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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석 Apr 19. 2016

황금 파도
3화

최민석




“맥주를 발명한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플라톤(BC 427 – 347)




#3



- 아니,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평등과 인권, 사회 정의를 외치는 민중당 정책 회의실에서는 이에 걸맞지 않은 고성이 울렸다. 4년 전에도, 아니 그 4년 전에도 참패를 당해서인지 외부자들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비상대책위원회에는 품위에 걸맞지 않은 현수막까지 걸려 있었다.


‘승리가 곧 정치다!’ 


정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힘찬 필체라 할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알 법한 사람에게는 이 붓글씨의 필체마저 다급하게 보일 지경이다. 질책 탓인지 공기는 냉랭하다. 한 남자가 힘 빠진 듯 커다란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고뇌에 잠긴 표정의 그와 두 명의 회의 참석자 사이를 경계 짓는 건 기다란 나무 탁자다. 그 탁자 위에 ‘민중당 대표 김석인’이라 쓰인 명패가 놓여 있다. 


붉으락푸르락 한 분노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 김석인은 좀처럼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70대 노인이다. 한평생 올백 헤어스타일을 고집해왔으며,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양복을 입으며, 무테안경 역시 20년째 고수하고 있다. 과거 몇몇 정권에서 경제 관료로 일한 전력이 있는 그는, 지지도가 추락한 당을 구해달라며 영입된 ‘초빙 군주’다. 당 공천권은 물론, 당 내규 개정권까지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 이제 와서 내세울 후보가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 이게 다 전략 공천하자고 한 대표님 생각 아닙니까. 


김석인의 질책에 한 여자가 반문했다. 관공서에서 흔히 볼 법한 나무 팔걸이가 덧대어진 갈색 가죽 소파에 앉아 있는 이 여자는 ‘선거기획 본부장’인 박선영. 공영방송 아나운서 출신답게 흥분할 때도 중저음으로 또박또박 말을 하는 특징이 있다. 당내 지도부 중 유일한 여성이기에, 평등을 가치로 내걸고 있는 민중당에서는 주요 회의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옅은 카키색 정장을 위아래로 입은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남자도 거든다. 


- 맞습니다. 저희는 대안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토록 함구하신 상태에서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시니, 저희 입장에서는 다른 후보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또박또박 말하는 이 남자. 정치를 눈여겨보지 않더라도 모두가 알만한 이다. TV 토론에서 날카로운 일침으로 상대를 제압할 줄 알며, 한때는 정계를 떠나 글을 쓰며 칩거를 하다 다시 정계로 돌아온 이, 바로 유정민이다. 날카로운 눈매의 그는 사실 비공식적으로 그간 당의 모든 정책과 인선을 기획했던, 실무책임자였다. 그런 그도 원망 섞인 어투로 대표를 힐난했다. 


이제 후보 등록이 하루밖에 안 남은 상황. 지난 8년간 대권을 뺏긴 민중당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다. 당 대표가 짜증과 분노를 뒤섞어 말했다. 


- 아, 박철호가 막판에 빠질 줄 알았나! 룸살롱에서 처다 박은 돈이 얼만데. 그게 다 피 같은 당비라고. 당비.

 

1994년부터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IMF로 실의에 빠졌던 국민에게 희망을 전해줬던 박철호. 그는 공천 후보 등록일이 다가오자 고사를 표명해버렸다. 


- 아, 제 말이 그 말 아닙니까. 


책사 유정민의 탄식에 김석인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듯, 다른 질문을 했다. 


- 그건 그렇고, 저번에 접촉해본다던 김성아 어떻게 됐어?


그러자, 박선영이 예의 차분한 중저음으로 대답했다. 


- 처음엔 조금 관심을 가지더니, 결국은 여론 때문인지 발을 뺐습니다. 


피겨 여제 김성아마저 민중당의 공천을 거절한 것이다. 


- 맞습니다. 요즘 ‘마포 을’은 모두가 나서길 꺼립니다. 공천 탈락한 정혁래 지지자들의 반발이 너무 거셉니다. 망원역 앞에선 정혁래 지지자가 공천 탈락이 부당하다며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유정민은 말을 하다, 분이 삭히지 않는지 대표를 힐난하기까지 한다. 


- 그러게 저희가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막말을 한다고 해도 그렇지, 왜 지지도 높은 정혁래를 컷오프 시키십니까. 


참모진들의 질책에 애가 타는 김석인은 다시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마포 을에서만 연이어 2선을 한 정혁래가 공천에서 컷오프 되자, 지역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여론 또한 민중당의 결정을 비난했으니, 일각에서는 이번 탈락을 계기로 정혁래가 차기 대권 주자가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니,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혁래가 타의로 빠진 이 자리에 누군가가 들어오기가 두려운 것이다. 자칫하면 여론의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선거한 번 잘 못 나갔다가, 각자 평생 쌓아온 커리어를 단 며칠 새 무너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담배꽁초를 짓이기듯 비벼 끈 김석인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 됐고, 그나저나 이제 누구 없어? 어, 참신한 인물 없냐고?


순간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심각한 얼굴로 테이블 위에 깔린 유리판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책사 유정민이 갑자기 외치듯 말했다. 


- 있습니다. 있어요! 한 명 있습니다!





2012년 4월. 


바야흐로 벚꽃이 흐드러진 연애의 계절이자, 정치의 꽃도 만개한 선거의 계절이다. 유세 현장에 나온 유정민은 검게 선팅 된 차 안에 앉아 밖을 보고 있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행인들, 흰색 플라스틱 의자를 놓는 당원들,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봉사자들……. 늘 반복되던 풍경을 보던 유정민은 자기도 몰래 눈을 고쳐 떴다. 


‘어. 어디서 봤지?’


눈에 익은 한 남자가 시선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다, 유정민은 번뜩 떠올랐다는 듯이 혼자서 무릎을 쳤다. 기억은 4년 전으로 거슬러 더 올라간다. 



2008년 4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원을 그린 채 모여 있다. 원이 술렁이자, 행인들도 점차 몰려들고 있었다. 유정민 역시 무슨 일인가 싶어 조용히 군중들 뒤로 다가갔다. 원 안에는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난 50대 후반 취객이 한 선거원을 볼모로 따지고 있었다. 


- 더 이상 속지 않는다고. 십 년이야. 십 년. 자그마치 십 년 동안 민중당을 찍어줬다고. 그런데, 너희 말대로 된 건 하나도 없어! 


남자는 분이 안 풀렸는지, 군중과 선거원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 이젠, 지긋지긋해. 정치인들만 보면 신물이 난다고. 썩은 놈들. 이런데, 나와서 더러운 돈 받고 일하는 너도 다 똑같아! 


대부분의 소동이 그렇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이성적인 사람은 대응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더 화가 났는지 남자는 선거용 전단지를 구겨서 바닥에 내팽개치며 말했다. 전단지에는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주십시오’라고 쓰여 있었다. 


- 소중한 한 표? 부끄럽지 않아? 이런 뻔뻔한 거짓말을 매번 하는 게? 내 표가 소중하면 왜 바뀌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지겹다고. 너희들의 이런 가식적인 거짓말이! 


이때 잠자코 듣고 있던 선거원이 아무렇지도 않듯 대답했다. 


- 네. 소중하지 않습니다. 


선거원의 말을 듣자 남자는 곧장 반문했다. 


- 뭐야?!


선거원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 선생님 말씀대로 소중하지 않습니다. 한 표 행사해봐야 내 뜻대로 될지 안 될지 모릅니다. 십 년간 민중당을 찍으셨다면, 안 될 가능성이 더 컸겠군요. 대부분 버려진 표였을 겁니다. 십 년간 표를 버리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 이번에는 한국당 찍으시면 승리하실 겁니다. 


청년은 속으로 ‘아, 오늘 아르바이트는 망했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저러나 선거원의 태도에, 남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 무슨 개소리야!


청년은 기왕 망한 김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던 말을 이었다. 





- 사실 선생님의 표는 3,779만 6,035표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한국당 찍으셔도 됩니다. 


남자는 기가 차, 실소하듯 말했다. 


- 그래, 어디 한 번 지껄여봐!


- 행여, 내 뜻대로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었다 해도, 고작 지역 정치인 한 명 국회로 보내는 겁니다. 그 한 명의 국회의원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을 바꿉니까. 국무총리를 바꿉니까. 국회의장을 바꿉니까. 국회에서 고군분투할 게 뻔합니다. 다수당이 강제로 입법하는 법안을 막으려고 고성도 지르고, 울분도 토하고, 울기도 하고, 때로는 몸싸움도 합니다.


청년은 허리를 굽혀 구겨진 전단지를 주웠다.


- 그러면 사람들은 욕을 하고, 비난합니다. 정치는 썩었다, 정치인은 냄새가 난다. 이런 욕을 먹어가며 싸워도 안 바뀝니다. 어차피 세상은 한국당이 지배하니까요. 대한민국은 굳건한 세력이 지배해왔으니까요. 이 나라는 바뀌지 않습니다. 조선 건국 이래 600년간 기득권이 정권을 지켜왔으니까요. 


그러다 다시 남자를 보며 말했다. 


- 자그마치 600년간 이 철옹성이 유지돼 왔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죠. 4.19 혁명으로 세운 장면 내각을 빼면, 바로 지난 십 년의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입니다. 장면 내각은 군인들의 군홧발에 짓이겨 물러났으니, 온전하고 유일한 권력 교체가 바로 선생님의 투표로 일어난 겁니다. 이 땅의 기득권이 그토록 싫어하는 역사상의 유일무이한 권력교체를 바로 선생님의 그 별것 아닌 한 표가 해낸 것입니다. ‘그 고작 한 표’가 모여 고인 역사의 물길을 바꾸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철옹성을 허물었습니다. 다 고작 한 표를 찍어준 사람들 덕입니다. 이를 두고 이 땅을 수백 년째 군림해온 세력들은 ‘잃어버린 십 년’이라 합니다. 


취객은 이제 술이 약간 깬 눈빛이 되었다. 그러나 청년은 상대야 어떻든 간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 그런데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대한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고작 십 년으로 뭘 한 단 말입니까. 그리고 대통령을 뽑아도, 국회의원이 모두 한국당인데 무슨 변화가 일어납니까. 대통령 자리를 지키기에도 벅찼습니다. 그러니 선생님 말씀 맞습니다. 고작 국회의원 한 명 당선시켜선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소중하기는커녕, 기초도 안 되는 표입니다. 그러니까, 나가서 외쳐야 합니다. 거리로 나가서 목청을 돋우고, 소줏집에서, 맥줏집에서, 친구들과 부딪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랐듯, 살기 좋은 세상은, 정의가 통하는 세상은, 변화의 고통을 먹고 자랍니다. 잠깐 무늬만 바뀌는 게 아니라, 참 변화를 원한다면 그 변화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표는 소중하지 않습니다. 


정민은 이 광경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 고작 한 표이기 때문에, 많이 부족합니다.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 외치고, 더 부딪히고, 더 갈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4년 뒤 또 술에 취해 애꿎은 누군가에게 의미 없이 따질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한 표로 바뀌지 않습니다.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어느덧 원 안의 공기를 진동시키는 건 청년의 목소리뿐이었다. 


- 하지만 선거조차 않으면 선생님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외면하고, 제도가 외면할 겁니다. 해마다 자녀의 등록금은 오를 것이며,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을 하고 나면, 정작 기다리는 건 세상의 환영이 아닌 긴 실업의 터널입니다. 그 터널을 가까스로 통과해 선생님이 벅찬 마음에 만년필을 취업 선물로 사주면, 그 펜으로 2년짜리 비정규직 계약서에 사인을 할지도 모릅니다. 2년마다 이사 갈 집을 찾아 헤매야 하고, 겨우 내 이름으로 된 보금자리를 구해도, 대출의 족쇄에 속박당합니다. 그 굴레를 힘겹게 벗어나면 어느새 인생은 황혼기에 접어 생의 아름다운 추억들은 다 지나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이 불합리에 굴복하려면, 투표하지 마십시오. 


청년은 취객의 눈을 보며 또렷이 말했다. 


- 맞습니다. 선거로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거조차 않으면 그 바뀔 아주 작은 가능성마저 스스로 포기하는 겁니다. 행여나 생길지 모를 변화의 시작조차 스스로 거부하는 겁니다. 민중당 안 찍으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한국당 찍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투표는 하십시오. 투표조차 않으면, 타인들이 조종한 세상에서 억울하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니까요. 


이렇게 말하고선 취객에게 90도로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다. 


- 주제넘게 선생님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그러고선 원안에 둘러싼 사람들에게 한 명씩 전단지를 돌리며 말했다. 


- 누굴 찍으시든, 한 번 읽어보시고 찍으시기 바랍니다. 


27세의 기혁은 딱히 바라는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었다. 생의 거대한 욕망도 없었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2년 뒤에 떠날 맥주 순례를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면 닥치는 대로 해서 돈을 모으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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