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석
“사회가 부패할수록 법률이 늘어간다”
- 타키투스(55-117)
#12
윤승민과의 관계로 인해 머리가 복잡한 기혁의 속사정과는 상관없이, 주세법은 날이 갈수록 핫이슈가 되어갔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이제 주세법은 정계와 산업계와 시민사회를 전부 달구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논쟁의 불씨는 신문 기자의 손과 방송기자의 입에서 붙기 시작해, 오피니언 리더들과 논객, 학생, 직장인, 주부, 일반 시민들의 부채질과 입김을 통해 더욱 커져갔다. 급기야 기혁은 이 모든 사태의 발원지에 다시 한 번 앉아 있게 됐다.
- 불과 이주 전에 뵙는데요, 이렇게 또 뵙네요.
매해 신뢰도 1위로 선정되는 언론인 손성희가 인사를 건넸다.
- 중앙방송이 마련한 특집 생방송 국민 대토론 ‘주세법 과연 개혁인가? 개악인가?’ 그러고 보니, 요즘 특집 생방송을 자주 합니다.
평소에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손성희이지만, 이날만큼은 조금 흥분했는지 사적 견해를 곁들어 소개했다.
- 그만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인물입니다. 이번 이슈의 주인공인 민중당 장기혁 의원 자리해주셨습니다.
소개가 끝나자, 어느새 생긴 기혁의 지지자들이 토론회 답지 않게 열렬히 박수를 쳤다.
- 함께 논의를 해주실 분입니다. 진보논객의 대표, 진준권 동서대 교수 모셨습니다.
뜨거운 열기 탓인지, 이번에도 참석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진준권 교수는 이게 웬일이냐는 듯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양 팔과 어깨를 들썩이는 서양인 제스처를 취했다.
- 이 분을 빼놓을 순 없죠. 바로 이주전 이 자리에 장기혁 의원과 토론했던 분입니다. 한국당 김정태 의원 나오셨습니다.
이번에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럴수록 김정태는 자신을 비웃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공안검사 출신답게 잔뜩 인상을 쓰며 ‘다 잡아 넣을거야’라는 표정으로 장내를 둘러봤다.
- 그리고 오랜만에 나오셨죠. 이제는 진준권 교수의 파트너가 아닌가 싶은 분입니다. 보수 논객의 대표 전일책 변호사님 나오셨습니다.
그는 박수소리가 나건 말건, 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입안에 물을 한 모금 넣더니, 복싱선수처럼 헹구었다.
- 오늘 열기가 뜨겁습니다. 평소 토론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데요. 스튜디오 열기로 짐작해보자면, 최고 시청률이 나오는 게 아닐까 기대해봅니다.
손성희는 오늘따라 자기만의 세계에서 통하는 유머를 잔뜩 즐겼다.
- 이제 뭐, 거의 온 국민이 아시다시피 장기혁 의원이 발의한 ‘주세법 개정안’, 일명 효모법이 뜨거운 논란거리인데요. 맥주 맛의 개선을 기다리던 애호가들은 희소식이라며 환영하는 반면, 업계와 정계는 무리한 개혁으로 시장 질서와 조세 확보 체계가 무너진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손성희는 그간의 이슈를 정리하며,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할 것임을 알렸다. 그 사이 진준권 교수는 논문 발표라도 할 요량인지 백과사전 분량의 자료를 정리했고, 전일책 변호사는 사우나에 온 듯 몸을 뒤로 젖힌 채 앉아 묵묵히 소개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김정태는 공안검사 출신답게 ‘니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야 말겠어’라는 표정으로 장기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혁은 그런 김정태의 눈빛이 당황스러웠지만, 오늘만큼은 실언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먼저 시작한 것은 전일책 변호사였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특유의 어투로 그는 질책하듯 말했다.
- 사실, 한국 맥주가 맛없다고 하는 거, 이거 사대주의입니다. 국산 맥주가 맛없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 세계인이 동의한 맥주 맛의 기준 같은 게 어디 있습니까. 대표자들이 모여서 무엇이 맥주라고 정의하고, 그 맥주 맛의 품질은 이러한 기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논의한 적이 있습니까. 지금 북한의 도발을 대비하고, 군비를 증강하고, 안보를 튼튼히 해도 모자랄 판에 국회가 어디 맥주 맛 가지고 싸우고 볶고 할 한가한 뎁니까? 효모법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국산 맥주에 자부심을 가져온 사람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법안이에요. 이게 단순한 주세법이 아니에요. 반 애국적인 법안이란 말입니다.
기혁이 이에 대해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떼려고 하기도 전에 진준권 교수의 입에선 벌써 한 문장 정도가 흘러나왔다.
- 말씀 잘 하셨는데요. 효모법이야 말로, 애국적인 법안입니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국산 맥주에 불만을 느끼고 있으면, 국산 맥주의 맛을 다른 국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이 나라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들이 나라에 자긍심을 갖게 하는 길 아닙니까. 그리고 말씀대로 어떻게 한가하게 전 세계 대표가 모여서 맥주의 품질을 논합니까. 게다가, 맥주 맛을 평가하는 대표를 또 어떻게 선정합니까. 이건 그저 개개인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 이 주세법 개정안을 원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한 여론 조사입니다.
이때 김정태가 한 수 가르치겠다는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끼어들었다.
- 진 교수님. 지난번 선거 때 저희 한국당이 참패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김정태는 사실 물어볼 생각이 아니었다. 자신이 질문하고, 자신이 답하려는데, 그 찰나 진 교수가 가로채듯 말했다.
- 그야, 대통령이 못 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한국당이 못 한 건 당연한 거고.
자승자박한 꼴이 돼버리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정태는 ‘아! 여기는 빨갱이 소굴이구나’ 하는 감정을 애써 감추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 결국 국민이 그렇게 심판하긴 했지만, 내부적으로 저희 한국당이 여론 조사에 기댄 탓도 있습니다. 비록 근사한 차이였지만, 여론 조사 결과는 과반 이상의 지역구에서 한국당이 민중당을 앞섰습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반대였죠. 바로 집 전화를 토대로 실시해서 그렇습니다. 응답률이 10%에 못 미칩니다. 그런데, 주세법 개정안 여부를 여론조사로 판단합니까.
- 그건 집 전화 조사니까 그렇지요. 인터넷 폴이나 지면설문조사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방법론이야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습니다. 절 시켜주세요. 곧 방학해요.
진 교수는 한층 더 시니컬한 태도로 김정태 의원에게 조소를 날렸고, 방청석에선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방법론 이야기는 핵심 논점에서 벗어난 것이니까, 이쯤하고요. 주세법 개정안이 나온 배경에 대해서 좀 더 토론을 해보죠.
손성희가 중재를 하고 나서자, 김정태가 반갑다는 듯이 답했다.
- 진 교수님이 논점을 흐리고 있었는데, 사회자님 감사합니다. 말씀 잘 하셨습니다. 주세법 개정안이 이때껏 별 문제 없이 잘 유지돼온 한국 주류 업계의 질서를 해치면서까지 무리하게 발의 된 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누가 장기혁 의원에게 맥주 회사의 레시피까지 제한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장 의원이 왜 발의한 겁니까? 바로 자신의 정치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주세법을 택한 겁니다. 대중인기영합주의. 이게 바로 포퓰리즘이 아니고 뭡니까.
- 아닙니다!
기혁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듯 끼어들었다.
김정태 의원이 놀라서 기혁을 보며, 물었다.
- 그럼, 정략적 발의가 아니란 말입니까?
- 아닙니다.
이 말에, 진준권, 전일책, 손성희뿐 아니라, 모두가 기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혁이 아무 말 않자, 정적이 흘렀다. 어쩔 수 없이 기혁이 말해야 할 때가 왔다. 기혁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 제가 마시려고 했습니다. 제가 맛있는 한국 맥주가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 말에 김정태가 보란 듯이 소리 높여 말했다.
- 장기혁 의원, 지금 대한민국 법안을 사유화하려 했던 걸 인정하는 겁니까?
기혁은 아랑곳없이 말했다.
- 맥주를 마시며 항상 생각했습니다. 독일의 생맥주는 맛있는데, 벨기에도, 체코도, 아일랜드도, 미국도, 인접한 중국도, 이웃나라인 일본도, 아니 북한의 맥주도 맛있는데, 우리 맥주는 왜 아쉬울까. 이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여론 조사를 한 적도 없고, 국민의 의견을 모두 물은 적도 없습니다. 이주 전 이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한숨도 못 잤습니다. 엄청난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 실수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실수를 했다고 한 생각이 실수였습니다. 다음날 SNS에 올라온 글과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모두 읽었습니다. 제가 잘 못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모두가 바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두가 기다리고, 모두가 염원하고, 모두가 희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원하신다면, 추후에라도 얼마든지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국민이 원치 않는다면, 제가 발의한 법안이지만 스스로 유보시키겠습니다. 그리고 그 논의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논의해서 국민들에게 법안의 내용을 알리고, 장단점을 함께 논의해 지금이라도 더 고칠 것은 고치고, 또 빼야 할 것은 빼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 장기혁 의원. 나중에 개인 발언 시간 따로 드릴게요. 한 마디만 더 하고 마쳐주세요.
사회자가 중재를 하자, 기혁이 마지막 말을 했다.
- 마시고 싶습니다.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어쩔 수 없이 기혁이 덧붙였다.
- 맛있는 한국 맥주를 마시고 싶습니다. 거품이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고, 효모 맛이 살아있는, 맛있는 한국 맥주를 마시고 싶습니다. 그뿐입니다.
그러자 김정태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 다그쳤다.
-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에요! 이 봐요. 장기혁 의원! 그럼, 세수 부족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정치가 장난입니까?!
‘정치가 장난이야?!’ 이 말을 듣자, 순간 김석인의 전화가 떠올랐다. 그 때, 왜 당 대표는 한낱 초선의원인 나에게까지 전화를 했을까. 그리고 ‘대한민국이 광산막장’이라고 한 정민은 이 모든 사태를 예견한 걸까. 게다가, 풀리지 않는 윤승민의 의문…….
기혁은 토론에 집중하려 했지만, 순간 봉인했던 책망과 의문의 항아리가 깨진 것처럼 빠른 속도로 근심에 사로잡혔다.
그나저나, 기혁의 속사정과 상관없이 토론은 열기를 더해가며 이어졌다. 김정태 의원의 다그침에, 전일책 변호사도 동시에 거들었다.
- 2조 3천억 원에 해당하는 맥주 주세. 이거 장기혁 의원 법안대로라면 72%를 30%로 빼고… 교육세 30%를 또 10%로 빼면… 아, 소규모 주조업자는 30%도 아닌, 특별세 4%로 또 빼면…….
전일책 변호사는 하던 말을 잊고, 종이 위에 펜을 굴리며 갑자기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준권 교수가 끼어들었다.
- 아니, 국정 교과서 개발 예비비 예산이 44억 원인데, 그걸 취소하고 이리로 빼면 될 거 아닙니까.
김정태가 이때다 싶어 초등학생을 혼내는 성난 악질 교사처럼 물고 늘어졌다.
- 그래도 모자라요. 턱없이 모자랍니다. 지금만 해도 1조는 모자라고, 맥주 시장이 커질수록 그 차이는 더 커져요. 이 예산 부족, 정부가 다 떠안아야 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민중당 초선 의원 장기혁 씨!
이때였다. ‘앞으로는 자나 깨나 말조심 하리라! 그 누가 자극해도 절대, 함부로 선언 따윈 하지 않으리라! 오늘 토론에서 만큼은 결코 허튼 소리 따윈 하지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기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만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또 재빠르게 내뱉고 말았다.
- 부자세를 도입할 겁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한 마디 더 했다.
- 대기업 사내 유보금으로 조세 충당할 겁니다! 1%씩만 내도 6조 원입니다.
순식간에 장내는 술렁였다. 기혁은 어쩐지 카메라까지 보며 말했다.
- 물론, 한강맥주도 유보금을 내야 합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기혁은 지금 자신도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는 걸까. 아니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 이 우발적 기회를 통해 마침 터져 나온 것일까. 기혁은 이번의 발언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개혁의 불길에 몸을 던질까. 그렇다면 여기서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시작일까.
이 모든 걸 아직 알 수 없다. 단,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 장기혁은 한 잔의 훌륭한 맥주에서 행복을 느낀 다는 것. 그리고 맥주를 마시고, 맥주에 관해 말하고, 맥주를 위해 뭔가를 해낼 때 가슴이 가장 빠르게 뛴다는 것, 바로 그뿐이다.
*
한편, 중구 을지로의 으리으리한 고급빌딩 34층에서는 다소 격조 높은 실내장식에 어울리지 않는 상소리가 울렸다.
“어디 새파랗게 어린 노무 새끼가!”
얼굴이 시뻘게진 한강맥주 회장이 손으로 100년 된 영국산 탁자를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