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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you Sep 27. 2022

놀멍 쉬멍 우리의 신혼여행 / JEJU DAY11

다시 새로운 여행


 짐을 싸는 아침이 돌아왔다.

 명절에 각자의 집에 가는 것을 피하자는 명목으로 여행을 조금 더 연장하기로 했는데,

 (아무렴 인사 가는 일보단 우리의 휴식이 먼저이지 않겠소)

 지금 묵고 있는 숙소가 연장이 안된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조금 편하게 호텔방에서 쉬어볼까? 하고 시내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고 바리바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 싸는 일이 없다면 여행이 참 편할 텐데.

 결혼을 한 것이 실감 나는 일은 짐을 쌀 때.

 어쩔 수 없는지 남편의 옷부터 차곡차곡 쌓아 넣는 나를 발견할 때.



 오며 가며 입구만 스쳐 지나갔던 고살리숲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 동네와는 이제 작별이니까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엔 숲이 제일 적격이다.

 말끔한 하늘이 우리를 반겨준다. 이제 태풍도 잘 지나간 것 같다.

 맑은 하늘 아래서 괜히 신이 난다. 설렁설렁 걸어보자고 나선 길에 작은 친구들이 숲 소풍을 온 것을 발견하고 더 신이 난다.

 자연에서 자라는 작은 친구들의 삶은 앞으로 얼마나 더 반짝거릴 것인지 기대된다.

 나도 조금 더 자연과 가까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여기를 눈독 들인 이유는, 짝꿍이 족욕을 하고 싶다고 우겼기 때문이다.

 좀 심한 평발인 그는 조금만 걸어도 금방 피곤해지는데, 결혼식용 구두를 신은 이후로 계속 발이 아프다고 칭얼거렸다.

 족욕을 하게 되면 조금 나을까?


 족욕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어떻게 여행을 다닌 건지 궁금해졌다.

 그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세계의 오지를 탐방하거나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여행을 했다고 줄곧 자랑해왔다.

 과연 이런 발바닥으로? 가능했던 걸까?



 족욕으로 신이 난 그는, 스트레스 체크도 받아봐야겠다고 했다.

 아무튼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나는 정상에 가깝고

 짝꿍은 부교감 신경 수치가 좀 낮다고 했다.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고,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다운 결과치다.



 점심은, 점심 레스토랑에서!

 다시 찾아온 이곳에서 돈가스와 맥주를 마시자니 부쩍 가까워진 것 같은 제주의 날들.

 가까워진 것 같으니 이제 멀어질 때가 가까워졌나 보다.

 

 여름의 맛을 듬뿍 느끼고 갑니다.

 아무래도 여름엔 낮맥이니까요!



 지난번엔 김보희 작가님의 전시만 보고 돌아섰는데,

 이번엔 김창렬의 작품만 보러 다시 찾아온 동네.


 찬찬히 미술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좋고, 그 여유를 즐기는 시간도 좋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보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것이 내가 즐기는 여행이야.

 하고 짝꿍과 발맞춰봅니다.



 그래서, 가까운 카페를 찾아서 커피를 한 잔!

 공간이 꽤나 재미있는 곳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기 고양이들을 구경하고, 재미난 공간을 천천히 살폈다.

 나와 짝꿍은 요즘 정원이 있는 건물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번잡한 시내로 상경.

 아예 다른 도시로 이동한 것처럼 풍경이 생경하다.

 쇠락한 시골 마을의 읍내 같은 제주시내는 사람도 풍경도 쓸쓸하기만 하다.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많이 들리는 것 같고, 간판에도 중국어가 있다.

 여행지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이상한 마을.

 속에 쏙 들어와 버렸다.

 오늘부터 3일.



 까무룩 잠들어버린 짝꿍을 기다리다가 저녁이 늦었다.

 늦게까지 문 연 가게를 찾아 동네를 헤매다가,

 (이 동네는 단란주점과 호프집이 너무 많네요.)

 찌개를 파는 백반집을 찾았다.

 

 뭐든지 괜찮지요, 뭐.

 한라산 한 병이 있다면야!

 

 뭔가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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