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Cayman islands를 들었고 하루가 완벽했다. 완벽한 하루는 자주 오지 않으니까 글로 남겨둬야지.
어젯밤 꿈에서 나온 간담회가 (실제로) 아침에 있었고 오후에도 처리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실수하지 않는 꼼꼼한 내 성격, 처음으로 상사에게 칭찬이란 걸 들어봤다. 사부작사부작거리며 일 참 잘한다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 생소할 텐데, 조금 놀라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무언가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로 나를 지적질하는 상사들만 만났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가진 장점을 바라봐주는 상사를 만난 것 같아 행복했다. (저도 팀장님 사랑합니다)
오후에는 산책을 했다. 찾으러 갈 물건이 있어서였다. 나와 띠동갑인 옆자리 선배가 길 찾는 걸 도와주겠다며 함께 나섰고, 일 얘기와 가족 얘기를 넘나들며 짧은 시간 동안 밀도 있게 대화했다. 사적인 질문을 해도 거기에 악의가 있다거나 그 대답을 갖고 평가하려는 몸짓이 느껴지지 않아서 대화가 불편하지 않았다. 같이 있어도 편안한 직장 동료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아 놀라웠다.
숨 한번 크게 들이마실 틈도 없이 정각 6시까지 일을 마무리하고 따뜻한 날씨를 틈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로 향했다. 3월에만 네 번째 방문한 동네. 추천받은 음식점은 정갈하며 정성스러웠고, 구석진 자리에 숨어 숨을 크게 쉴 수 있었다. 어떤 날은 회사에서의 감각이 내게 끈끈하게 붙어 퇴근을 하고도 계속 그 끈덕거림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곳에서 숨을 크게 쉬니 끈적임이 공중에 흩어졌다.
이 시간 이 색으로 뒤덮인 하늘을 보니 그냥 집에 갈 수가 없어 큰길의 반대쪽으로 걸었다. 몇 걸음 차이인데 한쪽은 차와 사람과 건물들이 번쩍거리고 그 반대편은 완벽히 다른 세계처럼 차분하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진공 상태. 걸으면서 이렇게 느꼈다. 나는 지금 진공을 걷고 있는 거라고, 진공 상태라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이런 감각일 거라고.
걷다 도착한, 내부는 그다지 신식이 아닌 도서관의 잡지 컬렉션에 경이를 느끼고… 이 경이로움 속 재테크 책을 도저히 피기가 싫어 FILO를 대신 조금 읽다 나왔다. 올해 들어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감독의 신작이 또 나왔다는 기쁜 소식을 읽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역으로 가기로 했다.
세상에 맛있는 거 많으니까 죽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삶의 하루하루가 아쉬워지는 순간이 오다니. 이렇게 자유스러운, 맘 편한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새로운 걱정거리를 난 다시 만들고 있다.
용기 있는 선택은 삶을 바꾸는 게 맞나 보다
그걸 체감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