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이야기
그 아이는 자주 산책을 나가곤 했다. 짧게는 2~3시간, 비가 와도 기분에 따라 산책을 갔다. 삼일을 꼬박 오지 않은 적도 있었고 그날도 산책을 간 줄 알았다. 그리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 아이와 산책을 하는 방법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함께 하기도 상태에 따라 각자 하거나 중간에서 만나기도 했다. 따로 또 같이 되는 시간들은 나를 편하게 만들어 준다. 산책은 목적을 위해 걷는 것과 다르게 나도 몰랐던 자아들이 주변 풍경과 함께 불쑥 나타난다. 그 경험은 마치, 같이 걸을 때 종종 서로가 낯선 사람과 걷는 거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우리는 우리 나무를 보러 갔다. 자주 산책을 나가던 그 아이는 어느 날 엄청난 나무를 발견했다며 누워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처음 마주했던 엄청나다는 나무는 경이로웠다. 구름 사이로 뻗은 햇빛은 그 나무 주변만을 감싸고 있었고 그 나무만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바람이 불면 그 나무가 지휘하여 주변 식물들이 소리 내며 춤추는 거처럼 보였다. 마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속삭이듯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많은 작가들이 배경을 자연으로 채우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날 산책이 끝난 뒤 나무에 대해 찾아보니 콘 나무의 변종인 팝콘 나무로 멸종위기 희귀 식물이라고 한다. 팝콘 나무는 작은 태양열에도 자극을 받아 팝콘이 되어 사방으로 튄다고 한다. 팝콘은 자연스럽게 녹아 땅을 더 비옥하게 해주는 영양분이 되기도 하고 열매처럼 먹어도 된다고 한다. 팝콘은 뿌리부터 나무 봉오리 꽃 전부를 나누지 않고 전체를 팝콘이라고 부른다고 적혀 있었다. 팝콘은 마치 구름 같은 식감에 고소한 향으로 맛은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팝콘 나무아래에서 가끔 입을 벌리고 바보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팝콘이 입안에 들어오면 행운이라며 소원을 빌거나 입에 먼저 팝콘이 들어온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 아이와 있으면 유치해진다. 그런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팝콘은 동일한 온도에서 각자 다른 뜨거움을 느낀 지점에서 피어나, 서로 다른 생김새로. 같이 태어났지만 달라. 하지만 모든 것이 팝콘이야. 못다 핀 봉오리들도 누구의 재촉도 개입도 요구도 없이 잠시 뒤 각자 함께 피고 져. 각자의 시기가 있는 거야. 더 머무르고 싶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더 따뜻함을 느껴도 좋다고 허락받은 느낌일 거 같아. 나는 팝콘이 되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아. 아니 그 팝콘 나무에서 살고 싶어.”
그 아이가 이렇게 무수한 말을 할 때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적당한 말을 생각하다 내뱉기엔 늦은 것 같아 그저 가만히 있었다. 침묵이 찾아왔고 다행히 편안했다.
우리는 그 나무 아래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도 했고 간단한 샌드위치와 함께 달빛을 머금은 사과 에이드를 먹기도 했다. 그곳에 있으면 바람 타고 흐르는 팝콘의 고소한 냄새가 기분을 좋게 한다. 냄새는 기억하게 해 준다. 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