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링고주스 Aug 27. 2023

[사과향 구름, 구름향 사과 : #2. 기억]

사과 이야기

과거의 기억은 불쑥불쑥 끼어들고서 지금을 어지럽힌다.

지금만 존재하는 세상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귀찮은 일들은 사라질 텐데. 얼마 전 희망을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내가 그 아이를 불러낸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드는 것조차 이전을 생각하는 지금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이는 예전처럼 거실 한편에 집 안에 있는 이불과 옷 가지들로 둥지를 만들어 놓았다. 작지만 포근해 보이는 둥지. 내 영역에 침범하는 것도 내 물건을 만지는 것도 싫어하지만 여전히 거슬리지 않았다.

그 아이는 빠른 걸음으로 오더니 손에 들고 있는 봉투를 살폈다.


기억하고 있었네. 물방울. 나와 어울릴  같아서  왔다고 했잖아. 사실 이전에 물방울에 대한 아무 생각 없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촉촉함을 좋아해 “

- 나는 이제 싫어.

“혹시 나 보고 싶었어? “

- …

“내가 보고 싶었던 사람이 나를 보고 싶어 했는지 궁금해.”

- 돌아오지 않는 것을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 않아.


대화 기저에 깔린 마음을 읽히는 것은 늘 탐탁지 않다. 그리고 연민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이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는 연민만 부를 뿐이다. 추억과 과거는 힘이 없다.

그 속에 갇히지 않기 위해 수 없이 희망이 없는 미래로 나아가려 했고 그런 노력들이 지금을 만들었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보지 않아도 그 아이의 보드라운 입술 사이로 나오는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그냥 작은 가출이었다고 생각해 줘 “


지키고자 했던 내가 만든 영역에서 누군가 침범하면 달아날 궁리만 하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남겨진 사람들 혹은 밀려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들의 생각은 물론 관심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런 과거의 내 행동들을 생각하면 그 아이에게 또다시 갑자기 떠나고 갑자기 돌아올 것인지 묻고 싶고 따지고 싶은 내 모습은 자격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끝내 내뱉지 못한다.


“내가 필요한 것은 여백이었어. 비울수록 너로 가득했어. 그래서 돌아온 거야.”

솔직한 것은 언제나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 생각이 많아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그 아이는 생각도 전에 해버린다. 그리고 이어서 던진 “미안해”라는 단어 하나. 투명한 것은 나를 녹인다. 그 아이와의 입맞춤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기약도 의미도 선물도 아니라는 것.


“우리 이제 화해한 거지?”라는 그 아이다운 질문에 미소로 답했다. 조심히 내 안색을 살피던 그 아이는 안심한 표정으로 씻어야겠다며 목욕탕으로 향한다. 그 뒷모습을 본 뒤에야 퇴근 후 남겨진 침묵과 어둠을 맞이했던 어제 같은 하루들이 부른 은연중 새어 나온 기억들을 자세히 불렀다. 소파 뒤로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나도 모르게 받았던 분리로 만든 외로움의 고통들을 두려움으로 만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과향 구름, 구름향 사과 : #1. 인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