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과한 관심은 안 하느니만. 사랑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이번엔 유종원이다.
당나라의 문관이자, 시인, 수필가이자 사상가. 당대와 송대에 걸쳐 진나라 이전의 산문인 고문(古文)의 형식을 정리하고 중국 전역에 퍼트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중 한 명이다. 참고로 당송팔대가는 당나라의 한유(韓愈), 유종원과 송나라의 구양 수(毆陽修), 소순(蘇洵), 증공(曾鞏), 왕안석(王安石), 소식(蘇軾), 소철 (蘇轍)이다.
그리고 그의 종수곽탁타전 (種樹郭槖駝傳)
이름이 신기하다 종수곽탁타전이라니. 앞에 붙은 종수(種樹)는 나무 심는 일을 하는 것이고, 곽탁타(郭槖駝)는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나무 심는 일을 하는 곽탁타에 관한 이야기인 셈. 뭔 소리야 싶다가도 천천히 풀어보면 응당 그런 뜻이 된다. 어렵지 않고 쉬운 사람들.
내용은 그냥 나무 심는 일을 하는 곽탁타가 어찌 그렇게 일을 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옛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든지 교훈 없이 마무리하는 법이 없으니 교훈도 있다. 나무 심는 법을 사람 관리하는 법에 비유해서 은근히 사람들을 이렇게 관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郭槖駝는 不知始何名이요 病僂하여 隆然伏行하여 有類槖駝者라 故로 鄕人號之曰駝라 하니 駝聞之曰甚善 하다 名我固當이로다 하고 因捨其名하고 亦自謂槖駝云이러라 其鄕曰豊樂鄕이 니 在長安西라
곽탁타는 처음에 어떤 이름이었는지는 모르겠고, 등이 굽은 병에 걸려 불룩한 모습으로 엎드려 다녔는데 그 모습이 탁타(橐駝: 낙타)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고을 사람이 그를 ‘낙타’라고 불렀다. 그는 사람들 말을 듣고 “매우 좋다. 나를 부르는 이름으로 딱 맞다”라고 하고,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탁타’라고 불렀다. 그 고을은 풍낙향이라는 곳인데 장안 서쪽에 있다.
駝業種樹하니 凡長安豪家富人이 爲觀遊及賣果者 皆爭迎取養이라 視駝所種樹 와 或移徙하면 無不活이요 且碩茂蚤實以蕃이라 他植 者雖窺伺傚慕나 莫能如也 러라
곽탁타는 나무 심는 일을 하는데, 장안의 큰 가문이나 부유한 사람들 중에 관상하며 놀거나 과일을 팔기 위해 나무를 가꾸는 자들은 모두 그를 다투어 맞이하여 보살펴달라고 했다. 그가 심거나 옮긴 나무를 보면 살아나지 않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크고 무성하며 일찍 열매를 맺어 번식하였다. 다른 식수하는 자들이 아무리 엿보고 따라 해도 그와 같은 이는 없었다.
有問之하니 對曰 槖駝非能 使木壽且孶也요 以能順木之天하여 以致其性焉爾라 凡植木之性이 其本은 欲舒 하고 其培는 欲平하고 其土는 欲故하고 其築은 欲密이니
누군가 그에게 비법을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탁타가 나무로 하여금 오래 살게 하거나 번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나무의 천성에 따라 그 성질을 이루도록 해 줄 뿐이다. 무릇 심는 나무의 성질이 그 뿌리는 뻗으려 하고, 덮는 흙은 수평을 원하며, 흙은 옮겨오기 이전의 것을 원하고, 다질 때는 촘촘하기를 바란다.
旣然已어든 勿動勿慮하고 去不復顧하여 其蒔也若子 하고 其置也若棄면 則其天 者全而其性得矣라 故로 吾不害其長而已요 非有能碩 而茂之也며 不抑耗其實而已요 非有能蚤而蕃之也라
이렇게 해주고 난 다음에는 흔들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말며, 자리를 뜨면 다시는 돌아보지도 말아야 한다. 심을 때는 자식처럼 하고 놔둘 때는 버린 것처럼 하면, 그 천성이 온전하고 성질이 충족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이 자라는 것을 해치지 않을 뿐 키우고 무성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며, 그 열매를 억누르거나 손상시키지 않을 뿐 일찍 맺게 하거나 많이 열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他植者則不然하여 根拳而 土易하며 其培之也若不過焉이면 則不及焉이라 苟有能反是者는 則又愛之太恩 하고 憂之太勤하여 旦視而暮撫하고 已去而復顧하며
다른 식수업자들은 그렇지 않아서 뿌리는 말리고 흙은 바뀌며, 흙을 북돋을 때 너무 많거나 모자라다. 만일 이와 반대로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또 사랑이 너무 은혜롭고 걱정이 너무 근면하여, 아침에 와서 보고 저녁에 와서 어루만지고 이미 자리를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보며,
甚者는 爪其膚하여 以驗其生枯하고 搖其本하여 以觀其疎密하니 而木之性이 日以離矣라 雖曰愛之나 其實 은 害之요 雖曰憂之나 其實은 讐之라 故로 不我若 也니 吾又何能爲矣哉리오. 問者曰 以子之道로 移之官 理可乎아
심한 자는 그 살갗을 손톱으로 후벼서 나무가 살았는지 말랐는지를 실험하고, 그 뿌리를 흔들어서 성근지 촘촘한지를 관찰하니 나무의 성질이 날마다 벗어나게 된다. 비록 ‘사랑해서’라고 말하지만 그 실상은 해치는 것이오, 비록‘걱정해서’라고 말하지만 그 실상은 원수로 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만 못한 것이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 것이겠는가?” 묻는 사람이 말했다.
“그대의 방법을 관청의 다스림에 옮겨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겠는가?”
駝曰 我知種樹而已요 理는 非吾業也라 然이나 吾居鄕 에 見長人者好煩其令하여 若甚憐焉이로되 而卒以禍 라 旦暮에 吏來而呼曰官命促爾耕하며 勗爾植하며 督爾穫하나니 蚤繰而緖하고 蚤織而縷하며 字而幼孩 하고 遂而鷄豚이라 하여
곽탁타가 말했다. “나는 나무 심을 줄만 알 뿐이오, 다스림은 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향촌에 기거할 적에 보아하니, 나으리라는 분들은 명령을 복잡하게 하기를 좋아해서 백성을 몹시 가여워하는 듯하지만 마침내 (백성들은) 그로 인해 화를 입게 되더라. 아침저녁으로 관리들이 찾아와서 외쳐댄다. ‘관(官)이 명하시기를, 서둘러 밭을 갈라, 힘써 곡식을 심으라, 어서어서 수확을 하라. 서둘러 실을 뽑고, 서둘러 베를 짜며, 어린아이들을 잘 키우고, 닭과 돼지를 잘 쳐라.’
鳴鼓而聚之하고 擊木而召之하니 吾小人이 具饔飧以勞吏도 且不得暇어든 又何 以蕃吾生而安吾性邪아 故 로 病且怠하나니 若是則與吾業者로 其亦有類乎인저 問者喜曰不亦善夫아 吾問養樹하여 得養人術이로다 傳其事하여 以爲官戒也하노라
북을 울려 사람들을 모으고, 나무를 두드려 사람들을 부른다. 우리 같은 소인들은 밥을 지어 관리를 위로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무슨 수로 우리의 삶을 돌보고 우리의 심성을 안정시키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병들고 태만하나니, 이와 같다면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다.” 묻는 사람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 또한 훌륭하지 아니한가. 나는 나무 기르는 방법을 물었다가 사람 기르는 방법을 얻었도다.”
그 일을 전하여 관리의 경계로 삼노라.
요즘 나는 식물을 키우는 일을 배우고 싶어서, 정원사 수업을 듣기도 하고 홈 가드닝 수업을 듣기도 한다. 언젠가는 정원이 있는 공간에서 생활이나 작업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꾸 말해야 이루어진다고 했어) 수업을 통해 이리저리 얻어오거나 시장 구경을 다니며 사기 시작한 식물이 새 집 발코니 가득 쌓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유종수의 이런 말들이 너무 가슴을 파고든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꾸 들여다보는 일이 오히려 괴롭히게 만드는 일을 아닐까 싶어 진다. 하지만 또 들여다보지 않으면 상태를 살필 수 없어서 그 적당한 거리감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부디 죽이는 식물을 줄이고 싶다. 가을은 영양제를 주는 계절이라고 해서 동글동글한 영양제를 듬뿍 주었는데 이것이 또 너무 과한 일은 아니었을지. 특히 가지를 꺾어 새로운 뿌리를 받아내는 과정을 배우면서 이 글이 자꾸만 떠올랐다.
(하지만 저는 두 번째 율마를 또 죽이고 있습니다. 왜 자꾸 끝이 말라가는지, 과습인지 물부족인지 율마를 붙잡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종종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야.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가면을 쓰고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기준으로 좋은 일을 나에게 밀어붙였다. 지금 무엇이 필요하니? 하고 나를 체크하지 않고 주고 싶은 것을 줬다. 가끔은 나를 할퀴기도 하고 뒤집기도 했고 사랑을 넘치듯 주는 것 같다가도 목마르게 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꼭 필요한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오래된 고전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개인적인 기록을 남겨둡니다. 위대한 작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 것은 아니지만 친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기억하면 더 재미있게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요. (제가 잘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