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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혜 May 27. 2020

쓴다는 의미  

5월 27일 

머릿 속에 문장을 짓고 그 문장들을 어떻게든 적어내기 바쁜 시기가 있었다. 홀로 걷거나 버스를 탔을 때 내게 일어난 어떤 일들, 어떤 생각들을 형태 없는 노트에 적었다. 적었던 말들은 곧 증발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는 어딘가에 써서 가시화했다. 불특정다수에게 공개하는 글들이 대부분이어서 문장들은 머릿 속에서 만들어질 때부터 다분히 의식적일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쓴다'는 행위는 내게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텍스트 중심'의 플랫폼 브런치는 과거의 내게 유용한 플랫폼이 될 수도 있었다. 뒤늦게 브런치에 가입해 글을 써둔 것은(썼다기보다는 '복사해 붙였'지만) 가입 당시 확실한 의도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사해 붙인 글은 졸작이나마 어쨌든 초고는 완성했다. 당시에는 이왕 쓴 거 출간까지 가자는 의욕이 강했다. 말이 출간이지, 출판사 수백곳에 사정을 해도 받아줄까말까한 졸고이므로 '출간하겠다'는 말은- 뭐랄까, 자기비하를 하고 싶진 않지만 스스로를 같잖게 느끼게 한다. 하물며 출간을 한들 지금 심정으로는 '어머, 어떻게 그런 글을...' 하고 이불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한 계절, 치앙마이의 카페와 달방을 돌며 끄적인 글뭉텅이는 기약없이 브런치라는 골방에 묻혀있을 예정이다. 트렌드를 따라가고자(부끄럽다) '울기엔 내 방이 좁아서'라고 제목도 달았는데(전 방송작가 현 동시인 언니는 '어머어머' 감탄하며 작명을 마음에 들어했으므로 나는 마치 대중에게 인정받은 뿌듯함마저 느꼈더랬다...!) 그리고 현재는 그 제목 때문에 브런치에 로그인하는 게 민망할 정도다. 


그래도, 

그래도 졸고를 처분하지 않는 변명(?)을 하자면 결과물이야 어찌됐든 과정 자체는 지나온 과거(트라우마)에 대한 '씻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몇몇 지인에게도 고백했지만 나는 그 글을 쓰면서 몹시 괴롭기도 한 동시에 지금의 내가 왜 이렇게 생겨먹게 됐는지(거칠게 표현하면) 인과관계를 짚어내는데, 어떤 맥락을 짚어가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현 시점에서 지난날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순 없지만, 대략 악몽과 가위눌림, 공황발작의 대잔치였던 2015~2018년까지의 시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믿는다. 그 글은 다만 소수가 읽었을 뿐이고 그 소수가 공감을 했는지 혹평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피드백 또한 없었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역시 무플이던가!) 그러나 나는 벽에 대고 얘기할지언정 마치 10년의 일기를 몰아쓰듯 시간이 날 때마다 과거를 더듬어 키보드를 두드렸다. 구석에 몰아두었던 과거의 감정에 사무쳤고 그러다보니 문장은 거칠고 일부는 자기연민의 나열로 이어졌다. 후회는 없지만 현재로선 방치된 그 글들을 어찌할까 고민은 한다. 개인사는 드러내 버리고 그때그때 방점처럼 찍은 지역들만 남겨서 아예 대놓고 여행지로만 포장을 해볼까,  구구절절식의 문장들은 쳐내고 SNS 스타일(?)로 담백하게 간추려 볼까...뭐 그런 생각들.... 졸고라고 하면서도 미련이 남아있다.  


과거에 써재낀 글은 아무튼 그러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어째서 지금은 걸을 때도 버스에 탈 때도 머릿 속에 문장을 짓지 않는가. 음...뚜렷한 답을 쓰기 어렵지만 그래도 '이유'는 있는거니까 굳이 적어보면, 세상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미지근해졌고 어떤 경험을 하든 기록할 무언가를 채집하지 못하고 있다. 못하는 건지 안하는건지 그 경계도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의 내가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던 사람이었나 자문하면 그도 아니었지만... 나는 어쩌면 '씻김'후 '놓아두기'를 빙자한 무기력증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물론 내 자신을 향한 에너지마저도 소실했는지도. 

'그게 뭐라고'식의 살아감. 리스크를 피하고 싶어 되뇌이는 중립과 균형. 모든 위태로운 것들에 대한 경계.  때론 이렇게 미지근하고 애매한 방식으로 그렇고 그런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서, 그 무엇에도 몰입하지 못하는 오늘의 나 대해 옳고 그름을 묻게 되는 것이다. 


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쓰지 않는 나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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