좋다고 허락받은 느낌일 거 같아. 나는 팝콘이 되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아. 아니 그 팝콘 나무에서 살고 싶어.”

그 아이가 이렇게 무수한 말을 할 때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적당한 말을 생각하다 내뱉기엔 늦은 것 같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침묵이 찾아왔고 다행히 편안했다.

우리는 그 나무 아래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도 했고 간단한 샌드위치와 함께 달빛을 머금은 사과 에이드를 먹기도 했다. 그곳에 있으면 바람 타고 흐르는 팝콘의 고소한 냄새가 기분을 좋게 한다. 냄새는 기억하게 해 준다. 꿈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사과향 구름, 구름향 사과 : #2.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