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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주스 Jan 19. 2024

[사과향 구름, 구름향 사과 : #4. 애칭]

사과 이야기

곁에 누군가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회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인정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에 대한 인정과 받아들임. 모든 것은 태어나고 사라지며 잊혀진다. 그리고 반복되고 그 반복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어제의 마음이 오늘과 같을 수 없고 지금 했던 약속은 몇 분 뒤에 파기될 수 있다. 실망이란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기대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성장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방어일지도 모른다. 방어가 감정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대가라면 그것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리숙하고 순진하면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혼자가 된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물었다.

“이름은 왜 물어보지 않았어?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는 말을 하고 가만히 그 아이의 눈을 응시하다 부드럽고 폭신한 곱슬머리를 쓸어내리며 입가의 보조개를 어루만진다. 흥미가 생기는 것에 호기심이 많아지고 질문을 통해 알아가고 그것에 애착을 느끼는 나에게 한계를 두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싶은 상황들은 예상치 못한 변수다. 아마도 내가 속한 세상에 그 아이가 속하지 않고서 지금의 투명한 모습 그대로 내게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짐작해 본다. 과연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이런 어긋남은 그 아이가 나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 아이를 놓치게 된다. 그럴 때 솔직함은 좋은 무기가 된다. 솔직하지 못한 나는 늘 놓쳐왔다. 그런 내 모습에 자책도 들지만 입안에 공기만 가득히 채워질 뿐 입술 사이가 점막은 떨어지지 못한 채로 가로막혀 끝내 내뱉지 못한다. 분출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 쌓여 자꾸만 무거워지는 이런 불편한 감정이 낯설다. 그 아이가 없는 시간들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막상 눈앞에 사라지면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그 아이가 거실에 있는 것이 좋았다. 내 물건들로 만들어진 둥지도 나로 인해 만들어진 것 같아 만족감도 있었다.


희망은 그 아이가 가진 성질이다. 그 희망이 가진 자유로움이 좋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한 웃음을 보게 해주는 것도 그 웃음이 밝혀주는 안도와 존재도 침묵이 주는 여운도 좋았다. 이해타산이 우선인 내가 좋은 감정만으로 침범이 허용되는 가벼움이 주는 해방감도 희망만이 할 수 있었다.


“왜 나에게 애칭도 이름도 만들어 주지 않는 거야?”

- 그래야 모든 것이 될 수 있어. 

“네가 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누구의 것이든 될 수 있어. 그래도 상관없는 거야?”   

- 원한다면.



솔직하지 못해 생긴 어긋남과 동시에 생기는 실망에 대한 반감이 만들어져 방어가 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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