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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you Sep 12. 2022

놀멍 쉬멍 우리의 신혼여행 / JEJU DAY9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오늘의 아침은 문어를 넣은 라면이다. 제주라서 가능한 아침일까.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시며 잠들고 있어서 눈을 뜨면 해장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여행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커피를 한잔 하고, 며칠 전 카페에서 사 온 쿠키를 아작거리면서 오전 미팅을 마무리했다. 여행 동안 어떤 일도 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노동이 끊어지면 안 되니까. 돌아가면 또 일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태풍은 지나갔다. 숙소가 무사할지, 차가 안전할지 밤새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집 주면을 살펴보니 작은 나무 하나가 부러진 듯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가 아니라 지지대가 부러진 것이다. 큰 일 없이 태풍은 지나갔다. 날린 나뭇가지와 잎들을 잔뜩 뒤집어쓴 차도 별 탈은 없다. 꼬질꼬질한 모습이 안쓰러워서 마당에 있는 호수로 겉은 대충 씻어 날렸다.

  ,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


 

 아무튼 이것저것 하면서 미적거리느라고 우리의 일정은 또 구멍이 났다. 딱히 할 것도 없지만.

 외출 준비를 하다 떠오른 어제의 그 카페를 다시 방문했다. 일다 맛있는 커피를 한잔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또 오셨네요? 반색하며 반겨주는 주인분이 정답다. 단골 카페가 생긴 것 같아서 기쁘고 안심이 된다.

 주인분은 내일 육지로 떠나신다고 했다. 작은 수술이 예정되어 계시다고 했는데 무사히 끝나고 잘 쉬시고 다시 돌아오시기를. 건강하게 오래 계셔주셔야 저희도 다시 올 수 있어요.

 추천해주시는 사진작가의 사진집을 뒤적거리며 빈둥댄다. 뭘 하지? 고민하면서도 꼭 뭘 하고 싶지는 않은 기분.

 태풍이 지나가버려서일까. 다시 여유가 찾아왔다.



 짝꿍의 위시리스트에 있는 송악산은 해 질 무렵에 걸어야 한다고 했다. 재잘재잘 끝없이 말하는 것을 보니 걸어야 끝이 나는 이야기인가 보다. 그래 갑시다!

 송악산 와 봤어? 알아?라는 질문에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 대답했다. 걸은 기억은 없고, 거기 앞에 스타벅스가 하나 있지 않아? 거길 가 본 것 같은데.

 우리의 여행 기억은 이토록 제각각이다. 같은 장소를 떠올려도, 짝꿍은 걷거나 올랐거나 하는 행위들로 채워져 있지만 나는 대게 커피를 마셨거나 밥을 먹었거나 멍 때리기를 했던 곳이다. 아마 우연히도 같은 장소에 있었다 한들, 절대 스쳐 지나갈 일도 없었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만나서 결혼을 하고 여행을 하고 있네. 놀라워라.

 생각보다 바람이 차가워서 해가  때까지 송악산에서 기다리지는 못했다. 방향 없이 불어 재끼는 바람에 머리가  해졌다. 태풍이 온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잔바람은 아직 제주에서 머무는 중인가 보다. 하긴 뭐든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날 수는 없지.



 메밀 막국수 집을 찾아서 막국수와 파전을 먹었다. 여행을 떠나오면 일상을 유지하던 때보다는 많이 먹게 되는 편인데, 이번엔 좀 더 유난스럽다. 돌아서면 자꾸 배가 고픈데 뭐가 충족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를 고민하고 있다.  

 아주 긴 시간을 보내는 여행인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뭘 해도 옆에 누군가가 있다. 자꾸만 뭔가를 같이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혼자 두지 말라고 쫑알거리기 일쑤다. 그것 때문일까.



 고민하면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같이 해버렸다. 고민을  틈이 없네. 좋은 건지  좋은 건지 고민할 틈도 없다.

 무겁게 실어 온 그의 카메라는 내내 짐칸에 실려있다가 이제야 파우치 밖으로 나왔다. 내일 짐을 다 실어 탁송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에 가서 달 사진을 많이 찍어주겠다더니 여행이 끝나가는 무렵에 만난다. 아니, 아직 달이 다 차오르지 않았다고. 

 다시 캐리어를 꽉 채워 카메라가 짐칸에 실린다. 저 짐을 보고도 추석맞이 카메라를 할인한다는 홍보 문구에 쇼핑몰을 들락날락거리는 사람과 제가 평생 살기로 했어요.

 (살 거면 일단 나 디터람스 턴테이블 하나만 사주고 시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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