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민석 May 10. 2016

황금 파도
6화

최민석




“사람들의 생명과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좋은 정부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목적이다.”

- 토마스 제퍼슨(1743-1826)




#6



정민이 유튜브의 영상을 클릭하자, 흰 밀가루를 뒤집어쓴 기혁이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외상 후 격분장애증 환자 김석인이 “으아아! 울화통 터져”라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러자, 박선영 역시 “대표님. 반드시 자르겠습니다!”라며 따라나섰다. 


이제야 밝히지만, 선영은 사실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환자다. 가면 증후군이란, 자격이 없는데 능력을 과대평가받아 높은 위치까지 올랐다고 착각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본 모습이 아닌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속이는 존재’로 인식한다. 본 모습을 알면 모두 실망할 것이니, 능력 있고 근사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기만적인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가면 증후군 환자 선영은 선거전략위원장이라는 자리가 과분하다고 여겼기에, 당대표의 말이라면 무조건 수긍했다. 간혹 토를 달긴 했으나, 그마저 가면 증후군을 위장하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외상 후 격분장애증 환자와 가면 증후군 환자가 나가버리자, 이제 민중당 전략기획실에는 정민과 보좌관만 남았다. 둘은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빛을 찾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기혁의 말에 집중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맥주를 마시는 것뿐입니다


그러고선 기혁은 한동안 말을 잊지 않았다.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붙은 기혁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고, 영상 아래 초를 가리키는 숫자만이 올라가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마침내 기혁이 고개를 들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맥주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아아


정민은 탄식했다. 잠시라도 기혁에게 기대를 걸었던 자신이 바보였던 것이다. 


아닌 것 같습니다 


보좌관 역시, 정민에게 기혁은 가망이 없다는 듯이 진단했다. 

그러나, 영상 속의 음성은 아랑곳 않고 흘러나왔다. 


맥주는 크게 라거와 필스너에일로 나뉩니다라거는 맑은 호박색을 띠며깔끔한 맛과 톡 쏘는 청량감이 특징입니다필스너는 체코에서 시작된 라거 맥주로쓴맛이 강하고 잡스러운 맛이 없는 맥주입니다에일은 영국식 맥주로 향이 짙고 쓰고 매콤한 맛이 특징입니다그리고 밀 맥주도 있습니다


정민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낙담했다. 영상 속 기혁은 말을 이었다. 


국산 맥주 대부분이 라거입니다정당에 비유하자면다수당인 한국당이라 할 수 있죠라거 다음으로 사랑받는 맥주는 에일입니다한국당에 번번이 지긴 하지만1야당인 바로 민중당이라 할 수 있죠여러분이 지키고 싶어 했던 정치인저를 반대하면서까지 애정을 표시한 정치인그러니까 정혁래 같은 정치인이 이 에일 맥주에 해당할 겁니다소비량으로 따지면라거와 필스너그리고 에일 맥주에 비할 수 없지만사랑받는 맥주가 있습니다밀맥주입니다저는 밀맥주를 좋아합니다맥주는 말 그대로 보리 맥()’자에 술 주()’자를 씁니다그렇기에 밀로 만든 술이 어떻게 맥주일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밀맥주는 보리 맥주를 흉내 낸 것일 뿐이지진정한 맥주가 아니다밀맥주는 아류작이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하지만밀맥주를 마셔보곤 전 생각을 바꿨습니다


기혁은 정말 행복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품이 정말 부드럽고목 넘김이 진짜 자연스러웠거든요이때껏 마신 그 어떤 맥주보다 맛있었거든요과연 뭐가 정통이냐뭐가 본연이냐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적어도 제게는 그 어떤 맥주보다 행복을 주는 존재였습니다외람된 말씀이지만제 자신을 맥주에 비유하자면저는 밀맥주이고 싶습니다


기혁은 얼굴에 붙은 밀가루 반죽을 떼며 말했다. 


에일 맥주가 정통입니다하지만세상에는 밀맥주도 있습니다대부분의 맥주가 에일과 라거입니다하지만세상에는 밀맥주도 있어야 맥주라는 하나의 세계가 풍부해지고 넓어지는 겁니다그래야 선택이 다양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기혁은 ‘흠흠’ 헛기침을 했다. 


저는 잘 모릅니다아는 건 맥주뿐입니다밥벌이 때문에 역사도 조금 알긴 합니다만그리 대단치는 않습니다아마 다른 후보들이 저보다 훨씬 많이 알겁니다하지만저는 제가 아는 만큼만 이야기하겠습니다모르는 것에 대해서 감히 안다고 말하지 않고제가 이해한 방식대로 말하겠습니다사실 아까 연설문은 선거 캠프에서 써준 것입니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혁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시민이 찍은 화면은 기혁의 얼굴을 조금씩 확대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저는 현 정권이 어쩌다 경제 정책에 실패했는지 모릅니다. ‘더불어 잘 사는 발전이 어째야 가능한지, ‘상생과 협력의 경제 민주화라는 도대체 무언지어째야 도대체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한지 모릅니다이런 것이 가능했다면왜 진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원초적인 의문을 품고 있을 뿐입니다


정민은 침을 삼키며 영상을 보았다. 


가능했다면 왜 실천하지 않았을까정치인들이 어리석었을까대중이 관심이 없었을까아니면정치인들이 자기들만의 언어로 말했기에대중이 그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일까어쩌면영영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약 제가혹시나 당선된다면 부딪히며 알아가겠습니다맥주는 마셔보기 전에는 맛을 알 수 없듯이제가 직접 부딪혀보고 느껴보고 실천해보고 깨닫겠습니다그리고 제가 깨달은 결과를 여러분과 같이 고민하겠습니다제가 얻은 해답을 여러분과 같은 눈높이의 언어로 말하겠습니다저는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모릅니다제 잘못인지는 모르겠으나, 10년간 세계 정치사를 공부하고 역사를 강의해온 제가 이해 못하는 것 보면어쩌면 정치인들이 일부러 시민들이 모를 단어만 골라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듣기에 근사하고일견 좋아 보이지만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말로 현혹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그렇기에 둘러대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영상 속의 기혁은 화면을 또렷이 보며 말했다. 


민중당은 썩었습니다저도 제 욕심 때문에 나왔습니다저는 맥주가 먹고 싶어서 나왔습니다선거에 나오면 맥주를 많이 사준다 했거든요


군중은 더욱 술렁였다. 





그런데맥주에 가장 좋은 안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바로 보람입니다부끄럼 없이 온 힘을 쏟아 부어 열심히 일한 후 마시는 맥주가 가장 맛있습니다그렇기에 저는 이 선거에 제 몸을 온전히 쏟아 부을 겁니다판매원은 판매원답게 상품을 설명하고붕어빵 장수는 속이지 않고 맛있고 건강한 붕어빵을 굽고선거 후보라면 후보답게 정직하게 약속하고존경하는 만큼만 고개를 숙여 인사하겠습니다그렇다면저는 이 사회가 건강해진다고 믿습니다


왠지 모르게 기혁은 솔직하게 뭔가를 쏟아 붓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계파 싸움맞습니다하고 있습니다하지만이 역시 건강한 정당만이 겪는 갈등입니다오직 승리만을 위해 정당이 존재할 때주장은 사라지고 하나로 합치게 됩니다선거의 승리만이 정치의 목표일 때정치인은 단합합니다계파는 없습니다서로 주장하고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것 역시 작은 민주주의의 한 모습입니다


기혁은 말을 할수록 불리해질 거라는 예감을 했지만, 이대로 멈출 순 없었다. 어느새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유권자를 우롱했습니다지킬 수 없는 말공허한 말로 현혹하고 우롱했습니다과연 제가 사과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민중당의 후보로 나선 만큼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그러더니 기혁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마이크를 유세 차량 바닥에 내려놓았다. ‘투욱’하고 마찰음이 울렸다. 고요 속에 마찰음의 잔음이 길게 울렸다. 그 잔음 사이로 기혁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기혁이 유세차량에서 내려온 것이다. 기혁은 차량에서 내려와 성난 지지자들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 한가운데서 머리가 무릎에 닿을 만큼 고개를 숙인 채 오랫동안 서 있었다. 하늘에서 본다면, 인파가 만든 둥그런 원이 있고, 그 중심에 한 남자가 허리를 숙인 꼴이었다. 한참이 지난 뒤 기혁은 고개를 들더니, 이번에는 육성으로 말했다. 


하지만하나 약속을 드린다면 저는 여러분을 속이지 않겠습니다맥주는 정직하게 하루를 보내고 마실 때진짜 맛있습니다맥주는 바로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기 때문입니다맥주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직하게 소통하고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지킬 수 있는 것은 지키고지킬 수 없는 것은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군중 속에서 외로운 박수가 초라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 속 기혁의 마지막 모습은 어쩐지 일렁이는 눈빛이었다. 


정민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말하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기혁의 말에는 이상하게 사람을 당기는 인력(引力)이 있었다. 과연 사람들은 어떠한가 싶어, 그의 연설에 달린 댓글을 읽기 시작했다. 




                                                                                   *  


한편, 갑자기 선거에 나가겠다며 강의를 그만둬버린 기혁 탓에 시간이 남게 된 수강생 둘은 미용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기혁 총각어쩐지 고리타분한 정치인들과는 좀 다르지 않아


여전히 에르메스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인이 물었다. 


몰라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나 정치에 관심 없는 거 알잖아


과외를 구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던 여인이 답했다. 그러고선 첨언했다. 


그런데다른 노땅들처럼 먼저 악수하겠다고 손 내밀지는 않지


에르메스도 과거를 회상하는지 눈동자를 이마 쪽으로 올리며 말했다. 


좀 튕기긴 해도적어도 진심으로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았지


그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톱을 다듬으며 말했다. 


어쩌면 정치가 잘 맞을지도 몰라




                                                                                  *



그 시각, 불이 꺼진 민중당 전략 기획실에는 정민 혼자 남아 있었다. 정민은 영상이 도대체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영상의 조회 수는 하루 만에 이미 십만 건이 넘었다. 개인 블로그와 SNS에도 무수히 공유되고 있다. 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빛이라고는 오로지 모니터 반사광 밖에 없는 암흑 속에서 세 시간 동안 모든 댓글과 반응을 허겁지겁 읽었다. 마침내 결론을 얻은 정민은 스스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지막이 외쳤다. 


맙소사정치 천재야정치 천재.


바라는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다. 생의 거대한 욕망도 없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맛있는 맥주를 마시는 것. 오직 그뿐인 남자. 단 한 잔의 훌륭한 맥주만 있으면 행복한 남자, 35세의 장기혁은 어쩌면 정치 천재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황금 파도 5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