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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혜 Jul 18. 2020

뱀을 만날까봐 걱정입니다  

오늘 산책 발견

7월 중순, 길섶은 한층 무성해졌습니다. 걸을 때 풀이 다리를 스칠 때가 많지만 산책에 방해 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저는 길가 풀숲이 좀 두려워요. 무성해봤자 무릎 높이의 풀숲인데 어쩌면 그 안에서 뱀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거든요. 아파트 단지가 여럿 모여있는 읍소재지 거주자지만 그래도 도시보단 시골에 가까운 환경에 살고 있는데요. (이름하여 도농복합도시) 얼마전 동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모 아파트 화단에서 뱀을 목격했다는 글이 게시되어 있더군요. 지척이 논밭이고 녹지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죠. 그러나 뱀 공포증이 있는 저로선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수 있는 목격담은 또 아니었어요.  


저의 뱀 공포증이 어느 정도냐면 뱀 사진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사진만 보고도 몸이 움찔해요. 영상은 더하죠. 마음의 준비없이 뱀이 나오는 영상을 맞닥드리면 마치 실제 뱀을 본 것처럼 놀라고 놀란 다음에는 화가 나요. 아니, 미친!!!! 시베리아!!!!  뱀이 나온다고 예고를 해야할 거 아냐!!!! 하면서요. 


어쩌다 중증의 뱀 공포증이 생겼는지는 알 지 못합니다. 미성년 시절 매일 왕복 4km의 시골길을 걸어 통학했던 저는 사실 누구보다 무수한 뱀을 보았다고 자부(?)합니다. 목격 횟수만큼 경기를 일으켰다고 보면 되고요.  목격 빈도가 늘어나면 없던 정도 생길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볼 때마다 심장을 부여잡습니다.

뱀들이 저한테 무슨 위해를 가하냐고요? 절대요. 그 친구들은 그냥 길을 지나가거나 볕을 쬘 뿐이에요. 그러다 지나가는 차나 오토바이에 깔려 죽는 일도 다반사고요. 풀숲에 얌전히 있다가 땅꾼에게, 농부에게 생포당하거나 토막질 당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뱀이 저를 무서워할 수는 있어도 제가 뱀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설명이 안돼요. 

뱀 친구들에게 저는 극단적인 외모지상주의자일거에요. 뱀의 외양이 혐오스럽다못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으니까요. (다른 얘기지만 저는 '혐오'라는 단어 사용를 지양하는데 뱀의 외양에 대한 제 감정은 혐오라는 단어 외에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어요) 솔직히 뱀의 겉모습이 위협적이냐면 그것도 아니죠. 제가 비명을 꽥꽥 지르게 만든 뱀들 중에 아나콘다가 있던 것도 아니고요. 하다못해 제 팔뚝만한 구렁이나 살모사는 본 적도 없어요. 굵어봐야 손가락 두서너개 합친 굵기에요. 한국의 시골뱀들이 어디 저 사하라 사막 독사들마냥 머리를 들어올리고 위협을 가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걔들보다 수십배 큰 덩치의 저는 실뱀만 봐도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어버려요.




유튜브에서, 태어나 한번도 호랑이를 본 적 없는 멍멍이들이 실물 크기의 호랑이 인형을 보고 줄행랑을 치고 온몸의 털이 꼿꼿하게 선 채 극도의 두려움을 표출하는 영상을 봤어요. 와, 그 공포는 그러니까 DNA에 새겨진 공포인거잖아요. 누구도 그 개들에게 오렌지색 줄무늬 고양이과 네발짐승이 너희에게 위협적이다 라고 알려준 적이 없는데 말이죠. 


그 영상을 보고 저도 제 유전자에 뱀=천적 이라고 새겨져 있구나 했어요.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도 있죠. 

뱀에 대한 공포는 호모 사피엔스가 속한 계통분류군인 구대륙 영장류 동물 사이에서 뿌리 깊고 근본적이다. (중략) 500만 년 전 무렵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존재와 공통 조상을 공유했으리라고 믿어지는 침팬지는 뱀의 출현을 유별나게 두려워한다. 사전에 뱀을 만나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p.154~155 에드워드 윌슨, 『통섭』 중)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저희 부모님은 뱀을 봐도 별로 징그러운지 모르겠대요. 어디 그뿐인가요. 반려사..(?)를 기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아요. 재작년에 보라매공원에 갔다가 한 청년이 뱀 일광욕 시켜주는 장면보고 놀라서 기절할 뻔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다면 심리학적으로,  제가 기억하진 못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 뱀과 저 사이에 일어난 특정 사건이 트라우마가 된 걸까요. 엄마는 제가 네다섯살 때 '뱀! 뱀!'하면서 잠꼬대를 하면서 우는 걸 보셨대요.


아무튼 산책길에 뱀을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발요..!  뱀에게 자우림의 노래 '미안해 널 미워해'를 들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뭐랄까,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이 글의 반전이 될 수 있는 얘긴데요.  역시 제가 네다섯살 때 일이에요. 저희 부모님이 소 먹일 풀을 베다가 큰 뱀을 봤대요. 그때만해도 땅꾼들이 넘쳐나고 뱀=약(혹은 술)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서 저희 부모님은 그 뱀을 잡아다가 압력솥에 푹 고았다네요. 그리곤 약간의 뼈 조각만 남긴 채 고아진 뱀탕을 체에 걸러, 그들의 하나뿐인(그때 당시 동생이 있기 전이었으므로) 소중한 딸내미에게 먹였답니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편식 안하는 착한 딸은 뱀탕에 밥을 말아 신나서 퍼먹더랍니다. 그때도 어지간히 국밥을 좋아했.... 


예... 제가요.


30년도 더 된 일임을 감안해주세요. 저는 기억도 안나는, 전설같은 얘기지만 '실화'라고 하니 그 당사자는 상기할 때마다 죽을 맛입니다. 어쩌면 뱀 공포증 유발 물질이 뱀탕 사건(?)에서 비롯됐는지도요.





어제 산 책 발견

사토우치 아이, 『자연도감』


1991년에 초판을 찍은 해외 번역서입니다. 국내 저자들이 쓴 양질의 자연도감도 많겠지만 어쩐지 이 책은 '국민학교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감 어린 느낌이라 이따금 한번씩 펴보는 책이에요. 실제로 책의 주독자층을 초등학생~중학생 정도로 상정한 듯 하고요. 그래도 370페이지 정도 되는 두툼한 볼륨에 내용이 알차고 가독성도 뛰어나서 저같은 성인이 봐도 충분히 유익한 자연상식 책입니다.  특히 삽화가 예술이에요. 이 책이 왜이렇게 노스텔지어를 자극하나 생각해 보니 8할이 삽화 덕 아닐까 싶어요. 그림이 아닌 사진이 들어갔다면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 같아요. 국내에서 책이 잘 나갔는지 제가 소장한 책은 1996년에 찍은 11쇄이고 현재까지 몇 쇄를 찍었는진 몰라도 여전히 서점과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네요.  

번역을 하신 분은 김창원 선생님이란 분인데 소개를 보니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2 중학교를 졸업하셨대요. 송해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이신데 안부가 궁금하네요. 옮긴이의 말도 읽어볼 수 있는데요, 선생님은 이 책이 일본책이다보니 우리 것과 차이가 나는 내용들이 있어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을 했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소금쟁이, 구슬노래기, 물땡땡이, 달랑게, 곤줄박이 등 예쁜 우리말 이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우셨대요. 선생님의 말을 일부 이곳에 옮겨봅니다.


'자연이란 말에는 사람을 포함해서 이 지구 위의 모든 동,식물의 생활을 통틀어 가리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 그리고 자연은 어떤 생명체도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점에서 『자연도감』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책입니다.'


책은 크게 곤충류, 조류,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조개류, 식물로 나누어져 있고 이 생물들의 관찰법과 각 생물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어요. 개미, 거미, 달팽이, 나비, 꿀벌, 매미, 토끼, 다람쥐, 멧돼지, 가로수, 민들레, 겨우살이, 버섯 등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역권 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썼고요. 무엇보다 이 책은 생물을 관찰할 때 주의를 살피고 생명을 소중하게 대할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이 책이 소개하는 자연을 관찰하는 방법 세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여러 곳을 다닌다

2. 걸음을 멈추고 관찰한다

3. 다른 시간에 여러 번 관찰한다


책은 당연히 제가 싫어하는 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요, 뱀 파트의 큰 제목이 '사람의 미움을 사는 동물'이에요. 족제비는 '숲속의 사냥꾼' 산토끼는 '달리기 챔피언', 거북이는 '볕을 좋아하는 동물' 등 대부분 습성이나 신체적 특징을 잡아 표현되어 있는데 뱀은 좀 예외적이죠.  저자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으려나요. (비얌... 편애해서 미안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66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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