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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석 May 03. 2016

황금 파도
5화

최민석




“맥주를 마시면 빨리 잠들고, 잠을 잘수록 죄를 덜 짓는다. 

죄를 덜 지으면, 천국에 간다. 그러니, 우리에게 맥주를 마시게 해 달라.”

- 마틴 루터(1483–1546)




#5



- 현 정권이 실패한 경제정책을 심판해주십시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더불어 잘 사는 발전을 이룩하겠습니다!


선거캠프에서 써준 고리타분한 연설문이지만, 기혁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기포를 터트리는 노이쾰른의 밀맥주 거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상상만으로도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 덕에 식상한 연설문을 읽고 있는 기혁의 모습은 오히려 신이 나 보였다. 네이비 색 슈트에 흰 드레스 셔츠를 받쳐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넘긴 이 인물이 며칠 전까지 늘어난 셔츠에, 수염이 거뭇했던 88만 원 세대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나저나, 기혁이 연설문을 읽고 있는 이곳은 지역구 마포을에서 유동인구가 많다는 망원역 앞. 선거가 불과 1주일 앞으로 닥친 토요일 오후,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장바구니를 든 주부, 식사를 때우러 나온 젊은 부부, 망원 시장 상인들, 모두 각자 가던 길을 가고 있다. 대부분 기혁의 연설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눈치다. 


- 상생과 협력의 경제 민주화를 이루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겠습니다. 저는 비록 정치신인이지만 고통받는 청년세대의 대표로서……. 


그런데 이때 기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노이쾰른 밀맥주의 기포만이 아니었다. 무관심한 유권자들의 표정과, 유세와는 아랑곳없이 제 갈 길을 재촉하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볼수록, 기혁의 뇌리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사실, 선거에 나가기로 한 날 기혁과 정민의 대화는 좀 더 이어졌다. 


- 그래. 그럼 여기 있는 모든 맥주를 마셔도 좋아.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네.


정민은 거대 야당의 모사이자, 정치 9단답게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 조건이라니요?


- 자네가 선거에서 이기면 평생 무료로 마시게 해주겠네. 


- 지면요?


- 그럼 유세를 할 때뿐이지. 당연한 거 아닌가? 원래, 정치란 거래와 같은 것일세. 


이미 기혁의 마음을 읽은 정민은 한 수 가르쳐준다는 듯 첨언했다. 


- 받는 것 없이 주는 건 정치가 아니야. 기부일 뿐이지. 


물론, 당시 기혁의 눈에는 잔 밑동에서 아지랑이처럼 올라오는 탄산 기포와 봄눈처럼 아름답게 녹아내리는 하얀 거품 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기혁은 이미 녹음까지 한 터라 자신에게 유리하다 생각하여 덥석 정민의 미끼를 물었다. 한데, 막상 유세전에 나서보니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역 앞의 공기는 냉랭하고, 연설문은 공염불 같다. 정치에 문외한인 기혁이 한눈에 보기에도 마음을 붙잡기는커녕, 눈길·발길조차 붙잡지 못할 정도다. 


게다가 호사다마에 시어다골이라 했던가. 원래 장미엔 가시가 있고, 맛 좋은 준치에는 가시가 많은 법. 이때, 한눈에 보기에도 잔뜩 화가 난 무리들이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선거 유세차량 앞에 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한결같이 머리나 가슴에 띠를 매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외쳤다. 


- 전략 공천, 장기혁은 물러가라! 


- 정혁래를 탈락시킨 민중당은 각성하라! 


마포 을에서 두 번이나 당선된 정혁래의 지지자들이 불만을 품고 몰려온 것이다. 맥주나 좀 마셔보겠다고 선거에 나선 기혁이 당황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기혁 역시 위기를 직감했지만, 막상 닥쳐 보니 어찌해야 할지 정신이 아뜩했다. 게다가 정민이 내뱉은 말이 기혁을 찌르고 있었다. 


‘판은 우리가 짜는 걸세. 자네는 우리가 쓴 각본대로 연기를 해주면 되는 거야.’ 


정혁래의 지지자들이 외쳐대자, 무관심했던 행인들도 웅성대며 유세 차량 앞에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도너츠 상인, 화장품 대리점 판촉 사원, 심지어는 여중생들까지 유세 차량 앞에 모여, 기혁과 성난 지지자들의 대치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기혁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불안감에 젖었다. 그 불안이 스스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비록 정민의 말이 떠올라 머뭇거렸으나, 힘겹게 입을 천천히 뗐다. 


- 저는 사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퍽! 

기혁은 말을 마칠 수 없었다. 이때, 어디선가 날아온 물체가 기혁의 머리에 거세게 부딪혔기 때문이다. 어느새 산산이 깨진 계란 껍질과 노른자가 기혁의 정수리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 썩은 민중당은 물러가라! 


- 계파 싸움이 우선이냐? 민생이 우선이냐?!


- 유권자를 우롱하는 정치가 민주주의냐!


덕지덕지 붙은 계란 껍질과 토사물처럼 떨어지는 흰자를 닦기도 전에, 이번엔 밀가루가 그의 얼굴을 덮쳤다. 기혁은 그야말로 흰 오물 덩어리를 뒤집어쓴 꼴이 되었다. 생애 가장 값비싼 양복을 입은 날, 생애 가장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 이 비참한 몰골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으로 찍어댔다.    




                                                                                     *


- 민중당의 장기혁 마포을 후보자가 유세 중 밀가루와 계란으로 세례를 맞는 봉변을 당했습니다. 


‘계란 세례를 당한 정치 신인’이라는 헤드라인이 9시 뉴스의 화면 왼쪽 상단에 걸려 있다. 앵커는 평소와 달리 다소 격앙된 어조로 현장의 취재 기자를 불렀다. 


- 네. 이곳은 오늘 민중당의 가두 유세가 벌어졌던 망원역 2번 출구 앞입니다. 정혁래의 민중당 공천 탈락에 불만을 품은 지지자들이 전략 공천을 받은 장기혁 후보의 유세장에 나타나 밀가루와 계란을 퍼부으며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취재기자의 멘트가 물린 가운데,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조악한 화면이 이어졌다. 네이비 양복을 입은 기혁은 밀가루를 마치 포탄 가루처럼 뒤집어쓰고 있었다. 9.11 테러를 당했을 때, 다급하게 건물 밖을 빠져나온 생존자의 모습 같았다. 잘 빗겨 넘긴 머리는 이미 계란 반죽이 되었고, 얼굴은 온통 흰색이 되어 이목구비는커녕,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시민이 제공한 화면 속에서 기혁이 한 유일한 말은 이것이었다. 


- 저는 사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맥주를 마시는 것뿐입니다. 


탕! 

당 대표 김석인이 TV 리모컨을 던지며 말했다. 


-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야! 


이제야 밝히지만, 사실 김석인은 분노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외상 후 격분 장애증 환자’다. 과거 여러 정권하에서 경제관료를 지낸 베테랑답게 군사정권 하에서도 고위직을 지녔는데, 이 때의 경험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가 됐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농담 삼아 “임자. 경제 과외나 한 번 시켜주지”라고 했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들은 원칙주의자 김석인은 대통령에게 ‘경제란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며 나무랄 만큼 훈수까지 둬가며 독재자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러니, 그가 9시 뉴스로 자신의 면직 소식을 접했음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독일에서 유학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의 사회상을 실감하지 못했던 석인은 깊은 실의와 충격에 빠졌다. 하여, ‘아아, 한국의 권력이란 이렇게 센 것이구나!’ 하며 절감했는데, 그때부터 석인은 종종 실성한 사람처럼 권력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그는 점점 권력의 태동과 발전, 쇠퇴와 소멸에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권력 기생형 인간’이 되었고, 그럴수록 자신이 구축한 권력을 위협하는 자에게 더욱 격분하는 후유증을 선보였다. 그 자극이 9시 뉴스를 통해서 전달되면 더욱 격분하는 역시 당연지사였다. 그럴 때마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던져버리곤 했는데, 마침 이날 석인의 손에 쥐어 있던 것이 바로 민중당 전략기획실의 TV 리모컨이다. 석인의 손에서 날아간 리모컨이 기혁의 얼굴을 강타하자, TV는 주인에게 걷어차인 강아지처럼 깨갱대며 꺼져버렸다. 





-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저따위 풋내기를 앉혀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잔뜩 화가 난 당 대표의 닦달에 정민조차 속으로 생각했다. 


‘망했다. 망했어.’ 


정치 9단 답지 않은 판단에 정민은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박선영도 같은 생각인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자식 추천한 거야. 게다가, 맥주 값은 왜 이렇게 많이 나와! 맨날 맥주만 처마셔! 

 

당 대표가 한심하다는 듯 윽박지르자, 선거전략위원장이 곧장 대답했다. 


- 이번 선거만 떨어지면, 바로 잘라버리겠습니다. 


- 탈당 시켜! 품위 유지 실패로 엮든지, 안 되면 당 내규를 바꾸든지, 무조건 탈당 시켜! 


김석인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만년필을 던지며 말했다. 


- 지가 무슨 하마야? 어. 씨발. 물먹는 하마냐고?! 


그때였다. 꺼졌던 TV가 갑자기 켜졌다. 이제야 말하지만, 외상 후 격분 장애증 환자인 김석인은 던지는 것마다 희한하게 적중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가 던진 만년필이 리모컨의 전원 버튼에 딱 떨어진 것이다. 


화면 속에는 여전히 흰 밀가루를 뒤집어쓴 기혁이 침묵한 채로 서 있었다. 그리고 기자의 리포트 음이 물려서 들렸다. 


- 정책 대결이 되어야 할 선거 유세가 전략공천으로 인한 갈등으로 어그러지고 있습니다. NBC 뉴스 김지혜 입니다.  


그러며, 뉴스가 끝나는데 화면 속 기혁의 입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기혁은 분명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지만, 화면은 냉정하게 끝나버렸다. 


- 다음 소식입니다. 한국당은 이번 총선의 압승을 예상하며……. 


- 이봐! 


뉴스 앵커의 말을 덮을 정도로, 정민이 크게 외쳤다. 


정민은 문 밖에 있던 보좌관을 불렀다. 


- 유튜브에 들어가 봐! 


보좌관이 접속을 하자, 정민은 직접 검색창에다가 ‘장기혁 유세’라고 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기혁이 밀가루 세례를 당한 채 끝까지 했던 연설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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